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4월까지 실직자 수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하고 취업자도 최대 감소를 기록하는 등 고용쇼크를 전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보수신문 기사가 주목을 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해고가 너무 어렵다’고 강조하는 보도다.

조선일보는 14일 3면 “기업이 부담 떠안아…한국 실업자, 미국의 20분의 1”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고용쇼크가 현실화했지만 4월 실업자 수는 오히려 감소했고 규모(117만명)도 미국(2300만명)과 천양지차라며 그 이유로 “우리나라 특유의 경직된 노동시장”을 꼽았다. 신문은 “노동시장이 유연한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경기 호황일 때는 사람을 더 뽑고, 반대로 침체일 때는 감원에 나선다”고 했다.

신문은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의 경우 관리직 직원 최소 3400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에 들어갔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비용 절감을 위해 대규모 휴직으로 대응할 뿐 정리해고 카드는 꺼낼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비자발적 희생으로 사회안전망 역할을 대신하며 미국과 같은 실업대란을 간신히 틀어막는 형국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이나 취업자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14일 조선일보 3면.
▲14일 조선일보 3면.

한 마디로 감염재난으로 인한 실업대란 상황에 해고를 더 쉽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쇼크를 막기 위해 정부가 고용지원금을 도입‧시행하고 노동계가 일시적 해고 금지를 주장하는 가운데 ‘기업부담’만 강조하는 보도가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 위기에 쉬운 해고를 도입하면 이후 위기가 잦아들 때 ‘취업’도 더 쉬워진다는 주장부터 실상과 거리가 멀다. 외환위기 때 도입된 정리해고제가 단적 사례다.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기업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정리해고와 파견법 등을 도입했지만 경제가 안정을 되찾았을 때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거 늘고 시스템화됐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에 쉬운 해고 도입과 방치는 노사가 나눠야 할 비용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 전가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나라마다 해고가 쉬운지 여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한다. 국경보다는 사업장과 소속 노동자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하느냐에 달렸단 얘기다. 윤효원 인터스트리올 글로벌노조 컨설턴트는 “미국에서 해고가 자유롭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얘기”라며 “어느 나라든 대기업은 노조가 조직됐을 가능성이 높고 정부 관심도 높기에 쉽게 해고하지 못한다. 미국 앨라배마에 진출한 현대차가 경영이 어렵다고 한국보다 미국 노동자를 먼저 해고하는 것을 봤느냐”고 지적했다.

▲아시아나 항공 하청업체 아시아나KO는 지난 11일 코로나19 위기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8명을 정리해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6일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지만 18일 종로구청과 경찰이 강제 철거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아시아나 항공 하청업체 아시아나KO는 지난 11일 코로나19 위기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8명을 정리해고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6일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지만 18일 종로구청과 경찰이 강제 철거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반면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국경을 막론하고 해고가 쉽게 이뤄진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국내 항공업의 경우 하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정리해고 바람을 맞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수하물 분류와 기내 청소를 맡는 하청업체 아시아나KO는 정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대한항공 기내 청소를 맡는 2차 하청업체 EK맨파워는 비정규직 노동자 52명을 정리해고한 데 이어 300명 추가 해고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기내식 운반과 탑재를 맡는 케이텍맨파워도 200명을 권고사직시켰다.

기사는 4월 ‘실업자 감소’를 언급하면서도 경제 타격과 경직된 노동시장 외에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뉴스핌과 서울경제 등 매체들은 다양한 통계지표를 함께 제시하며 실업자와 실업률이 줄어든 요인을 설명했다.

뉴스핌은 “취업자와 실업자가 동시에 줄어들었다”고 지적한 뒤 “가장 큰 이유는 비경제활동인구의 구직활동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업자 요건 가운데 하나는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 구직활동을 했던 사람으로 즉시 취업 가능한 자’인데, 코로나19 탓에 최근 공공‧민간부문에서 채용일정이 대거 연기되며 구직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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