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원격의료’ 도입을 연일 띄우면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 전과 후의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원격의료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다. 박근혜 정부 때까진 ‘재벌·대기업 배만 불린다’며 반대한 더불어민주당도 21대 국회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동아일보는 이와 관련 15일 1면에서 “총리-장관-차관 원격의료 드라이브”라 적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연이어 원격의료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이 의료산업 육성 의지를 밝힌 것을 신호탄으로, 21대 국회에서 ‘슈퍼 여당’의 입법 권력을 통한 원격의료 도입 드라이브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신종 ‘비대면 의료’ 산업 육성의지를 밝혔다.

▲15일 동아일보 1면
▲15일 동아일보 1면
▲15일 한겨레 3면
▲15일 한겨레 3면

언론은 청와대와 정부가 “일제히 지원 사격에 나섰다”고 했다. 김연명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이 13일 원격의료가 긍정 평가를 받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다음날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그리고 국무총리까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성윤모 산자부 장관은 14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 원격의료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어 이를 위해선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므로 21대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목요 대화’ 행사에서 “보건의료 대책의 과감한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며 도입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겉으론 신중한 입장이지만, 관련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한 상태라 보도됐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김연명 수석 얘기는 코로나19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비대면 의료가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수석부의장은 “청와대도 (도입 기류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이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 국면을 통해 국민이 원격의료에 대한 편리함과 유효성을 경험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오지 군부대 장병이나 원양선박, 교정시설 등 제한된 조건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당정 합의에만 그쳤다. 조선은 “민주당은 기존 당정이 합의했던 원격의료 도입 대상을 보다 넓히는 방안으로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15일 조선일보 4면
▲15일 조선일보 4면
▲15일 세계일보 2면
▲15일 세계일보 2면

원격의료는 영리의료화라며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 모두 반대했던 사안이다. 원격의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도입이 추진됐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반대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대를 공약으로 걸었다. 당선 후 2018년부턴 원격의료 확대를 추진했다.

세계일보는 민주당이 청와대와 온도차를 보는 까닭도 “의료계의 강한 반발과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던 원격의료를 문재인정부가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그동안 찬반 논란이 거세 타협점을 찾지 못했던 원격의료 문제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당정청이 ‘원격의료’가 아닌 ‘비대면 의료’란 용어를 고집하는 것도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비대면 의료’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동안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감염 고위험군 환자가 전화로 약물 처방 등에 대해 의사 상담을 받는 ‘전화상담·처방’이다. 전화상담이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서 원격의료 도입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 2월23일∼3월8일 폐쇄된 은평성모병원의 전화 진료를 받은 환자 87%가 ‘진료가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일각은 반발한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코로나19 혼란기를 틈타 원격의료를 강행한다면 의협은 ‘극단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국민일보 2면
▲15일 국민일보 2면
▲15일 경향신문 8면
▲15일 경향신문 8면

이와 관련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비중있게 전달한 언론은 경향신문이다. 경향은 지난 9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건강과대안 등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를 비중있게 전했다. 정부가 7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에서 핵심 프로젝트로 발표한 ‘비대면 산업 육성’은 사실상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분석했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 기술 수준으론 몇천만원짜리 장비를 들여와도 대면진료의 보완적 수준밖에 안 된다. 화상진료를 대단한 혁신처럼 포장하는 것은 경제 관료들이 얼마나 현장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비판했다.

변혜진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도 경향과 인터뷰에서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대면진료하면서 규칙적으로 약을 먹는지 전화로 확인하는 방식이면 기존보다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원격으로 환자 증상을 보고 진단하는 것은 의사가 눈으로 문진해서 얻는 정보를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최소 진료’나 진단의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향은 15일엔 미국,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등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세계 각지의 의료진들이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주최로 열린 ‘보건·의료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코로나19의 현실과 향후 과제’ 좌담회 기사다.

영상 증언을 한 이들 해외 의료진들은 좌담회에서 ‘인력, 장비 부족으로 환자와 의료진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겪었고 개선을 요구했만 비용 문제를 내세우는 정부와 병원에 의해 거부당했다’며 ‘공공의료제도를 재정립하는 게 코로나19 재확산에 대비하는 핵심’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은 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병상 수가 인구 1000명당 12.3개로 일본(13.1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러나 공공병상은 부족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났을 때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다 숨진 사례가 발생했다. 2017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한의사를 포함한 임상의사 수는 2.3명으로 OECD(평균 3.4명)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반대·신중·찬성 등으로 입장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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