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불공정 구조를 개선하겠다며 노조 설립을 신고한 부경공원 기수들이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부산고용노동지청은 지난 21일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위원장 오경환)의 노조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고 노조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지난 1월20일 부경공원 기수들이 노조 설립을 신고한 지 4개월여 만이다.

▲경마기수 자료사진. 사진=경마방송 '2019 KRA컵 클래식 후기'편 유튜브 갈무리
▲경마기수 자료사진. 사진=경마방송 '2019 KRA컵 클래식 후기'편 유튜브 갈무리

 

설립 당시 기수들은 “흔히 경마의 꽃은 기수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마사회-마주-조교사로 이어지는 다단계구조에서 복종과 굴종의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며 ”우리는 노조법상 노동자고 이걸 부정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경마기수는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지만 실제 업무 관계를 보면 종속성이 드러난다. 기승계약서엔 갑(조교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기수의 의무만 명시됐고 권한이 적힌 조항은 없다. 대다수 기수들은 기승계약서의 존재도 모를뿐더러 업무내용(출전·훈련 시기, 횟수 등)이나 수입 관련해 협상을 해본 적이 없다.

갑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시 보호 장치가 없어 출전 기회 박탈이나 계약 종료 등 불이익을 고스란히 받게 돼 대부분이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최소 출전 횟수’ 조차 정해지지 않아 월 130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눈 밖에 난’ 기수들도 적지 않다.

기수와 계약하는 조교사는 한국마사회 소유 ‘마방’(마굿간)을 운영하는 이들이다. 조교사는 마주(말 주인)로부터 경주마를 위탁받아 말을 훈련시켜 경기에 내보낸다. 조교사가 말 관리사와 기수를 고용해 말 관리사에겐 말 관리·훈련을 지시하고, 기수에겐 경기 출전 등을 지시한다.

마사회는 이 조교사들의 면허와 마방 배정을 관리한다. 기수들의 면허 갱신권과 징계권은 한국마사회가 갖고 있다. 기수들이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 및 마필관리사’ 순으로 지시·감독 관계가 촘촘히 짜여져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부산경남 경마기수 노조는 1월20일 오전 11시30분 부산시청 앞에서 노조 설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부산경남 경마기수 노조는 1월20일 오전 11시30분 부산시청 앞에서 노조 설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대법원 판례상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6가지다. △소득이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는지 △사업자가 계약 내용을 일방 결정하는지 △필수 업무(노무) 제공을 사업자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지 △사업자로부터 받는 금전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사업자의 지휘·감독 관계가 상당한지 △둘 간 법률관계의 전속성이 상당한지 등이다. 기수들은 자신들의 노동환경이 이 6가지를 모두 충족한다며 노조를 설립했다.

이번 노조 설립 인정은 지난해 11월29일 고 문중원 기수의 사망과 그로 인한 벌어진 투쟁의 결실이란 지적이 나온다. 부경공원의 문 기수는 기수로서 겪은 부당한 사건과 마사회 내 부조리를 유서로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문 기수는 당시 부경공원의 7번째 사망자였다. 부경공원은 2005년 개장 이래 말관리사 3명과 기수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중 4명이 마사회를 비판한 유서를 남겼다. 문 기수 사망 직후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져 마사회의 진정한 사과와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까지 나섰다.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를 산하 조직으로 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1일 “경마기수는 마사회와 조교사에 대한 단체교섭요구를 필두로 그동안 누려오지 못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을 길이 열렸다”며 “마사회는 기수노동자들의 법적권한이 확인된 만큼 기수들의 노동권을 존중하고 권리보장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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