2020년 ‘언론 불신 시대’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미디어 수용자에 대한 언론사의 태도 변화다. 매체가 취재한 팩트를 방어막 삼아 주관적 해석을 사실인 양 보도하고도 ‘오보’라는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게 미디어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수용자를 의식한 조치가 나오고 있다. 

기자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기자보다 저널리즘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미디어 수용자 출현에 매체는 어느 때보다 완결성 높은 콘텐츠를 내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일례로 재판 보도가 SNS로 생중계되면서 편향적 보도는 수용자에 의해 금방 탄로가 나고 있다. 수용자 ‘반응’을 살펴보지 않는 매체는 언론 불신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진영 논리에 기반해 확증 편향적 주장을 내놓고, 이에 반하면 미디어 전체를 공격하는 양상을 지켜보면 미디어 수용자 주장이 100% 옳다고 할 수 없다. 특정 정파만을 대변하는 미디어 수용자의 ‘눈치’를 보는 건 진실 추구의 걸림돌이 된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다만 미디어가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시대 미디어 수용자는 하루아침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디어 수용자를 의식하는 건 미디어 종사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도 이를 특정 정파 공세라고 치부해버리며 자정 능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사를 분석하고 기자 개인에 평점을 매겨 ‘기레기’를 판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적극적인 독자는 포털 댓글을 통해 오보를 잡아낸다. 기자와 논쟁하고 그 결과를 SNS에 공론화하는 현상이 요즘 시대의 모습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미디어 수용자는 매체 보도 방식까지도 파헤치고 있다. 보도 목적부터 맥락, 사실관계 취사 선택 문제 등 전방위적인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이제 팩트를 제시한 것만으로는 미디어 수용자의 매서운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팩트만 운운하는 건 무책임한 매체라는 오명만 뒤집어쓸 수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MBC 뉴스데스크에서 제기한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협박성 취재와 검찰과의 유착 의혹 관련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의 검사장을 협박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MBC 뉴스데스크에서 제기한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협박성 취재와 검찰과의 유착 의혹 관련 채널A 기자와 성명 불상의 검사장을 협박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특정 보도에 대해 여러 갈래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건 미디어 수용자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했다. 미디어 수용자에 대한 매체 구성원들의 학습이 필요하다. 이는 콘텐츠 유통 차원뿐 아니라 매체 콘텐츠 질을 높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의 저널리즘책무실 신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자사 콘텐츠를 2주에 한 번 스스로 비평한다는 계획인데 자사 비판에 매우 인색했던 과거 언론의 모습에 비춰보면 내부 반발도 클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야말로 미디어 수용자와 적극 소통해 매체 신뢰도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한겨레가 취재보도 준칙을 새롭게 제정하고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 제목의 보도를 부정확한 보도라고 인정한 것도 주목할 일이다. 1면에 자사 보도를 사과하는 것 자체부터 이례적이지만 사과 방식도 과거에서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보도 경위를 상세히 적었고 보도 문제점도 정리했다. 관련 공지의 제목은 “정정과 사과에 열린 언론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는데 이는 한국 저널리즘의 취약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취재윤리 위반이 명확하고 검언유착 의혹까지 불거진 채널A가 발표한 53쪽짜리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는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건 핵심인 검언유착 의혹의 ‘검사장’ 존재는 밝히기 어렵다는 건지 밝힐 수 없다는 건지 모호하게 처리하면서 논쟁만 남았다. 의혹 당사자인 기자가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행위(노트북PC 포맷화와 휴대전화 초기화)를 한 것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말이 없다. 미디어 수용자 입장에선 형사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안을 채널A 경영진이 은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앞으로 ‘채널A 성찰 및 혁신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인데 부실한 조사를 뒤로 하고 또다시 무슨 위원회를 만드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메인뉴스에서 진행자 멘트로 사과하는 데 그치고 진상조사 내용을 리포트로 담지 못한 것은 미디어 수용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채널A 문제는 언론 불신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언론개혁’은 거창하지 않다. 스스로 저널리즘을 지키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채널A 기자들의 내부 자정 능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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