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해 이른바 ‘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폄훼·왜곡에 단호한 대응”을 촉구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말 개원하는 제21대 국회에서 반드시 관련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5·18 관련법에 반대해 온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이 최근 자당 인사들의 ‘5·18 망언’을 사과한 것도 향후 입법에 청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처벌할지, 실효성은 있을지 기존 법안들이 남긴 의문이 여전하다.

20대 국회에서의 ‘5·18 민주화운동 왜곡 처벌’ 논의는 지난해 2월 미래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논란을 계기로 불거졌다. 김순례·김진태·이종명 의원은 극우논객 지만원씨를 국회로 초청해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열었고, 본인들 역시 5·18 폄훼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지씨는 광주 시민들을 북한군으로 지목하며 ‘5·18 북한군 개입설’이라는 허위사실을 주장한 인물이다.

앞서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TV조선·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은 지씨 주장을 주류 매체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지탄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5·18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왜곡·조작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5·18기념재단과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5~9월 1200여건의 5·18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모니터링해 200개에 달하는 왜곡영상 리스트를 발표했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5·18 왜곡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5·18기념재단이 발표한 ‘2020년 일반국민 대상 5·18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약 70%는 5·18 민주화운동을 조작·왜곡한 ‘가짜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8명(79.8%), 이 중에서 ‘처벌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과반(55.8%)에 달했다.

▲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를 앞둔 '5·18 민주화운동 역사왜곡처벌법'(5·18민주화운동특별법 개정안) 현황. 그래픽=안혜나 기자
▲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를 앞둔 '5·18 민주화운동 역사왜곡처벌법'(5·18민주화운동특별법 개정안) 현황. 그래픽=안혜나 기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5·18 왜곡처벌법안들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5월29일)와 함께 폐기된다. 민주당 광주·전남 당선인들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역사왜곡처벌법을 비롯한 ‘5·18 특별법’들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3선에 성공한 이개호(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의원의 경우 지난 2016년 대표발의한 5·18 왜곡 처벌법을 보완해 새로운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이 의원이 최근 보도자료로 밝힌 새 법안의 요지는 기존 법안과 대동소이하다. 이 의원 발의안은 △5·18민주화운동을 비방·왜곡·날조 △5·18 관련자 또는 단체를 모욕·(악의로)비방 △5·18민주화운동 또는 관련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등 크게 3가지 행위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문서·방송·출판물·정보통신망 이용 △공연히 전시·게시·상영 △타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조·취득·인도·보관·공여·광고·선전하는 행위를 명시했다. 이 같은 죄를 도운 경우 역시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법안을 검토한 법사위 전문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여러 한계를 지적했다. 우선 5·18 민주유공자·유족에 대한 명예훼손, 관련자에 대한 모욕·비방의 경우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 처벌조항을 마련하는 것이 실익이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모욕·비방 등의 대상이 특정되는 경우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형법상 모욕죄로도 행위자 처벌이 가능하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방·왜곡·날조 등을 형벌로 금지하는 건 ‘표현의 자유’, 나아가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전문위원은 “역사를 부인하는 행위가 학문적 방식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 학문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가 될 수 있다”며 “역사의 부인·왜곡의 문제를 법적 판단에 맡기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학문의 자유’ 위축 우려가 반영된 법안도 있다. 지난해 2월 여야 4당(당시 자유한국당 제외) 166명이 공동발의한 안이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5·18 민주화운동 부인·비방·허위사실 유포 등 행위에 해당하더라도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이와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위법성 조각사유)을 뒀다.

이 법안은 또한 ‘5·18 민주화운동’을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 운동”으로 정의했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처벌할 것인가’라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정보인권 시민단체 오픈넷은 금지되는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표현을 규제하면 스스로 표현을 억제할 우려가 있다는 헌법재판소 판례와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지난해 5월9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5·18농성단 관계자들이 검찰에 5·18 가짜뉴스와 역사왜곡 매체들의 불법자금을 수사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해 5월9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5·18농성단 관계자들이 검찰에 5·18 가짜뉴스와 역사왜곡 매체들의 불법자금을 수사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궁극적으로 ‘국론 분열’을 방지한다는 입법 목적이 문제다. 해당 법안은 “일부 세력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끝없이 비방, 폄훼하고 나아가 사실을 왜곡·날조함으로써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이는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단순히 모욕감을 주거나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국론분열이라는 더 큰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바,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등 일반 법률보다 더욱 강하게 처벌할 필요”를 제안 이유로 삼고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국론 분열 방지를 명분으로 처벌법이 만들어지면 5·18 외에 다른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서도 ‘정부나 권력기관이 정한 사실’에 대한 표현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지난해 5·18 역사왜곡 처벌법이 발의된 뒤 보수야당 일각에서 ‘천안함 왜곡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엔 조해진 미래통합당 의원도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언급하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모욕·폄하에 분노하는 국민도 있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는 “5·18 유족 등 관련자 분들의 상처, 광주 시민들이 겪는 차별·위축 문제가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방안처럼 개별적 역사적 사건을 처벌하려는 법리를 만들기보다는 실질적 폭력이나 차별·선동에 허위정보를 교묘하게 섞는 문제들을 ‘혐오표현’ 규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부인·비방·왜곡·날조 등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에 대한 처벌을 법제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도 지난해 2월 민주당 주최 토론회에서 “역사부정죄 취지는 어디까지나 피해자 논거, 인간존엄 논거, 소수자 차별 논거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부정죄가 단순히 과거 사실에 대한 부정이 아닌 ‘현재적 해악’을 치유하는 법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제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세계적으로도 역사부정죄보다는 혐오표현에 관한 입법이 더 광범위하게 제정돼 있으며 혐오표현금지의 연장선상에서 역사부정죄에 관한 법이 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주장했다.

한편 입법적 접근을 떠나 사실을 알리고 조작·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언론의 책무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옥열 광주전남민언련 대표는 미디어오늘에 “근본적으로 언론과 학계의 책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정치인이 5·18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하면 ‘이런 논란이 있다’고 보도하지 말고, ‘무엇이 틀렸다’는 보도를 적극적으로 해줘야 한다”며 “언론은 당연히 그렇게 할 의무와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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