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정의기억연대’(2018년 7월1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통합하여 출범한 재단, 이하 정의연)에 대한 논란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사자로서 위안부 문제를 국제 무대에서 증언하며 시선을 모으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도 잘 알려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의 발언이 있은 후, 정의연과 정의연 모태가 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창립부터 함께하며 21대 총선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에 대한 논란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시에 이 논란은 점차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뤘던 방식 전반을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다. 특히 위안부 피해를 겪은 여성을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을 비롯하여 그간 한국 사회나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뭉쳤던 사회 운동 전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즉, 소녀상을 기획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뿌려왔던 움직임 그 자체가 한국 위안부 운동 자체가 지닌 한계를 드러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2015년부터 일찌감치 논란의 대상이었다. 소녀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이리라. 해당 저서에서 박유하는 당시 정대협이 추진하던 소녀상 설치 캠페인이 복잡다단한 성격이 있는 위안부 문제를 ‘소녀’의 이미지로 치환하며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남겼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조선의 어린 여성만이 당했던 성폭력 피해가 아니라,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집단적으로 피해를 본 것인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측면의 비판이었다.

이외에도 소녀상에 대한 이미지적, 의미적 차원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시도는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진다.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문화예술 평론 웹진 ‘크리틱-칼’에 2017년 8월 기고한 원고 ‘소녀상과 미술 담론 - ’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를 통해 본 한국 진보 미술계의 의식’을 통하여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이상으로 강력한 논조로 소녀상을 비판했다.

최범은 소녀상이 일본을 가해자, 한국을 피해자로 보는 극단적 이분법의 단일 구도에 갇혀 있는 작품이 소녀상이며, 재현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도 너무 안이했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더 나아가서 이러한 작품에 대해 비판적 시도를 수행하지 않은 한국의 민중미술-진보미술 역시 이분법적 민족주의의 서사에 갇혀 있으며, 미술의 인문주의나 보편성에서 멀리 떨어진 결과가 소녀상이라는 주장을 이어나간다.

이외에도 문학평론가 허윤은 2019년에 발매된 민음사의 평론지 ‘크릿터’ 1호의 게재 원고 ‘아웃사이더들의 연대와 불협화음’을 통해 소녀상을 비롯해 한국 사회가 활용하고 열광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서사와 이미지가 지극히 한국에 한정돼 있으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한다는 명목으로 선정적이거나 자극적 묘사가 대다수 작품에서 반복됨을 지적하기도 했다.

분명 소녀상 설치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2010년대 중후반, 운동에서 직간접적으로 활용된 이미지는 계속 고민해야 할 측면이 많다. 박유하나 최범의 비판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 위안부를 주제로 나왔던 영상 작품들에 대해서도 고민의 여지는 있다. 이러한 부류의 작품에서 가장 크게 흥행했지만, 동시에 가장 문제적 작품은 (소설가와 동명이인인) 조정래의 영화 ‘귀향’이었다.

크게 2부 구성으로 나눠진 작품은 전반부에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강제로 중국에 있는 위안소로 차출당한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는 한국이나 중국 같이 일본이 당시 점령하던 국가들에서 차출된 ‘소녀’들이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꽤나 자세하게 서술하고 일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이 확정되자 위안부를 사살한 일도 있었다’는 부분을 자극적으로 드러내며 관객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자극하려는 부분이 이어졌다.

2015년 12월 말, 박근혜 정부가 일본 아베 2기 정권과 맺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위안부 협상으로 전국이 뒤숭숭해진지 3달도 지나지 않아서 개봉한 작품은 시기적 정세와 부합해 총 358만명의 많은 관객을 모았지만, 영화가 위안부 문제를 재현한다는 이유로 삽입했던 폭력과 자극의 이미지는 큰 논란의 대상이 됐다. 앞서 언급한 허윤의 지적처럼, 위안부 문제를 말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차 자극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합당한 방식이냐는 것이다.

▲영화 '귀향' 포스터.
▲영화 '귀향' 포스터.

다행히 이후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다뤘던 영상 작품들은 이러한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KBS에서 특집극으로 방영되고, 이후 극장판으로 재편집해 스크린에 걸린 이나정 연출의 ‘눈길’은 위안부로 끌려온 주인공 두 명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겪은 피해의 문제와 연대적 측면을 고려하는 동시에, 극의 전개는 물론 재현의 차원에서도 큰 필요성이 없는 성적 착취 장면을 배제하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김현석의 ‘아이 캔 스피크’나 민규동의 ‘허스토리’ 역시 ‘눈길’처럼 성적 착취적장면의 직접 노출을 배제하고, 피해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비슷했지만 ‘아이 캔 스피크’는 이용수의 실화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젊은 남성 공무원’ 캐릭터를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어떤 의미로 소녀상에 대한 이미지/윤리적 차원의 지적과 비판은 위안부 문제를 한국 사회가 ‘소비’하는 방식과 그에 대한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결부돼 있다. 마치 그것은 ‘기지촌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지적과도 비슷하다. 1992년 발생해 큰 충격을 준 ‘동두천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주류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미국 남성’이 ‘한국 여성’을 ‘유린’했다는 식 이상을 넘지 못하며 가부장적으로 소비되거나, 공분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주검을 무분별하게 게재하는 것 때문에 지속적 비판을 받았다. 여성 폭력의 차원으로서 문제를 접근하는 대신, 민족주의적 자극만 강조됐다는 것.

동시에 어떤 차원에서 윤금이씨 살해사건은 당시 막 형성되던 위안부 문제 제기 운동과, 이후 ‘소녀상’과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무수한 창작물에 대한 비판적 측면과도 이어지는 바가 있다. 윤금이씨 살해사건이 미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과 분노가 분출되는 단초로 활용되었듯, 비슷한 시기 제기되었던 위안부 문제 역시 비슷한 통로로 활용되는 바는 없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순간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 받고 쉬쉬했던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부터는 한민족이 ‘잔인하게’ ‘유린당한’ 피해의 증거로서 소비되었던 것이다.

민족주의적 수치에서 민족주의적 상처로 변모한 위안부 문제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민족주의적 정서를 강하게 풍기며 퍼질 수 밖엔 없었다. ‘소녀상’ 그 자체, 또는 위안부 문제를 중심에 삼은 문화 매체 상당수도 이러한 함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화예술 비평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점점 증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반작용이기도 하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포스터.
▲영화 '아이캔 스피크' 포스터.

그러나 단순히 ‘소녀상’을 비롯해 사회나 운동이 위안부를 소비하던 방식에 ‘문제적 여지’가 있다는 지적을 계속 가하면 문제는 끝나는 것인가. 대중 운동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발언과 행동, 기타 표현물이 지니는 이미지를 성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문제를 더 넓게 알리기 위해서 기존의 주류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변용하여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중적 책무가 주어진다.

이는 단순히 주류가 원하는 것을 운동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운동이 더욱 많은 지지와 연대를 확보하기 위하여 일정한 수순에서는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로도 이어진다. 동시에 이는 정대협-정의연을 비롯한 위안부 문제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 운동이나 사회적 선택이 마찬가지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대협-정의연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몇몇 시선은 소위 민족주의적 함의가 2010년대-2020년대에도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 ‘잔여물’은 이번 정의연 논란을 맞이해 더욱 불거지는 민족주의에 대한 지적으로도 이어지는 지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대협-정의연이 지녔던 한계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정대협-정의연이나 기타 위안부 문제 제기 운동이 민족주의적 틀에만 갇혀 있었다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당장 1992년에는 한국, 중국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동으로 겪었던 필리핀, 태국, 그리고 일본 내부의 위안부 문제까지 포괄하며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연대하려는 시도인 ‘정신대문제 아시아 연대회의’가 있었다. (링크 : 1992년 8월 10일, '제1차 정신대문제 아시아 연대회의 취지문') 이 아시아 연대회의는 정대협이 정의연으로 확장 출범한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정대협-정의연은 지속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결코 한국 일국만의 측면이 아님을 계속 고민하며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소녀상’에 대한 이미지 역시 앞서 언급한 지적처럼 ‘한국의 소녀’에 갇혀 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반복-재생산한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지만 동시에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 김서경‧김운경이나 전국적 차원에서 설치 운동을 전개하였던 정의연도 계속 이 이미지에만 마냥 갇혀 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김서경‧김운경은 한국과 베트남 지역에 ‘베트남 피에타’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상징화한 움직임을 드러냈다. 베트남 피에타는 2016년 당시, 산발적으로 나오던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문제를 좀 더 조직적으로 뭉쳐 제기하자는 움직임과 맞물려 탄생한 ‘한베평화재단’과 맥락을 같이 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한베평화재단은 단체의 구상이나 움직임에 있어서, 위안부 운동과 이어지는 맥락을 언급하며 위안부 운동의 확장적 측면을 보이기도 했다.

분명 실수나 오류는 결코 허투루 넘어갈 수 없으며, 동시에 자신들이 걷는 움직임에 대한 지속적 성찰은 필요하다. 위안부 문제를 소개하는 방식은 결코 민족주의적 틀에서만 갇혀있으면 진정한 해결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것과 별개로 지금까지의 위안부 운동은 계속 폐쇄적이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외부로 시선을 확장하며 너른 연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위안부 운동을 대표하기 위한 이미지 작업 역시 모두 민족주의적 폐쇄성에만 갇혀있던 것인가. 어떤 차원에서 위안부 운동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지적은 어떤 의미로는 정대협-정의연에 대한 지적에만 머무르는 것이 이니라, 기존의 한국 언론이나 사회, 시민 사회가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부적 디테일과 다양한 결을 바라보는 것이 함께 병행돼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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