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들의 경우 아무런 불편 없이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메인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데 견주어, 농인은 비장애인들과 달리 메인뉴스를 시청하고 싶어도 한국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시청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 방송을 하라고 권고했다.

국가인권위가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제기한 수어통역 방송 확대 진정을 검토한 결과 지상파방송사에 메인뉴스 수어통역을 제공할 것과 방송통신위원회에 현행 5%인 수어방송 의무편성 비율을 개선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비장애인 불만이라 장애인 방송 못한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인권위에 입장을 내고 장애인을 위한 방송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MBC는 “(수어통역 화면을) 내어줄 경우 비장애인 시청자의 시청권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청자에게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MBC는 “수어화면이 들어갈 경우 시청자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뜻밖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청각장애인들은 수어화면이 적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비장애인 시청자들은 오히려 수어화면으로 인해 방송영상이나 자막이 가려지고 뉴스에 집중할 수 없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KBS는 “청각장애인들의 방송접근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비장애인의 시청권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앞으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와 타협을 통해 신중히 결정되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SBS는 직접적으로 관련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수어통역 인권위 진정에 SBS는 “개막식 선수들 입장의 경우 수어통역이 자막을 가리고, 공연에는 수어통역이 필요 없어 수어통역 방송을 송출하지 않았다. 또한 동계올림픽 폐막식과 통계패럴림픽 개폐막식에 수화통역을 송출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냈다. 당시 SBS 시청자위원회에는 SBS의 입장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 지난해 3월 ‘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 11개 장애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을 보장하라’ 기자회견을 연 뒤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 지난해 3월 ‘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 등 11개 장애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을 보장하라’ 기자회견을 연 뒤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사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인권위 “비장애인 불편? 장애인은 접근 자체 안 돼” 

인권위는 메인뉴스에 수어방송을 하지 않는 지상파 방송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소극적인 지상파 방송사들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다른 시간대 뉴스, 뉴스특보에 수어방송을 하고 있고 △수어통역 방송으로 인한 화면 가림은 비장애인에겐 불편한 정도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내용 자체를 전달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지상파 3사의 수어통역 방송 편성비율은 KBS 8.87%, MBC 7.45%, SBS 7.1%였다. 관련 고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의 장애인 방송 의무편성 비율은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어통역 방송 5%로 수어 방송 의무편성 비율 자체가 낮다.

인권위는 방통위가 수어통역 방송 의무 비율 5%를 유지해온 데 대해 “농인의 방송접근권 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제한한다”며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방통위가 오랜 기간 동안 5% 비율을 개선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수어방송을 편성하는 KBS 뉴스12 화면 갈무리.
▲ 수어방송을 편성하는 KBS 뉴스12 화면 갈무리.

 

“지금이라도 장애인단체 만나야”

장애벽허물기는 22일 입장문을 내고 “인권위의 권고 결정을 환영한다. 그리고 진정 권고를 받은 지상파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겸허히 수용할 것을 요청한다”며 “방송 등 미디어를 농인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장애인단체가 수어통역 확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방송사들의 몰이해가 드러나기도 했다. 방송사들은 수어통역 확대 문제제기에 장애인용 폐쇄자막을 전면 도입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수어는 한글과 문법 구조가 달라서 문자로만 보여주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뉴스는 내용이 빨리 흘러가기에 자막만 읽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상파 방송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 통보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며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서 필요한 점에 대해 조치를 해주고 관계를 형성했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하고 항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찬 처장은 “지금이라도 만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논의해야 한다”며 “KBS의 경우 관련 부서를 설치하거나 담당자를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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