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28세 김현대는 ‘한겨레 1기 1호’ 사원이었다. 기자는 세상을 제대로 알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었다. 1호 사원은 입사 33년이 지나 20대 한겨레 사장이 됐다.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언론사 신뢰도 1위 되찾기, 삼성과 관계 회복, 시민사회와의 관계 재정립, 디지털 유료 독자 10만명 확보 등 여러 분야에서 포부를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취임한 김 사장은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영 상황에도 한겨레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 한겨레 1호 사원이다. 자신의 기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보도는?

“10년 차쯤 오보를 냈다. 법조팀에 가자마자 한 달 만에 1면 기사를 썼는데 대형 오보였다. 제목이 아직도 기억난다. ‘증권감독원장, 기업체 10곳에서 뇌물 받았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1면 머리기사 제목에 10개 기업 명단이 다 들어가 있었다. 정보원에게 받아 기사를 쓴 것이다. 늘 맞는 정보를 주다 그날은 대형 오보를 준 거다. 앞뒤 사정은 있었는데 얼마나 미칠 노릇인가. 10개 기업 가운데 1곳에서 회사가 망할 위기라며 세게 어필했다. 언론중재위 가기 전날 회사 오너를 찾아 100% 오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 정직하게 다 잘못했다고 했다. 오너의 붉은 얼굴이 온화해지더라. 그 오너는 자기가 이제껏 많은 기자를 만났는데 대놓고 오보라고 인정한 기자는 처음 봤다며 좋게 봐줬다. 정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하다.”

▲김현대 한겨레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김현대 한겨레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윤석열 별장 접대 의혹’ 보도와 관련, 지난달 보도 조사 TF를 만들었다. 곧 입장이 나올 거라고 들었다.(편집자주 : 한겨레는 지난해 10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추가조사 없이 마무리됐다”며 검찰이 윤중천씨 진술을 덮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보도는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다음 주 지면에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조사 TF랑 백기철 편집인 중심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언론학자와 법률가 등 외부 조사위원 3명의 말도 청취했다. 내용은 정리된 상태다. 최종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나갈지는 아직 의논하고 있다. 편집국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우리가 정직하게 표현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단어 선택 하나 조심스럽다.”

- 어떤 결론을 내렸나?

“다음 주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물이 있을수록 정직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보도 후 6~7개월 이상 끌었다. 짧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크게 키웠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정직이다.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자기 덫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 보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한겨레 구성원들과 독자들에게 소상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 구성원들에게도 설명이 없었다. 분명한 건 우리가 허물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대상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다. 100% 정확한 기사는 없다. 기사는 늘 오보 위험을 안고 있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깬 상황인데, 구멍 난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인정할 때 오히려 검찰총장을 포함해 사회 권력 기관을 더 엄중하게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11일 보도된 한겨레 보도.
▲지난해 10월11일 보도된 한겨레 보도.

- 후보자 시절 삼성과 관계를 풀겠다고 밝혔다.

“그 부분은 드릴 말씀이 별로 없다. 광고국은 광고국대로 불안하다. 그쪽은 관계가 풀려야 매출이 늘 테니까. 편집국은 여기에 경계심이 있다. 풀고 말고 할 게 사실 없다. 최근 한겨레는 지난 2007년 1월 제정·선포한 취재보도 준칙을 개정하고 2010년 제정한 한겨레 미디어 범죄수사 및 재판취재 보도 시행 세칙을 개정했다. 곧 발표할 것이다. 삼성뿐 아니라 어떤 기사도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삼성은 당연히 광고주로서 한겨레를 인정해줄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취임 이후 직접 삼성에 광고 이야기를 한 적 없다.”

- 보도 PP를 확보해 방송한다고 했다. 자본금을 최소 400억 이상 조달해야 하는데 유효한 공약인가?

“아직은 의지 차원이다. 1980년대 말 해직 기자들을 중심으로 ‘일간지 창간’ 깃발을 들었다. 당시 월간 ‘말’ 지가 있었지만 충분한 목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국민주 모금 방식으로 일간지 한겨레를 창간했다. 방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 시대에 ‘방송’은 1988년 해직 기자들이 한겨레를 만들 때의 도전과도 같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신문과 디지털 방송의 연합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겨레가 생산한 보도 자산을 널리 전파할 수 있게 시사교양PP, 보도PP 또는 종합편성채널로 모든 선택지를 열어 놓고 나아가야 한다. 자금 조달은 상당 부분 자력으로 가능하다. 모자라는 부분을 보태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다.”

- 코로나19 국면에서 경영 상황은 어떠한가?

“신문사 매출은 광고가 핵심이지만 판매, 시설을 활용한 인쇄 등을 통해서도 수입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휴센터 사업, 여행사업 등을 하고 있는데 모든 부문에 다 역향이 있다. 다만 특히 어려운 곳은 자회사들이다. 코로나19로 영화 시장이 위축됐다. 영화 콘텐츠를 만드는 씨네21이 어렵다. 영화사에서 광고를 받아야 하는데 힘들 수밖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역시 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 기간 문을 닫았다. 전반적으로는 어렵다. 수정예산안을 짜고 있다. 단계적으로 비상 계획을 적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은 깎지 않을 것이다. 구조조정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직원들 고용, 기본 급여를 보장하는 게 대표이사의 기본 소명이다.”

▲한겨레 기자들은 지난해 9월6일 오전 편집회의방과 국장실 등에 대자보를 붙였다. 사진=한겨레 취재원 제공.
▲한겨레 기자들은 지난해 9월6일 오전 편집회의방과 국장실 등에 대자보를 붙였다. 사진=한겨레 취재원 제공.

- 지난해 한겨레의 조국 보도를 비판한 기자들의 대자보가 주목을 받았다. 주니어·시니어 세대 간 갈등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후배들의 대자보 비판이 나오기까지 동기와 과정을 오해할 필요는 없다. 선배 입장에서 대자보 내용이 미흡했다고 느낀다면 후배들을 잘 이끌면 된다. 후배들을 못한다고 나무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퇴직한 선배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후배들 훌륭하다.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주니어 기자들은 윗세대랑 다른 DNA가 있다. 진보의 ‘분열’이라는 말보다 ‘분화’라는 말을 쓰고 싶다. 시대가 격변하면서 가치의 단층이 생긴 거다. 진보 안에도 다양한 층이 생겼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사회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세대 간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다.”

▲한겨레 버티컬 매체 슬랩 유튜브채널 갈무리.
▲한겨레 버티컬 매체 슬랩 유튜브채널 갈무리.

- 젠더 이슈를 전담하는 유튜브 버티컬 채널 ‘슬랩’이 존폐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슬랩은 단순한 젠더 소재를 다루는 동영상 매체가 아니라 버티컬 매체 사업으로 시작했다. 그림을 크게 그렸다.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올해 안에 경영수지 균형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중간에 경영진도 바뀌고, 팀장도 떠나고, 담당자는 퇴사했다. 애초 사업 계획 자체가 무너졌다. 슬랩을 어떻게 운영할 건지 영상미디어국과 젠더소통데스크, 한겨레 노조 등에서 의견을 적극 내고 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미래비전실에서 회사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 한겨레에는 편집인 제도가 있다. 편집인과 편집국장, 사장의 역할과 관계는 어떻게 되나?

“2005년부터 편집인을 뒀다. 대부분 회사는 발행인, 편집인, 인쇄인 등 세 가지 모두 대표이사가 겸한다. 대표이사는 전체적으로 총괄한다. 편집인은 한겨레에서 보도되는 모든 기사의 논조를 정하고 중심을 잡는다. 편집국과 논설위원실, 영상미디어국 등 전반을 책임지는 역할이다. 한겨레의 변화를 기획하고 끌고 나가는 편집부문에서의 사장 역할이다. 그래서 편집인 밑에 미디어전략부와 저널리즘책무실을 신설한 것이다. 편집국장은 매일 발행되는 신문을 전적으로 책임진다. 편집국장은 군대라고 하면 ‘전투 사령관’, 제조업체로 치면 ‘공장장’이다.”

▲지난 달 22일 보도된 한겨레 칼럼.
▲지난 달 22일 보도된 한겨레 칼럼.

- 자사 보도에 옴부즈맨 역할을 하는 저널리즘책무실 인원은 왜 한 명뿐인가?

“어느 언론사도 이런 조직을 운영한 적 없다. 지켜보는 상황이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얼마만큼 해낼지 소요될 인력은 몇 명인지 아직 정확하게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이 충분히 역량이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얼개를 짜는 역할을 맡게 됐다. 더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가서 얼마든지 인력을 보완할 수 있다.”

-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겨레신문은 5월15일이 창간 32주년이다. 18일에는 지령 1만호를 맞는다. 한겨레 창간에 앞서 돈을 모은다고 해도 신문을 진짜 만들 수 있을지, 신문을 만든다 해도 얼마나 발행할 수 있을지, 창간한다는 대국민 선언이 대국민 사기극이 아니었을까 몹시 불안하고 갑갑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1만호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돌아보면 기적 같고 자랑스럽다. 기자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다만 ‘지금의 한겨레’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신문에서 방송으로 디지털로, 우리는 과감하게 도전할 것이다.”

- 17일 창간25주년을 맞는 미디어오늘에 한 말씀 한다면?

“미디어오늘은 언론계 동지다. 대한민국 언론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사를 보도한다는 점에서 동지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오늘은 한겨레에 대해서도 엄하게 비판한다. 질책받아야 할 부분은 받아야 한다. 한겨레도 비판 대상을 과하다 싶을 만큼 비판할 때가 있다. 미디어오늘도 한겨레에 대해 오버해서 비판할 때가 있다.(웃음) 야속하고 서운할 때도 있지만 서로 더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겨레도 모자란 게 많다. 누구나 완전할 수 없다. 한 발 한 발 함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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