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앞에서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연출해 아이를 울린 뒤 인터뷰까지 진행했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행정지도가 결정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위원장 허미숙)가 20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방송심의 규정 ‘인권 보호’ ‘출연’ 조항 등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행정지도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반영되지 않는 경징계다. 심의위원들은 제재 수위를 결정하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면 법정 제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오가 아빠가 관장에게 맞고 쓰러진 모습을 보며 울고 있다. 사진=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지난 3월15일 방영분.
▲하오가 아빠가 관장에게 맞고 쓰러진 모습을 보며 울고 있다. 사진=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지난 3월15일 방영분.

심의 민원은 지난 3월 국제아동인권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제기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이 “아동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흥밋거리로 소비했다”고 지적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난 3월15일 가수 개리가 만 2세 아들과 체육관을 찾는 장면을 방송했다. 이 방송은 아빠 개리가 아들 하오가 보는 앞에서 체육관 관장에게 연달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하오는 긴장한 채 바라보다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개리는 아들의 뽀뽀에 일어나는 모습을 연출한 뒤 아들을 놀라게 하려는 장난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제작진은 아들 하오를 인터뷰하며 당시 상황을 다시 묻고 아이의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의견 진술자로 출석한 강봉규 KBS 예능센터 CP는 “연출한 상황이 아니다. 개리씨가 실제 지쳐서 쓰러진 상황을 재밌게 묘사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소영 위원이 “프로그램 특성상 종종 이런 문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현장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를 제때 제지하거나 조율할 수 있는 전문가가 현장에 있냐”고 묻자 강 CP는 “보통 부모님과 함께하는 촬영이다. 촬영마다 전문가가 올 순 없다. 하지만 앞으로 시스템을 고려해볼 것”이라고 답했다.

박상수 위원은 “가장 걱정되는 건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정도면 그 장면은 반드시 머리에 입력된다. 그게 어느 순간 떠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미숙 위원장은 KBS 측의 의견진술서 내용을 지적했다. 허 위원장은 “의견진술서 내용을 보면 ‘아빠가 지쳐 쓰러진 상황이다. 아빠가 쓰러지자 우는 하오를 달래주기 위해 아빠가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달래줬다. 환하게 웃는 아빠를 보며 하오가 바로 진정됐다’고 썼다. 제작진은 아빠 관점으로만 살폈다”고 평가한 뒤 “아이 감정 상태가 어떤지 전혀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CP는 “아이를 위한 관점으로 답변서를 쓰지 못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생각이 부족했다. 저희가 연출하고 기획한 장면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아이 입장에서 하오가 얼마나 놀랐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재발 방지 시스템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하오에게 아빠가 맞고 쓰러진 장면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었다. 사진=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지난 3월15일 방영분.
▲제작진은 하오에게 아빠가 맞고 쓰러진 장면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었다. 사진=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지난 3월15일 방영분.

심의위원 3인은 행정지도 ‘권고’를, 허미숙 위원장은 법정 제재 ‘주의’를 주장했다.

김재영 위원은 “이 안건을 계기로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아동을 다루는 방식에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큰 것 같다. 다음에 유사한 사례가 나왔을 땐 법정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수 위원도 “해당 장면은 아이에게 상당한 충격을 줄 소지가 있다. 앞으로는 아이 입장을 더 고려했으면 한다. 문제가 반복되면 법정 제재할 것”이라고 했다.

이소영 위원은 “아이와 동물이 출연하는 광고는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다. 존재 자체가 너무 예쁘고, 계산하지 않는 원초적 반응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줄어들진 않을 것인데 아이가 소재로 전락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정 제재를 주장해 소수 의견으로 남은 허 위원장은 “방송이 어린이를 대상화하고 소비하면서 어린이를 보호하지 않는 게 우려된다. 방통심의위는 오늘 심의를 기초로 여러 자료를 전 방송사와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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