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방송인 김미화씨의 방송 퇴출은 원세훈 전 국정원뿐 아니라 청와대에 남다른 관심 사항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초기부터 2011년 4월 김미화씨가 MBC 프로그램을 하차하기까지 김씨의 프로그램 퇴출 공작을 재촉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관련 사항을 일일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의 이른바 국정원 ‘좌파 연예인대응 TF’ 수사 기록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정부 비판 연예인에 대한 정보수집과 퇴출을 직접 지시했다. 문화예술인 퇴출 관련 보고문건을 작성한 직원 B씨는 검찰 조사에서 2009년 3월께부터 “손석희, 김미화 등의 연예인들의 방송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실태보고서를 파악해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에 따르면 전임인 김성호 원장 당시엔 내려오지 않던 지시다.

원 전 원장은 일찍이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밝히는 연예인을 ‘좌파 연예인’으로 규정했다. 당시 국정원 사회팀 문화예술파트 담당 직원 A씨는 2017년 검찰 조사에서 이를 두고 “이데올로기 개념은 아니고, 당시 이명박 정부 정책에 비판적 활동을 하거나 반대 견해를 가진 단체나 인물은 좌파라고 원 원장이 규정을 지어줬다”며 “저희 직원들끼리 저녁 편한 술자리에서 이념적 대화를 하거나 좌파‧종북 단어 사용에 불만을 제기한 직원은 묘하게 며칠 뒤 다른 부서로 좌천되거나 ‘교육’을 다녀오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진술했다.

같은해 7월 국정원은 김주성 당시 기조실장 주도 아래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하고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인 방송인 김미화씨가 2017년 9월1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인 방송인 김미화씨가 2017년 9월1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미화씨는 그 가운데서도 집중 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원 B씨는 2017년 검찰 조사에서 “원장이 김미화‧김제동을 미칠 정도로 싫어해서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재촉하며, 왜 이행이 안되냐며 I/O를 통해 빨리 퇴출을 실행하라고 했다”, “원장이 엄청 싫어했던 사람이 김미화”라고 진술했다.

청와대도 국정원에 김미화씨를 비롯한 ‘반정부 연예인’의 거취 보고를 요구했다. 국정원 문건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이 한 사례다. 국정원이 2009년 12월 청와대 홍보수석실 요구로 작성한 이 문건은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가 12월18일 “세종시‧4대강 때문에 용산사태를 잊어버렸다”는 등 악의적 멘트로 여론 선동”했다고 보고하고, “12월21일 외고입시에서 사교육 경험 여부 설문작성을 ‘헌법소원감’이라며 학부모 자극”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가 및 고려사항’에 “손석희‧김미화 등 좌편향 진행자 퇴출 및 고정출연자 교체 권고”라고 썼다. 해당 문건을 작성한 직원은 검찰에 “BH의 요청자료는 BH가 제목과 기한을 모두 정해준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2010년 11월4일 작성한 ‘VIP 일일보고’ “좌편향 방송인에 대한 온정주의 확산조짐 엄단” 문건 일부.
▲국정원이 2010년 11월4일 작성한 ‘VIP 일일보고’ “좌편향 방송인에 대한 온정주의 확산조짐 엄단” 문건 일부.

국정원은 2010년 11월2일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관리할 방안을 2단계로 나눴다. △1단계 온건좌파 우군화, 정치예술인 활동공간 제약과 △2단계 골수좌파 세력을 무력화와 대국민 여론 선점이다. 사흘 뒤 국정원은 ‘문화연예계 종북세력 퇴출 심리전 강화’ 문건에서 100명의 인사를 ‘강성’과 ‘온건’으로 분류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다. 여기에서 방송인 김미화, 배우 문성근, 가수 윤도현 등이 강성으로 분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관련 일일보고를 받기도 했다. 국정원은 2010년 11월4일 작성한 ‘VIP 일일보고’에서 “방송3사 경영진에게 책임의식을 환기시키고, 좌편향 출연자 교체를 촉구”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공정성이 생명인 시사프로 진행자, 반정부 언동을 일삼아온 김미화는 즉각 퇴출”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이 IO(정보담당관)를 통해 김미화씨 등에 대한 프로그램 퇴출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이행되지 않자, 인사권자였던 MBC 라디오본부장을 최우선 교체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VIP 보고 문건은 “특히 보수매체의 지속적 문제제기에도 불구, 무능‧무소신으로 노골적 편파방송을 방치해온 서경주 라디오본부장은 최우선적으로 교체 검토”라고 명시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9년 5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9년 5월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정원이 청와대와 이 전 대통령에 보고한 시나리오는 그대로 시행됐다. 원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 전 국정원장 등 지시로 김미화씨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뒤 김재철 전 사장에게 전달하고 김씨의 퇴출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김재철 사장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의 일환으로 라디오 본부장과 라디오 편성기획부장에 인사 개편했다.

직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담당PD이 바뀌었다. 새 담당PD는 김씨에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자는 얘기를 들었다. 급기야 김재철 전 사장은 2011년 4월8일 김씨에게 MBC 사옥 엘리베이터에서 직접 사퇴를 요구했다. 김씨는 결국 같은 달 25일께 MBC 해당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국정원은 이후 8월9일, 청와대로 추정되는 대외기관 보고용으로 국정원의 이행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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