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방통위를 우롱하는 보고서다.” 

채널A가 25일 공개한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를 두고 밝힌 방송통신위원회 고위관계자의 평가다. 53페이지로 구성, 25일 공개된 보고서에선 이동재 채널A 기자의 협박취재가 가리키는 의혹의 핵심, 검사장과의 공모 여부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 방통위가 마련한 4월9일 채널A 의견 청취 자리에서도 논의 핵심은 검사장의 존재 및 공모 여부였으나 김재호·김차수 채널A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시종일관 애매모호 한 답변으로 불리한 상황을 모면했다. 

채널A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동재의 신라젠 의혹) 취재 기간 동안(2월 초~3월 22일) 홍성규 사회부장과 배혜림 차장(법조팀장)이 이 기자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기록은 없다”고 밝혔으며 “이 기자가 조사위 조사 직전 휴대전화 2대를 초기화하고 노트북PC를 포맷해 녹음파일 등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조사의 한계를 명시했다. 이동재 기자의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선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평가를 유보”했다. 

조사의 한계는 채널A가 자초했다. 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훈 채널A 보도본부장은 3월22일 오후 8시50분 경 ‘(이동재와 함께 신라젠 취재에 나섰던) 백아무개 기자가 MBC의 몰래카메라에 찍혔다’는 제보를 받고 홍 부장에게 경위 파악을 지시했다. 이 기자는 3월23일 새벽 0시25분 회사에 나와 ‘반박 아이디어’를 작성해 배혜림 차장과 홍성규 사회부장에게 보고했다. 다급한 상황으로 판단해 일요일 밤 회사로 ‘불려 나온’ 장면이다. 

채널A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은 22일 밤이다. 그러나 채널A는 4월1일 오후 진상조사위 첫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 무려 10일간 이동재 기자의 노트북과 휴대폰을 압수해 조사하지 않았다. 방통위로서는 ‘미필적 고의’로 증거인멸의 시간을 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MBC 보도 이후 내가 인격적 쓰레기가 됐고, 그래서 핸드폰을 다 지워버려야겠다고 해서 그런 것”이라고 진술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동재 기자는 이철 전 신라젠 대주주의 지인으로 등장한 지아무개씨에게 들려준 ‘검찰 고위관계자 A와의 녹음파일’을 삭제한 이유에 대해 “어느 누구도 A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한 사람이 일주일(3월23일~3월31일)동안 없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을 내놨다. 이는 3월22일 이후 A를 상대로 발 빠르게 진행했던 회사 차원의 대응에 비춰볼 때 상식 밖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배혜림 차장은 3월23일 오전 10시경 A와 통화에서 “녹음파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훈 채널A 보도본부장이 홍성규 부장에게 ‘A에게 알려주라’고 지시한 결과다. MBC 취재가 붙은 걸 확인한 바로 다음 날 오전 A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은, 경영진 스스로 A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A와 빠르게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동재 기자 진술에 따르면 채널A는 보도본부장, 사회부장, 법조팀장 그 누구도 A의 음성을 들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보고서에서는 끝내 A가 누구인지, 직책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A를 상대로 이동재 기자와 ‘교감’이 있었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A는 “피해자”로 묘사될 뿐이다. 하지만 이 기자가 3월23일 작성한 ‘반박 아이디어’ 문건을 보면 “파일 일부 재녹음 할 것. ○○○(A의 직책) 녹음 문장 일부를 ㄱ기자와 녹음할 것. ㄱ기자가 A 비슷한 목소리로 녹음”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게 보고서에 나온다. 재녹음을 구체적으로 구상할 만큼, A는 채널A 입장에서 숨겨야 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사실상 증거인멸 시간 준 채널A일관성 있던 초기 진술 주목해야

검사장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동재 기자의 초기 진술도 일관성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자는 1차 진술에서 지씨에게 들려준 녹취파일 목소리의 주인공이 A라고 답변했다. 그는 2차 진술에서도 A와 3월20일 통화를 녹음했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3월23일 자신이 작성한 문서에서도 ‘A 통화싱크(7초 정도) 들려줌’이라고 명시한 뒤 배 차장과 홍 부장에게 보고했다. 맥락상 A는 문제의 검사장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3월31일 MBC 보도 이후 진술이 달라진다. 4월1일 배 차장은 해당 법조인이 “C변호사”라고 이 기자에게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4월3일 이 기자는 김정훈 본부장 면담에서 “C변호사”라고 밝혔다. 5월16일 이 기자 변호인은 “사실과 전혀 다른 녹취록을 제시한 바 있고, 지씨의 요구로 6~7초간 들려준 녹음은 검사장이 아닌 제3자의 목소리”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이동재 기자의 진술이 바뀌었다는 이유, 그리고 녹음파일이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 특정이 어렵다고 했다. 채널A 재승인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던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채널A 스스로 진상을 밝힐 의지가 없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방통위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보고서가 부실해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당장 방통위는 25일 이 사건과 관련한 추가 자료 요청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보고서를 보면 사회부장 선까지 이번 취재에 개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 차원에서 움직였던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한 뒤 “필요하다면 채널A를 상대로 추가 진술과 의견 청취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인 검찰 수사에서 검찰과 채널A와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수사권도 없는 방통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지난 4월 채널A의 방송사업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던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4월 채널A의 방송사업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던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위원장.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채널A는 윗선의 ‘취재지시 및 개입’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 기자는 윗선으로부터의 취재 지시여부에 대해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체계적으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3월10일 이 기자가 지씨에게 “회사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저보다 윗선이고 저와 생각도 같다”고 말한 대목에 대해 이 기자는 “배 차장이 인볼브 된 게 아니라 지씨가 날 좀 믿어줬으면 하는 생각해서 회사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2월29일 지씨와 통화에서 “회사하고 얘기도 맞춰보고”라고 발언한 대목도 “뭐라도 받고 얘기가 되는 거면 그때 가서 팀장한테 본격적으로 애기하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뜻이다. 

조사위는 “홍 부장-이 기자, 배 차장-이 기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계정 삭제 및 대화 내용 삭제 등의 이유로 남아있지 않았다. 외부 전문업체 포렌식을 통해서도 카카오톡 대화내용이 복원되지 않아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도 “배 차장, 홍 부장, 김 본부장 등 보도본부 데스크와 경영진 등을 조사한 결과 이 기자에게 신라젠 취재 착수를 지시한 사실은 없었다”고 단정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방통위원들은 이번 진상조사 보고서를 충분히 검토한 뒤 향후 재승인 조건과 관련해 내부 논의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4월 채널A의 방송사업을 조건부 재승인하며 검언유착 논란으로 번진 공정 보도 위반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중대 문제가 드러나면 재승인을 취소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상혁 방통위원장과 허욱 방통위원 임기가 오는 7월 말 끝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이 사건 관련 재승인 입장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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