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기자의 날’ 기념식 행사가 열렸다.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됐을 당시 언론을 통제하고 검열했던 신군부에 항의한 기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기자의 날은 2006년 2월 정일용 당시 기자협회장(연합뉴스 기자) 집행부가 전두환 신군부에 항의한 기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그러나 2006년과 2007년 두 해 동안 행사가 치러진 후 유명무실해졌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제15회 기자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의미있는 날을 우리 스스로 챙기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며 “유례없는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도 당시 선배님들 모습을 떠올리고, 올해 기념식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며 기념식을 부활시킨 이유를 밝혔다. 

김 협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언론은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로 강압적 검열에 묶여 광주 학살 참상을 일체 보도하지 못한 채 정부의 일방 발표만 전달했다”며 “전두환 신군부는 검열, 제작 거부 투쟁에 나섰던 양심적 기자들을 언론계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이어 “당시 선배 언론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정신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가 지켜야 할 기자 정신”이라며 “앞으로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15회 기자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제15회 기자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날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 축전도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축전에서 “80년 5월 기자들은 독재와 검열에 맞서 제작거부를 불사했다. 진실과 양심의 자유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였다”며 “기자들은 체포되고 언론사는 문을 닫아야 했지만 기자협회와 기자들의 투쟁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밀알이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들의 생활과 문화, 관심사와 사회적 문제까지 정직하게 기록된 한 줄의 기사, 한 장의 보도사진, 한 편의 방송은 미래세대가 역사를 바라보는 창”이라며 “여러분 노고 덕분에 우리 민주주의는 새로운 장을 열고 또 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20일 기자의 날에 참석한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전을 보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20일 기자의 날에 참석한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전을 보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날 기념식에선 지난 13년 간 중지됐던 ‘기자의 혼’ 상 시상도 진행됐다. 제15회 기자의 혼 수상자는 1980년 당시 한국기자협회장이었던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에게 돌아갔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은 당시 기자협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제작거부 투쟁을 주도했다가 수배를 받았고, 검거되신 후 온갖 고문을 당해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다”고 했다. 

기자의 혼 상 제1회 수상자는 리영희 선생이었고 제2회 수상자는 박정희 유신에 저항하다가 해직된 동아투위와 80년 해직 언론인협의회였다. 

이날 기자의 혼 상은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 유족이 대리 수상했다.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 딸은 “아버지가 정의를 위해 걸어오신 길처럼 저도 올바른 일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제15회 기자의 혼 상 수상자는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에게 돌아갔다.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의 가족이 상을 받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제15회 기자의 혼 상 수상자는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에게 돌아갔다. 고 김태홍 전 기자협회장의 가족이 상을 받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축사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이날을 기자의 날로 제정한 것은 근현대 역사 바로잡기, 언론의 헌법적 위상인 제4부의 책무 의식 확립, 언론 역사의 정립이라는 의미에서 중차대하다”고 전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기자의 날은 언론인이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제작거부를 한 날로, 기자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날”이라며 “ 5·18 관련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보들을 보도해 당시 진실을 알리는 일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기자의 날을 축하드린다. 최근 언론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기자들이 지켜야 할 윤리강령이 있는데 잘 알지 못하고 실천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기자협회 역시 기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에 머물지 말고,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이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중심에 서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기자의 날을 제정한 제40대 기자협회 집행부이자 당시 기자협회장이었던 정일용 한국기자협회 고문은 “언론이 욕을 많이 먹지만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었다”라며 “자랑스러운 전통을 살리면 기자들이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일 기자의 날 시상식에는 조선동아 폐간
▲20일 기자의 날 시상식에는 조선동아 폐간을 위한 무기한 농성단의 시위가 있었다. 사진=정민경 기자. 

한편 이날 기자의 날 기념식에 앞서 조선·동아 폐간을 위한 무기한 농성단의 기습 시위가 있었다. 이들은 기념식이 열리는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곡필, 가필, 작필을 하지 않는 용기를 보고 싶다’, ‘제발 5·18 정신을 잊지 마소서’, ‘채널A 앞잡이 김동훈 회장 물러가라’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김병관 농성단장은 “김동훈 회장은 채널A 압수수색 당시 압수수색을 하면 안 된다는, 채널A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기자들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기자의 날에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