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기되는 회계오류 문제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위해서다. 윤 당선인이 지난 1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씨를 찾아 용서를 구했지만 이씨는 윤 당선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씨는 화해가 아닌 ‘법의 판단’을 말했다. 오랫동안 투쟁한 피해자의 상처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운동방식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고, ‘윤미향식 운동’의 한계를 드러냈다. 

박찬수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의 21일자 칼럼 “2009년 최열, 2020년 윤미향”을 보면 박 위원은 2009년 4월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인터뷰했다. 환경운동연합 후원금 횡령 혐의로 검찰이 그를 불구속 기소한 직후였다. 빼돌린 돈을 딸 유학비용으로 썼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최 대표는 초기에 건물을 조성할 때 자금을 모자라 사비로 넣었다가 나중에 기부금에서 돌려받았다며 당시의 ‘관행’을 말했고,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은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이만큼 뿌리내린 게 최열 대표의 헌신적 노력 덕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면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을 보면서 그 시절 마주했던 당혹스러운 표정의 최열 대표를 떠올린다”고 했다. “열악한 시민운동 환경과 활동가들의 헌신, 그 과정에서 지나쳐버리는 회계규정, 시민운동을 싸잡아 매도하는 보수 언론의 정치 공세와 ‘그래도 대의를 훼손하지 말라’는 항변까지, 시민운동이 처한 힘겨운 현실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어서다.

▲ 21일자 한겨레 박찬수 칼럼
▲ 21일자 한겨레 박찬수 칼럼

 

공익을 붙들고 온 시민운동이 몇몇 인사의 성과물로 축소돼 그들 출세에 이용된 현실이 이 사태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은 “윤 전 이사장을 비례대표로 뽑은 건 30년에 걸친 개인의 열정과 노력도 크지만 정의기억연대로 대표되는 위안부 인권운동의 빛나는 업적을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대의에 비춰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지켜야 할 자리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구와 극우세력, 일본의 우익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 축소하고 시민운동과 피해자들의 증언까지 훼손당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하나를 지키는 게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 또 그렇게 얻은 자리에서 실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일보 칼럼에선 박 위원 칼럼보다 냉정하게 현 사태를 비판적으로 진단했다. 

진 전 교수는 “기억을 지워버린 기억의 연대”란 글에서 활동가 이상형에 들어맞는 피해자들을 선별해 그들을 순결한 이미지로 만들고 그 틀을 거부하는 이들을 배제하는 형식의 운동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윤 당선인이 모금에 집착했고, 피해자들은 자신들을 앞세워 모금에 열을 올리지 말라는 소송까지 냈다. 

그는 칼럼에서 “남산 ‘기억의 터’ 조형물에 새겨진 247명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 심미자 할머니 이름을 빠져있다”며 “할머니는 정대협을 향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 말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8년 돌아가신 할머니가 8년 후 조형물이 세워질 것을 예견하고 ‘내 이름을 빼달라’고 했을 리는 만무할 터”라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황당한 것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산하 34개 여성단체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아니라 외려 횡령과 배임 의혹을 받는 윤미향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라며 “이들이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윤미향을 옹호한 것은 그들 또한 윤미향 부류의 운동권 서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21일자 한국일보 만평
▲ 21일자 한국일보 만평

 

문제의 발단이 윤 당선인의 국회 진출인 만큼 민주당에도 책임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지난 30년 수요집회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민주당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진퇴 문제도 윤 당선인에게만 맡겨 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역시 윤 당선인의 국회 진출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간 ‘순결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녀상 이미지에 안 맞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은 곧바로 일제 옹호 주장으로 비난받다 배제됐다.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신대’의 또 다른 피해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관련기사 : ‘소녀상’에 갇힌 위안부를 꺼내오는 일]
[관련기사 : 정신대는 위안부와 같은가]

▲ 21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사진기사
▲ 21일자 경향신문 사회면 사진기사

 

그렇게 야박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억을 근거로 싸우던 이들이 이제와 피해자가 나이 들어 기억이 오락가락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꺼냈다. 이날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피해자 이씨는 자신을 ‘배신당한 자’, 윤 당선인을 ‘배신자’로 표현했다. ‘기억’에 바탕을 둔 정의는 힘을 잃어버린 모습이다. 

정의기억연대를 감쌀 게 아니라 곪아 터졌어야 할 문제로써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위안부 운동 살리는 건 ‘비호’가 아니라 ‘손절’이다”란 칼럼에서 “윤미향씨가 국회의원 배지를 욕심 내다가 사달이 났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반대로 봐야 한다. 윤씨가 그대로 위안부 운동을 하면서 국고와 기부금을 엉뚱하게 관리해 나갔다면 일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마터면 위안부 진상 규명이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고 했다.

김 주간은 “허술한 차원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윤씨의 자기관리,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함, 그럼에도 그를 지키겠다는 여권의 결의는 모두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1992년 28세 나이로 정대협에 몸을 담고 간사, 사무국장, 사무총장, 상임대표를 역임한 뒤, 그 후신인 정의연 이사장까지 지낸 그의 경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씨는 자신이 위안부 진상 규명 30년 역사를 상징한다는 자신감 때문에 ‘감히 누가 내 뒤를 캐랴’라고 방심했을 것”이라며 “실제 ‘할머니들을 위해 모았다는 돈이 어디 쓰였는지 모르겠다’는 문제제기가 위안부 할머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누구도 윤씨와 관련 단체를 들춰 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이번 사태로 훼손당한 대의를 상기시켰다. 이날 1면 톱기사 “극우세력, 윤미향 논란 악용해 ‘역사 뒤집기’”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공격하는 국내외 세력을 비판했다. 사설 “나눔의집, 뼈 깎는 자정 의지로 초심 회복해야”에선 피해자들을 이용해 돈벌이(요양원)에 나선 사태를 비판했고, 다른 사설 “‘가해자’ 일본이 무슨 염치로 끼어드나”에서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다음은 21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등교하자마자…인천 고3 ‘집으로’”
국민일보 “與 ‘한명숙 구하기’…대법 ‘유죄판결’ 흔드나”
동아일보 “79일 기다린 등교, 2시간만에 하교”
서울신문 ‘“한명숙 사건 재조사하라” 판결 뒤집기 나선 슈퍼與’
세계일보 “고3 2명 확진…75개교서 전원 귀가 조치”
조선일보 “與, 177석 힘으로 ‘한명숙 유죄 뒤집기’”
중앙일보 ‘“내년 전월세 신고제” 임대소득 다 드러난다’
한겨레 “극우세력, 윤미향 논란 악용해 ‘역사 뒤집기’”
한국일보 ‘이용수 할머니 “배신자 동석해야 진실 밝힐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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