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23일 엄수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날 “그토록 원하셨던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가 아주 가까운 현실이 돼서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원했던 ‘언론 개혁’의 시대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언론 개혁’은 평생의 화두였다. 1991년 주간조선은 ‘호화요트’ 왜곡 보도로 당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노무현 의원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001년 노무현 민주당 고문이 “언론사는 당연히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자 사설에서 그를 비판한 뒤 한동안 신문지면에서 아예 ‘노무현’을 쓰지 않는 식으로 노골적인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다.  

그럼에도 그는 언론사 세무조사 국면이던 2001년 6월 언론노조 강연 자리에서 “언론사주는 비리의 실체가 드러난 마당에 국민에게 사죄하고, 기자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돌려주든가 아니면 언론사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주류 언론의 노골적인 비판·비난에도 공개적으로 ‘언론개혁’을 주장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그리고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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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1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980년대 반독재 운동 때 느꼈던 부담감보다 지금 수구 언론에 부담감이 더 크다”면서 “내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하는 것은 개혁세력 방어를 위한 전략이며 몸부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언론 개혁은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과 인사권의 독립이 우선이며, 언론 간의 경쟁은 보도의 품질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앞으로는 광고주로부터의 독립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지난해 뉴스타파가 공개한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를 보면 그는 임기 내내 언론 개혁을 고민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메모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과 보수언론 등 당시 기득권 세력을 가리켜 “끝없이 위세를 과시한다. 모든 권위를 흔들고, 끝없이 신뢰를 파괴”한다고 적은 뒤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놓고 막상 추진하면 흔든 것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방송의 날 축사에서 “지난날의 유착 구조 속에서 언론이 가지고 있는 일부 우월적이고 특권적인 지위, 유착의 문화,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이게 말끔히 청산됐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2007년 3월 작성된 대통령 메모에는 “대통령 이후.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계속할 것”이란 문장이 사뭇 비장하게 등장했다. 2007년 수석보좌관 회의 중 메모에는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이란 대목도 등장했다. 그에게 ‘언론 개혁’은 평생의 화두이자 사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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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메모. ⓒ뉴스타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책 ‘노무현 정부의 실험’(2011)에 실린 ’노무현 정부의 언론정책과 개혁적 정부의 과제’라는 논문에서 “노무현 정권은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시민사회의 갈등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했건만 설득적 의사소통에 실패함으로써 갈등의 화신처럼 보이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일단 이런 프레임에 갇히고 나서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며 개혁적 진보 정권이 실패한 이유가 개혁 이념 때문이 아니라 방법 때문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갈등의 중재자 또는 해결자의 모습이 아닌 갈등의 당사자가 되면서 실패를 자초했다는 의미인데 이 같은 실패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이면서, 동시에 주류 언론이 주도했던 실패이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는 대목이 적혀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20년째 발표하고 있는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참여정부 시절 가장 높은 언론자유 지수를 기록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언론자유 지수는 참여정부 수준을 회복했지만, 언론 신뢰도는 2016년 국정농단 보도 시기 이례적으로 상승했다가 다시 추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노골적인 상업주의 보도와 특정 정파를 대변하는 언론사 간 대결 구도는 합리적 논쟁의 장을 위축시키는 가운데 여전히 힘없는 언론 보도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자들은 각종 구조적 한계 속에 질 낮은 기사를 양산하고 있고, ‘미디어 시민’은 그 어느때보다 실시간으로 오보와 왜곡보도, 취재관행의 문제들을 지적하며 언론계를 향한 불신과 냉소는 깊어지고 있다. 물론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3대 개혁과제에서 ‘언론’을 포함 시키지 않았다.

‘언론개혁을 바랐던 시민’ 노무현이 그토록 원했던 현실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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