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클럽을 통한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언론 보도가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7일 국민일보는 “[단독]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라는 기사를 통해 확진자가 성소수자일 가능성을 드러내는 제목을 썼다. 논란이 되자 국민일보는 제목 가운데 ‘게이클럽’을 ‘유명 클럽’으로 수정했다. 기독교를 대변하는 논조를 보여온 국민일보는 동성애를 부정하는 기사를 써왔다.

확진자 신상을 드러내지 않는 언론 보도도 적지 않았지만 국민일보 기사가 나온 이후 다른 언론에도 유사한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경제가 “용인 확진자 방문 이태원 게이클럽... ‘남자들, 줄 서 있었다’”고 보도했고, 뉴스1은 “게이클럽 다닌 용인 확진자... 함께 여행한 친구도 ‘양성’”기사를 냈다. 조선일보 등은 기사 내용을 통해 해당 클럽을 ‘게이 클럽’이라고 언급했다. 

▲ 7일 국민일보 보도.
▲ 7일 국민일보 보도.

9일 확진자 동선에 동성애자들이 주로 방문하는 ‘블랙수면방’(찜방)이 드러나자 문제적 보도는 다시 이어졌다. 블랙수면방이 동성애자가 방문하는 장소라는 불필요한 정보를 언급하며 자극적인 기사가 나오고 있다. “‘뚱보 출입금지’ ‘게이전용구역’...블랙수면방의 충격적인 실체”(에너지경제), “블랙수면방 어떤곳? 남성 동성애자 성행위 외모 따라 입장가능”(충청리뷰), “찜방 업주 입장은? 방문자 경악하게 했던 이유는 위생”(이투데이) 등이다.

특히 자극적인 뉴스를 쏟아내며 소셜미디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한 위키트리, 인사이트의 악의적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매체는 이전에도 확진자 동선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는 기사를 썼다.

[관련기사: 스타벅스 활보? 이러라고 알려준 확진자 동선이 아닌데]

위키트리는 “‘진짜 뻔뻔하다’ 이태원 클럽 사태에 격분한 성소수자들, 역풍 맞았다” 기사에서 네티즌 반응을 이용해 성소수자를 공격했다. 성소수자 단체가 개인의 성적 지향이 드러날 수 있는 동선 공개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을 언급한 다음 “(성소수자 단체가) 신천지와 공범”이라는 등 댓글을 인용하는 내용이다. 이번 확진자 동선 공개 이전부터 성소수자 단체들이 구체적 동선 공개를 우려해온 사실은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 위키트리는 페이스북 기사 소개 멘트를 “의료진은 저렇게 고생하는데...”라고 쓰고, 기사에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 사진을 함께 배치하며 성소수자 단체에 대한 비난을 유도했다.

[관련기사: 확진자 동선공개, 가이드라인 문제 없을까]

▲ 위키트리 기사 갈무리.
▲ 위키트리 기사 페이스북 소개글 및 링크.

위키트리는 10일 이태원 클럽 명부에 연예인 이름이 나왔다며 해당 연예인 이름을 구체적으로 쓴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불명확한 정보다. 위키트리 역시 기사 하단에 “현재 해당 글은 출처, 기사 링크 등을 알 수 없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보인다”며 사실과 다른 정보 유포 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썼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면서도 단정하지 않고, 일각의 주장을 소개하는 식으로 책임을 피하는 방식이다. 

인사이트는 “이태원 게이클럽서 코로나 감염된 확진자들, 강남 ‘게이사우나’도 갔다” “방역당국 연락 씹고 있는 이태원 게이 클럽 방문자가 올린 글” 등 기사를 썼다. 또한 인사이트는 10일 사안과 무관한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난리인데 반나체로 광란의 클럽 파티 연 게이 배우” 등 동성애자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추이를 보면 7일 오후 1시 기준 게이클럽 키워드는 4위, 10일 오후 3시 기준 블랙수면방(찜방) 키워드는 2위를 차지했다. 방역당국 발표와 더불어 언론의 대대적 보도가 이어지면서 관심을 키우는 모양새다. 

▲ 인사이트의 관련 보도.
▲ 인사이트의 관련 보도.

시민단체들은 언론 보도가 혐오를 조장하고 방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자체가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굳이 단독취재인 양 확진자 동선을 전시하고 아웃팅하는데 그치지 않고 확진자 기록을 중계하다시피 하는 국민일보는 심각한 인권 침해와 혐오 선동의 극단을 경신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는 “보도로 인해 진료를 받는 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됐고, 낙인과 아우팅 위험은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이 더욱 존재를 드러낼 수 없게 만들었다. 과도한 언론 보도가 코로나 19 방역에 문제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7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기자협회에서 자율적으로 만든 감염병 보도준칙 중 ‘감염인, 가족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면서 준수를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 지난 2월 코로나19 여파로 임시휴업을 한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에서 상가연합회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월 코로나19 여파로 임시휴업을 한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에서 상가연합회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 보도준칙’은 ‘감염인’에 대한 취재만으로도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염인은 물론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1년 제정된 ‘인권보도준칙’은 반드시 필요 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언론 보도로 인한 문제는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9일(현지 시각) 일부 언론이 성 소수자가 주로 찾는 장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현황을 구체적이고 선정적으로 다루면서 성소수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8일(현지 시각) “동성애자 커뮤니티 회원들은 주요 언론 매체인 국민일보가 확진자가 동성애자 클럽에 있었다고 보도한 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언론은 한국에 동성애 차별이 있어 동성애자들이 성 정체성을 숨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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