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은 해당 기고글이 시민사회진영에서 정의연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중 일부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지윤 실행위원 기고글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지켜보면 볼수록, 이것은 공인에 대한 정당한 검증과 합리적인 의혹 제기가 아니다. ‘윤미향은 까도까도 또 나오는 양파’라고? 아니다. 저들이 지금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날카로운 칼로 끝없이 벗겨내고 있는 것이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데도 살을 발라내고 뼈를 조각내며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확인되지도 않은 수많은 의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가만있으면 의혹은 사실이 되고, 범죄가 된다. 해명하면 피해자와 싸우는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의혹들이 제기된다. 하나를 해명하면 또 하나가 제기되고, 반박의 내용이 다시 공격받는 빌미가 된다. 남편이, 딸이, 아버지가 끌려나온다.(가족인질극) ‘무간지옥’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일단 사퇴해야 하는 뒤가 구린 사람이 돼 있다.(민주당에서는 역시나 ‘손절’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강력한 프레임이 설정돼서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됐다. 대표적으로 쉼터 문제를 보자. 왜 그 위치에 구했는지, 왜 그 가격에 팔았는지, 왜 거기서 워크샵을 했는지, 왜 뒤풀이까지 했는지, 심지어 뒤풀이에서 왜 일본과자를 먹었는지(나중에는 ‘윤미향 집에서 일제부속 들어간 가전제품 발견’이 기사화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의혹과 문제로 만들어서 끝없이 제기한다. 해명을 아무리 해도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는다. ‘윤미향 남편이 종북 이석기 전 의원과 친했다’면서 악수하는 사진을 계속 올려놓고, 윤미향의 페이스북 몇년치를 다 뒤져서 계속 꼬투리를 잡아내고, 딸의 미국 학교까지 찾아가고, 윤미향 남편의 인생을 스토커처럼 다 들쑤시고 있다.

▲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 연합뉴스
▲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 연합뉴스

가장 기가막힌 게 아버지에 대한 공격이다. 의미있는 일을 하는 딸을 돕기 위해 아버지가 직장도 관두고 컨테이너에 숙식하면서 주야간 경비와 건물관리, 청소, 수리, 조경, 텃밭관리까지 다하며 한 달에 최저임금도 못 받아 온 것은 그 가족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최악의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암까지 얻으며 고생한 아버지는 이제 ‘친인척 비리’로 ‘특혜’를 받은 사람이 됐고 딸은 공개 사과했다. ‘父에 맡기고, 7580만원 지급’? 이 제목을 단 <조선일보>에 묻고싶다. 7년 동안 7580이면 한 달 임금이 평균 얼마라는 게 계산이 안 되는가?

사랑하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아버지가 아니고는 누구도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이런 조건에서 일했다면 아마도 <조선일보>는 ‘노동자 권리 말하더니 한 달에 80만원 주고 초착취, 강제징용보다 더하다’고 제목을 뽑았을 것이다.

내가 속한 단체에 이런 빠져나올 수 없는 무한궤도식의 프레임을 적용해 봤다. ‘사회운동하라고 회비와 후원금을 줬더니 대부분을 상근비로 지급했다!’, 재정이 워낙 열악해 상근비마저 최저임금도 잘 못주고 있다고 하면? ‘사회변혁을 말하더니 상근자를 초착취하며 운영했다! 그동안의 모든 영수증을 제출받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악의를 가진 보수언론과 속보·단독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기성언론의 검증없는 의혹 제기를 걸러듣고, 당사자들의 해명을 교차 확인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윤미향과 정의연이 이용수 선생님을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는 치매 노인’으로 몰면서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라고 했다는 보수언론의 공격을 보자.

이것은 하도 대대적으로 반복돼서 기정사실화됐는데, 엄밀히 확인해 보면 사실과 다르다. 당사자도 아닌 일부 지지자들의 오버와 말실수를 짜깁기하거나, 일부 언급을 왜곡 과장해서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당사자도 ‘악마의 편집’이라고 항의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지모임을 하면서 가해자들이 피해자나 내가 하지도 않은 말과 맥락에서 떼어내 짜깁기한 말들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해서 환장할 일인지 경험했다.

지난주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아주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하지도 않는 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윤미향을 ‘말바꾸며 이용수를 공격하는 사람’, 이용수를 ‘피해자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몰면서 이간질하고, ‘이런 사람들이 억지로 반일을 조장해온 것이 위안부 운동’이라는 식으로 모조리 싸잡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설사 보수언론의 일부 제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찜방’에서 위생 관리가 불철저하다는 보수언론들의 보도는 일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시점, 어떤 맥락에서 그 문제를 제기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성소수자 마녀사냥의 도구가 된다. 물론, 지금 나오는 모든 비판의 목소리들이 전부 악의를 가진 보수언론과 우파들의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쪽에서도 정의기억연대의 운동 방향에 대해서 다양한 지적들을 하고 있다. 위상에 걸맞게 더 철저하고 투명한 회계관리를 해야 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더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 문제를 반일과 친일로 단순화시켜서는 안 된다, 운동의 대의를 내세워서 다양한 의견과 비판들을 억눌러서도 안 된다, 지금의 사태도 성찰과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증언자 이후의 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모두 충분히 공감할만하고 일리있는 지적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그동안의 정의연의 운동과 활동가들이 이런 고민과 문제의식이 없었거나 이 문제들에서 잘못된 대응만을 해 왔다고 본다면 그것은 30년 운동의 역사와 현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통해 발전해 온 운동이고 수많은 논쟁과 고민을 겪어내며 발전해온 운동이다.

둘째, 우리가 이런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함께 더욱 더 치열하고 깊이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도 먼저 지금의 보수언론과 우파세력의 토끼몰이식 마녀사냥을 막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들이야말로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해 온 자들이고, 이 문제를 반일과 친일로 단순화시켜온 자들이고, 운동의 방향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성찰은커녕 이 운동을 소멸시키려고 해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것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금 난리치는 저들이 과거에 이용수 선생님을 뭐라고 비난해 왔는지 한번 찾아보았다. “거짓말 할머니”, “위안부 사기꾼”, “반미”, “종북”... 이랬던 세력이 지금은 이용수 선생님의 일부 발언을 악용하고 왜곡, 확대해서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집단 린치 수준의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운동의 방향에 대한 이견과 비판적 지적은 언제 어디서든 가로막혀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누구를 향해서 어떻게 제기하느냐는 항상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가 된다. 우리의 문제제기가 보수언론이 쏟아붓는 돌무더기에 섞여서 그 일부가 될 수 있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물 밖에서 팔짱끼고 훈수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2~13년 종북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을 때를 돌아보면, 지금보다도 더 했다. 이석기 의원과 경기동부연합에 대해 온갖 의혹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면서 그들은 ‘종북’, ‘간첩’에 온갖 비리를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들로 매도당하고 있었다.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녀사냥 속에 당황하고 위축된 사람들은 온갖 말실수를 하고 빈틈을 보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진보진영에서도 NL진영이 어떠한 사상적 문제점과 실천적 오류를 범해 왔는지 목소리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운동 과정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서 NL활동가들이 범한 잘못에 대한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종복물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와 빈틈에 대한 날선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비판과 지적의 대부분은 어느 정도 타당하고 사실에도 부합했다. 문제는 그것이 보수언론의 집단폭행을 당한 채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는 쏟아지는 돌덩이들 중에 하나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마운 충고가 아니라 더욱 더 아픈 상처가 됐다. 따라서 그 비판이 타당하고 사실에 근거한 것이냐는 핵심이 아니다.

똑같은 주장과 사실도 누가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효과가 난다는 것을 나는 성폭력 피해자 지지모임을 하면서도 배웠다. 지지모임 내부에서 해결해야할 문제점, 토론하면서 나온 내용들을 가해자 편이 알아내서 멋대로 공개하고 피해자 쪽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는데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쏟아지는 돌덩이들 속의 사람에게 다가가 우산을 펴주면서 우박을 같이 맞으며, 그 속에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또 그가 빠진 물 속에 뛰어 들어가 같이 헤엄치면서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운동을 풀어나가는 게 더 좋을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이 운동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에 대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서, 피해자의 주체성을 인정하면서 경청하고 소통하는 방법에 관해서, 2015 한일합의를 넘어서 나갈 길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 정말로 진지하고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이 문제에서 이견과 토론할 쟁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것은 정의연 운동이 특별히 문제가 많아서도, 내가 특별히 고민이 많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누구나 어떤 문제에서도 생각이 다양하고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경기도 안성 쉼터 고개 매입 및 회계 부정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입구에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경기도 안성 쉼터 고개 매입 및 회계 부정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입구에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반일 종족주의’론을 펼쳐온 이영훈이나 일부 <제국의 위안부> 지지자들처럼 지금을 자신들의 기회라고 본다면 어쩔 수 없다. 사실과 논리로는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고 상대방을 토론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코너에 몰려서 반박은커녕 숨쉬기조차 어려운 순간을 기회로 보기 마련이니 말이다.

잊지 말자. 지금의 국면은 정의연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회계투명성을 높여주고, 이 운동의 더 많은 성찰과 발전을 돕기 위한 의도에서 보수언론과 우파세력이 열어 준 공간이 아니다. 내가 가진 이 운동과 정의연에 대한 나름의 진지한 이견과 비판을 절대 이런 쓰레기더미에 섞이게 놔둘 수는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