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적 책임을 방기했다면 재허가 취소도 가능하다.”

탁종열 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이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태를 지켜본 소회다. 방송 공공성은 방송사 존재 이유를 가름할 정도로 중요한 가치이지만 허술한 감시망 속에 제대로 된 견제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탁 전 소장이 강조하는 공공성은 방송사 내외를 막론한다. 방송 내용이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할 뿐 아니라 방송사 내부도 민주적이고 인권 친화적이어야 한다. 여기엔 노동 인권도 포함된다. 지난달 29일 서울 충무로 인근에서 만난 탁 전 소장은 “한국 언론은 노동을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고 대표적 노동법 위반 현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탁종열 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4월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탁종열 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 사진=손가영 기자.

‘이재학 PD 해고’ 부당하다 비판한 직원 왜 없었나

탁 전 소장은 언론계 노동운동에 오래 몸담았다. 1992년 인쇄 노동자로 일하면서 인쇄 노조에 가입해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언론노조 상근 활동가로 14여년 일했다. 2018년엔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현장과 연대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청주방송 사태에 방송 재허가 취소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사 사유화와 비정규직 남용이 심각하다는 게 이유다. 사유화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보도 사유화가 두드러졌다. 청주방송은 대주주 두진건설의 개발 사업을 수년간 ‘뉴스 리포트’로 꾸준히 보도했다. 2017년엔 경쟁업체 ‘우미건설’을, 지난해엔 자연녹지구역 ‘구룡공원’ 개발제한을 주장한 민관 협의체를 연일 보도로 비판해 ‘대주주 사업을 돕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진건설은 구룡공원 개발업체다.

한 청주방송 간부는 2016년 두진건설이 개발한 청주 방서지구 주택조합장도 맡았다. 대주주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의 사위는 경영국 직원으로 입사해 현재 보도국 기자로 일한다.

▲청주방송 홈페이지 2015년 6월 방서지구 관련 보도 검색결과.
▲청주방송 홈페이지 2015년 6월 방서지구 관련 보도 검색결과.

‘가족 회사 일감 몰아주기’는 사내 오랜 논란이었다. 청주방송은 지난 십수년간 이두영 의장 친척의 업체에 무대·세트 설치 및 음향·조명·발전차 장비 대여 등을 수의계약으로 맡겼다. 이 업체는 청주방송 소유 CJB미디어센터의 카페, 웨딩홀, 공연장 운영권도 위탁받았다. 이 의장 아들이 등기이사였던 한 업체는 각 1억원 이상씩 청주방송과 자회사 CJB엔터컴의 지분 투자를 받았다.

탁 전 소장은 “사유화는 이재학 PD 사망의 본질 중 하나”라고 했다. “회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유화하면 자정 작용이 망가진다. 직언·고언하는 직원들은 사라지고 권력자의 ‘심복’만 남는다.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을 받는다. 이재학 PD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이유”라고 분석했다.

“청주방송 안에서 강한 운동 일어나야”

탁 전 소장은 “지역 민방 역사는 대주주 사유화를 막고 공공성을 지키려 한 싸움이다”며 “청주방송도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슷한 예로 2004년 iTV(폐국)를 들었다. 지배주주 동양제철화학과 대한제당은 방송경험이 없는 인사를 관리자로 앉히거나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모회사로 임대료는 매달 챙기는 등의 사례가 쌓이며 노사 갈등이 격화됐다. 그러다 2004년 회장이 자신의 선거 출마에 방송사를 동원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직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언론노조 iTV지부는 방송위원회에 ‘재허가를 유보하라’며 파업했다. 솜방망이식 조건부 재허가는 지배주주 사유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동양제철화학을 배제한 조건부 재허가를 요구했다. 일부 노조 간부들은 단식 투쟁까지 돌입했다. 결국 재허가 취소 결정으로 2004년 12월31일 iTV는 정파됐고 조합원은 모두 해고됐다.

탁 전 소장은 이와 관련해 청주방송 노조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재학 PD 사망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 간부들은 모두 과거 노조 간부를 지냈다. 이 PD는 생전 이들이 법원에 거짓 증언을 내놓거나 자신을 도운 직원을 회유·협박했다고 증언했다. 탁 전 소장은 이 PD 노동자성을 입증할 자료 제공 정도는 노조가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안타깝다는 지적도 했다. “언론노조도, 청주방송지부도 아프게 받아들일 문제”라고 했다.

2004년 언론노조 iTV지부 등이 지배구조 개혁과 공익적 민영방송 실현을 걸고 싸웠던 모습. ⓒ 이창길기자.
2004년 언론노조 iTV지부 등이 지배구조 개혁과 공익적 민영방송 실현을 걸고 싸웠던 모습. ⓒ 이창길기자.

언론, 남 탓 말고 자기 비판 시작해야

방송계 비정규직은 탁 전 소장의 화두다. 그는 2018년 대구MBC 프리랜서 CG노동자들을 만난 때를 항상 곱씹는다. 죄책감과 반성이 지금까지 남았다.

당시 이들은 10년치 ‘주급명세서’를 들고 한빛센터를 찾았다. 2012년 명세서가 턱없이 적었다. 이유를 묻자 ‘MBC 파업 때 일하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170일 간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장기 파업을 했을 때다.

프리랜서들은 파업 찬반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일을 쉬어야 했다. 회사 사정으로 일을 못하면 노동자는 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프리랜서 지위 때문에 수입 없이 쉬었다. 탁 전 소장은 당시 언론노조 조직실장이었다. 그는 6년 후 만난 이들에게 “노조 만드시면 꼭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이 CG작업자들은 지난해 1월 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탁 전 소장은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설립을 구상했다. 언론계 내부를 파고드는 노동운동이다. 언론이 보편적 노동권을 존중하는 원칙을 세우고, 다른 산업 비정규직 문제만 비판하는 자기 모순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그는 “노동을 폄훼하는, ‘노동이 사라진 사회’를 만든 장본인이 언론”이라며 “언론계 비정규직 조직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들을 엄호해주고 연대할 중요한 세력이 정규직들이고 그 노조다.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탁종열 전 소장이 대구MBC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모습.
▲탁종열 전 소장이 대구MBC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모습.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언론인들이 모여 노동인권저널리즘연구회를 만들고, 언론인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교육을 활성화하며 노동·언론 관련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짜 노동 보도를 지원하는 곳.” 탁 전 소장은 언론노조 역대 위원장들과 노동 전문 기자들을 만나 설립을 준비 중이다.

언론을 향한 불신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잘못된 취재 관행, 권력과 거리두기 실패, 자기 성찰 없이 남 비판만 하는 모습 등이 확인되며 불신이 심화됐다. 탁 전 소장은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미 위기인 미디어산업은 더 위기에 빠진다”고 했다. 방송사들은 결국 수신료 인상이나 방송통신발전기금 개편 등 정책적 지원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국회를 움직이려면 시민 지지 없이 불가능하다. 그는 “자기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신뢰 회복은 없다”고 밝혔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건은 바로미터다. 언론계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신뢰가 회복할지, 불신이 쌓일지 나뉜다. 탁 전 소장은 “이미 MBC 계약직 아나운서와 TJB아나운서의 노동자성 인정 싸움,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들 성차별 문제에 (언론노조가) 적극 개입하지 않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언론노조를 정규직 노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언론계, 정규직 노조, 언론노조 등이 먼저 나서서 사회적 역할을 높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건 언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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