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선거(총선)는 여러 측면에서 ‘초유의 사태’를 야기했다. 여야 합의가 거듭 파행되고 현역 의원들의 물리적 충돌 끝에 선거제 개혁법안이 통과됐지만,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등장했다. 거대 정당의 의석 독과점을 해소하자며 새롭게 만든 선거제도에서 여당과 제1야당 파이는 더 커졌다. 정국을 뒤흔든 선거법 개정의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 ‘위성정당의 헌법적 문제점과 바람직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 토론회’가 20일 정의당·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됐다.

발제자로 나선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대 국회는 동물국회·식물국회였는데 21대 국회는 ‘팝콘’, ‘뻥튀기’, 실체가 모호한 국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국회를 만들어 낸 기본적 틀이 ‘위성정당’ 체제, 다시 말해 ‘위장정당’”이라며 “위성정당은 통상 정당으로서의 모습은 가진다. 이 경우(미래한국당·더불어시민당)는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아주 저급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 비판했다.

민주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49.9%, 비례대표 선거에선 통합당보다 0.29% 적은 33.3%를 얻었음에도 전체 의석 60%를 차지한 결과는 시사점이 크다. 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역구선거를,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선거를 각각 담당함으로써 실질적인 득표율에 비해 과도한 의석의 배분을 추구했다”며 ”거대양당체제는 더욱 강화됐고, 여당에 ‘견제 받지 아니 하는 권력’을 제1야당에게는 다른 어떤 정당과도 결합할 이유를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 ‘위성정당의 헌법적 문제점과 바람직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 토론회’가 20일 정의당·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위성정당의 헌법적 문제점과 바람직한 선거제도 개혁 방향 토론회’가 20일 정의당·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 공동주최로 국회에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실제 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이 선거법 개정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관련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선거법 개정의 결과 종전 방식에 비해 나아진 것도 없지만 더 나빠진 것도 전혀 없다”며 “‘위장정당’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미래통합당이 이번 선거법 개정을 그토록 완강하게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번 총선 득표율을 이전 제도로 계산해도 민주당(민주당+시민당+열린민주당) 의석은 183석으로 동일하고, 통합당은 1석 적은 102석으로 큰 차이가 없다. 위성정당 중에 미래한국당만 존재했다면 민주 170석에 통합 111석, 위성정당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민주 170석에 통합당이 101석을 얻는 결과가 나왔다. 정의당의 경우 위성정당이 없는 경우 15석, 미래한국당만 있었을 경우 9석으로 위성정당에 따른 불이익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미래통합당이 위장정당을 만들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을 경우 10석을 더 가져갈 수 있었지만, 자신들을 따라 민주당이 위장정당을 만들게 한 결과 정공법을 택했을 때에 비해 겨우 2석을 더 얻은 대가로 민주당은 13석을 더 가져가게 허용했다. 물론 이 당들이 챙겨간 15석은 정의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9석과 6석을 빼앗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 21대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율을 위성정당 출현 여부에 적용한 결과. 자료=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래픽=안혜나 기자
▲ 21대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율을 위성정당 출현 여부에 적용한 결과. 자료=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래픽=안혜나 기자
▲ 21대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율을 위성정당 출현 여부에 적용한 결과. 자료=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래픽=안혜나 기자
▲ 21대 총선에서의 정당별 득표율을 선거제도 비례성 정도에 따라 계산한 결과. 자료=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래픽=안혜나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준우 변호사는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바뀐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성격은 분명 ‘개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국회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 △20대 국회 대비 표의 비례성 증진 및 사표 감축 △소수정당 원내 진출 용이성 강화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 등 성과가 실현됐다는 이유다. 그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각종 위헌적 비례정당의 난립으로 무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공직선거법 개정 시 ‘디테일’의 부재, 입법의 불비라기보다는 주요 정당의 퇴행적 선택에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이 상식적”이라 주장했다.

개정선거법이 드러낸 한계,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우선 ‘위성정당’을 어떻게 막느냐다. 김 변호사는 “대표적으로 위헌적 성격을 농후한 미래한국당의 창당과정에서 선관위가 심사기준을 높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정당 결사의 자유에 관하여 선관위의 심사권한을 바로 확대하여 제한하는 것이 온당한지는 다소 의문이다. 또 열린민주당과 같이 정치적 위성정당이지만 헌법적 차원에서는 위헌성이 존재하지 않는 정당의 경우는 입법을 통해서 규제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동시입후보제 또는 석패율제를 전면화하거나, 총선 6개월 전에 창당한 정당만 후보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간접적 규제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거대 정당이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고 소수정당은 그만큼 불리해지는 ‘불비례성’ 문제도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다. 김 변호사는 △준연동형을 연동형으로 전환하는 방안 △스웨덴·덴마크와 같은 권역별 비례(대선거구제)를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 △병립형으로 복귀하되 비례대표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 등 범위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비례공천과정의 불투명성 문제에 대해서는 스웨덴 등의 ‘개방형 정당명부제’ 모델을 제안했다.

나아가 그는 “근본적으로 의원정수 확대, 비례대표 비율 확대를 개혁의 최저선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개략적으로는 민주당 김상희, 박주민 의원이 발의했던 것과 같이 인구 14만~15만명당 1명 기준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고, 비례대표의 경우 최소 지역구의 절반 수준으로는 비율이 확대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 촉구했다. 이 밖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 하향, 청소년의 정당가입 권리 부여, 여성 원내진출 비율 확대를 위한 할당제, 선거기간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공직선거법상 독소조항 문제도 개혁 대상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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