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5·18 전남도경국장 안병하와 언론
5·18 전남도경국장 안병하와 언론
[ 미디어오늘 1251호 사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올해도 의미있는 증언과 사건을 재구성한 보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진상규명 핵심인 발포 명령의 최종 책임에 대해선 오리무중이다. 행방불명자 가족 찾기 역시 진상규명의 한 축으로 남아있다. 왜곡된 역사 바로세우기 측면에서도 5·18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병하 치안감(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 도경국장) 이야기는 특히 현미경이 필요한 역사라는 점에서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모자르지 않다. 5·18 당시 그는 광주 치안을 담당했던 공권력의 책임자인 동시에 신군부 명령에 불복종했던 사실 때문에 5·18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그리고 보훈처 순직을 인정받고 2017년 치안감에 추서되기까지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 서사 사이 주변에 머물렀고, ‘불명예 제대 군인’에 가까웠다. 

▲ 안병하 치안감
▲ 안병하 치안감

안병하 평전(저자 이재의)에 따르면 안병하 치안감은 1980년 5월17일부터 도청 진압 하루 전날인 26일까지 거듭된 상부의 강경 진압 지시에도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고 버텼다. 도망가는 시위대를 쫓지 말라는 수칙을 지키도록 지시(전남경찰국장 주요 지시사항)했고, 비상계엄 확대에 따라 공수부대가 투입되자 경찰서에 보관된 무기를 미리 옮겨놨다. 그는 “지금 계엄군은 경찰과 시민이 충돌하여 경찰의 희생이 발생하면 그런 시민들의 행위를 폭도로 규정할 태세다”라며 계엄군에 빌미를 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계엄사령관 지시로 자위권을 발동하라고 했지만 안 치안감은 오히려 자위권의 정의를 명확히 한 지시 내용을 내려보내 불상사를 방지하는데 집중했다. 안 치안감이 5월25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나눴던 대화(이재웅 도경 항공대장 증언 재구성)에서도 신군부에 대한 저항 의지가 명확히 확인된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경찰이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접수하시오”라고 하자 안 치안감은 “경찰은 시민군의 형제, 가족도 있을 테고 이웃도 있는데 경찰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무기를 사용하면서 진압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신군부에 항거한 죄의 대가는 컸다. 안 치안감은 5월26일 치안본부 요원에 의해 합동수사본부로 강제 연행됐다. 그는 8일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전깃불을 이마에 비추며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다. 그는 결국 한 달 뒤 강제 해직을 당해 경찰복을 벗었다. 그가 사망한 1988년부터 지난한 명예회복 과정이 있었다. 안병하 평전을 쓴 이재의는 “신군부 잔존세력의 지속적인 5·18 왜곡 속에서 안병하는 ‘직무유기를 한 경찰지휘관’으로 폄훼되어 왔다”며 “광주시민들 역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안병하 국장의 역할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 5·18 분열공작에 경찰이 앞장섰고, 이 과정에서 5·18 기간 중 형성됐던 광주시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라고 썼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앞 대로에서 버스에 올라탄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앞 대로에서 버스에 올라탄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 5월27일 경향신문은 “계엄사령부는 전 전남도경국장 안병하 경무관을 광주 소요사태와 관련, 지휘권포기 등의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단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5월28일 ‘광주사태 일지’를 정리하면서 “계엄사는 광주사태와 관련 안병하 전 도경국장을 지휘권 포기혐의로 연행”했다고 전했다. 그마나 한겨레는 1988년 7월29일 투병 중이던 안 치안감을 인터뷰해 “공수부대가 투입되지 않았더라면 광주의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안 치안감은 “광주시민은 결코 폭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년 광주시민을 ‘폭도’로 내몰고,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데 앞장섰던 언론에 울림이 큰 메시지다. 특별법 제정 등 입법을 통한 정치권의 5·18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5·18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측면에서 안병하와 같은 인물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 몫은 언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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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5-20 14:06:22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와 이어져 있다.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끝까지 하는 것이 대한민국 후손으로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