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판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당나귀 귀)’ 지난 3일 방송에는 한식연구가 심영순씨와 유튜버 헤이지니가 KBS 어린이 프로그램 ‘TV유치원’에 출연하는 녹화현장을 담았다. 헤이지니가 TV유치원 고정진행자인데 여기에 심씨가 출연해 곶감요리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당나귀 귀는 여러 회사 대표들이 스튜디오에 출연해 그들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녹화영상을 보며 이야기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으로 심씨와 헤이지니는 이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다.

녹화현장에서 심씨가 “곶감의 꼭지를 잘라 버리고 배를 갈라줘요”라고 말하며 곶감을 손질하는 영상이 나왔다. 그러자 당나귀 귀 제작진은 ‘충격적 요리 설명’, ‘어린이들한테 그런 말을’, ‘비상’ 등의 자막과 공포분위기의 배경음악을 넣었다. 당나귀 귀 다른 출연자들이 놀라는 표정들도 화면에 담았다. 녹화현장에서 헤이지니는 “배를 가른다고요?”라고 되물으며 “가운데를 잘라서 넓게 펴주세요”라고 어린이 프로그램에 걸맞게 용어를 수정해줬다. 

▲ KBS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지난 3일 방송. KBS TV유치원 녹화현장을 담았다.
▲ KBS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지난 3일 방송. KBS TV유치원 녹화현장을 담았다.

 

심씨가 곶감 속 씨를 제거하며 “씨를 씹으면 이가 나가요”라고 말한 영상이 나오자 스튜디오에서 다시 출연자들이 경악했고, 헤이지니는 “참고로 여러분들이 보는 건 TV 유치원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TV유치원에선 해당 발언들을 편집해 부적절한 용어를 방영하지 않았다. 해당 당나귀 귀 방송을 보면 3년간 TV유치원 진행자를 맡은 헤이지니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방송을 하는 방송인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KBS 방송에 나온 이미지와 달리 실제 ‘헤이지니 Hey Jini’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그렇지 않다. 유튜브 콘텐츠 촬영 장면이 당나귀 귀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불량식품이라고 부를 만한 음식을 먹는 방송(먹방)이 많다. 

헤이지니 유튜브 채널에 많이 보이는 음식은 젤리, 사탕, 마시멜로, 초코과자, 문구점에서 파는 각종 간식 등 온통 색소를 많이 첨가했거나 당분이 높은 것들이다. 당나귀 귀에서도 헤이지니 촬영분에는 ‘공포의 설탕 지옥’, ‘벗어날 수 없는 설탕지옥’ 등의 자막이 등장하고, 한식연구가 심씨가 “저러다 당뇨병 걸리겠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 헤이지니 유튜브 콘텐츠 일부.
▲ 헤이지니 유튜브 콘텐츠 일부.

 

‘초통령(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어린이들에게 헤이지니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최근 당나귀 귀 방송을 보면 코로나 국면으로 헤이지니가 어린이들과 화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데 잠시 헤이지니가 사라지면 어린이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헤이지니가 나오는 콘텐츠 중엔 음식 관련 특정업체를 홍보하는 영상도 있다. 또한 먹방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등 광고 효과가 있고, 어린이들에겐 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당나귀 귀 방송 중 헤이지니가 직원들과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헤이지니가 꽤 매운 음식을 찾는 이유를 “보통 어른들은 달달한 걸 많이 먹지 않지만 촬영 때문에 달달한 걸 종류별로 먹다보니 매운 음식에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성인이 먹기에도 부담스러운 단 음식 먹방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유튜브 방송도 문제인데, 이 모습을 공영방송이 전파로 중계한 것이다.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는 헤이지니가 어린이 콘텐츠를 촬영하며 단 음식을 많이 먹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는 헤이지니가 어린이 콘텐츠를 촬영하며 단 음식을 많이 먹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해외에선 어린이 관련 콘텐츠를 강하게 규제한다. 1990년 환경운동가들이 맥도날드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음식 콘텐츠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고 영국 정부기관인 통신위원회(Ofcom)은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지방·설탕·소금이 많이 들어간 음식 광고를 규제했다. 스웨덴은 1991년부터 어린이 대상 TV광고를 전면금지했고, 프랑스는 2004년부터 어린이 TV방송 중 고지방·고당식품 광고를 금지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이 있다.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어린이식생활법)을 보면 고열량·저영양 식품 판매뿐 아니라 방송·라디오·인터넷에서 구매를 부추기는 물건을 제공하는 광고를 규제하고, 이런 식품들을 광고할 때 광고시간도 정하고 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아이들 기호식품을 미디어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자는 취지다. 

유튜브가 관련기관의 규제를 받진 않아 어린이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오히려 공영방송이 이런 유튜버를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예능 고정 출연자로 발탁해도 괜찮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양승동 KBS 사장이 당나귀 귀에 출연해 “1박2일이 어려움을 겪을 때 오지 않았냐, 감사하다”며 제작진·출연진과 식사하고 금일봉까지 건네며 격려했다. 공영방송 사장까지 나서서 프로그램 내용이나 그 영향보다 시청률을 우선하는 모양새다. 

헤이지니는 과거 캐리언니 시절부터 키즈콘텐츠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고, 당시부터 성편견·성차별을 강화한다는 우려가 있었다. 여성은 분홍색, 남성은 파란색 옷을 입거나 여성인 헤이지니가 나오는 영상 썸네일이 대부분 분홍빛인 게 그 예다.

▲ 헤이지니 유튜브 콘텐츠들(위), 헤이지니 유튜브 방송 중 일부. 여성이 출연하면 분홍색, 남성이 출연하면 파란색을 연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 헤이지니 유튜브 콘텐츠들(위), 헤이지니 유튜브 방송 중 일부. 여성이 출연하면 분홍색, 남성이 출연하면 파란색을 연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튜브에 화장하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아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성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는데 헤이지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TV유치원에도 나온 장면인데 지니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간 영상인데 “지니가 늙어보인다” 등의 표현으로 ‘늙은 게 슬픈 것’이라는 관념을 심어준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미디어오늘인 지난 21일부터 헤이지니 측과 KBS 측에 각각 관련 입장을 물었지만 26일 오전 현재 답을 받지 못했다.  

[관련기사 : 성차별 ‘캐리 언니’, 아이들 보여줘도 괜찮을까]

※참고문헌
조재영, 패스트푸드 섭취 실태를 통해 본 어린이 기호식품 광고 규제의 의미와 운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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