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이것이 언론이다! ‘절망편’

1. 코로나19로 파상공세 하다가 안 먹히니 ‘정부가 코로나 복권 맞았다’는 언론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코로나19는 선거 이슈를 대부분 잠식했습니다. 자연히 언론들도 코로나 보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선미디어감시연대의 신문 보도 양적분석 결과, 선거 보도가 다룬 주제 중 ‘기타’ 항목이 분석을 시작한 2월17일 이래 초반에는 전체 선거보도의 40%까지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는 ‘기타’ 항목에 코로나19 관련 보도가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선거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선거 보도’들 중 상당수가 코로나19 관련 보도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코로나19에 대한 반응은 실제 현실세계를 반영한 과학적 태도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 전략의 일환’에 가까웠습니다. 

‘중국발 입국금지’ 신중해야 한다던 언론, 감염 확산되자 ‘친중 정부’ 총공세

언론은 2월 말을 기점으로 신천지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감염자가 빠르게 늘자, ‘친중 정권이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서 감염자가 늘었다’며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 <사설-중국이 ‘한국에 가지 말라’ 한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2월25일)에서는 “중국 눈치 보느라 방역 문을 열어놨다가 중국이 한국을 위험국 취급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에서 코로나19(조선일보는 ‘우한 코로나’라고 표현) 확진자가 급증하게 된 것은 중국으로부터 감염원 차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총선을 앞두고 시진핑 방한 쇼를 하려는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류의 주장은 선거 기간 내내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반복됐습니다. 중앙일보도 2월24일자 1면에 1면에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2월24일)라는 특별 사설을 싣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처음부터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팩트체크 기사 <우한 폐렴 Q&A,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1월28일 김철중·최원우 기자)에서 “하지만 실제 중국인 입국 금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중략) 전문가들도 중국인 입국 금지는 감염병 관리 조치로 과대하고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우한 폐렴 지나친 공포 누구에게도 도움 안 돼>(1월31일)는 1월 말 나왔던 의사협회의 중국인 입국 제한 의견을 전하면서 “중국인 입국 금지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일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죠. 중앙일보 역시 <중국인 입국 금지? 사스·메르스 때도 안 했고 WHO도 신중>(1월28일 정종훈·이유정 기자)에서 “국경을 아예 막아버리면 밀입국 같은 사각지대로 생각지도 못한 감염이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중략) 이번에 전면적인 입국 제한 조치가 이뤄지면 (중국의) 보복 차원에 또 다른 한한령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인 입국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신중론을 폈습니다. 이는 국내·외 방역 전문가들이 당시 했던 이야기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상의 대전환이 종종 일어나는 학문이라고 해도 한 달은 과학적 결론이 바뀌기에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월 말 ‘팩트체크’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입국차단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던 언론들 중, 어째서 다음 달인 2월 초부터는 ‘방역의 기본’인 것처럼 보도했는지 설명한 언론은 없었습니다.

중앙일보의 ‘의료 사회주의자 색출’, 감염병 국면의 ‘신종 매카시즘’

국내에서도 입국금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나왔습니다. 2월10일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전염병이 생길 때마다 언론에서는 ‘검역 구멍 뚫렸다’는 식의 제목을 단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비판”이라며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에 대해서는 “설령 중국인 입국자를 막아도 우회적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일본과 태국,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나”고 말했습니다. 2월6일 기모란 한국역학회 편집위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2월6일)에 출연해 “(입국금지)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미 우리 안에 (바이러스가) 들어와 있는데 계속 문만 지키겠다? 그건 조금 상황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2월10일 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는 ‘입국 금지는 과잉대응’이라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여러 인터뷰에서 “입국금지와 관련된 질병의 예방효과를 측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고,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2월 말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입국금지는 이미 상황이 다 지나가 버려서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에 대해서는 논평할 것도 없다”며, “아직도 중국 프레임에 갇혀서 싸우는 걸 보면 국민 건강은 신경도 안 쓰는 인간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들은 곧 ‘의료 사회주의자 색출’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은 <의료계 “진보진영 ‘김용익 사단’ 이진석 실장이 코로나 실세”>(3월3일 장세정 논설위원)에서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익명의 ‘의료계 소식통’을 인용해 공직을 맡고 있는 일부 의료계 인사들과 ‘중국 입국금지’ 주장에 비판적 의견을 낸 전문가들을 ‘의료 사회주의자, 코로나19 비선’이라 몰아세웠습니다. 조선일보도 <‘코로나 방역 실패 핵심’ 지목된 문재인 케어 입안자>(3월5일 조성호 기자)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 지난 3월3일 엄중식, 이재갑, 이준구 등 방역학자들을 ‘코로나 비선’으로 지목한 중앙일보 칼럼.
▲ 지난 3월3일 엄중식, 이재갑, 이준구 등 방역학자들을 ‘코로나 비선’으로 지목한 중앙일보 칼럼.

결국, 자발적으로 결성된 코로나19 전문가 자문단인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회원 보호’를 목적으로 해산되었습니다. 애초에 감염병·방역 관련 학과는 의료계에서도 기피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없는 전문가들마저 ‘친중 인사’, ‘사회주의자’로 매도해 정부 자문단을 해체시킨 것은, 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와 같은 세계적 지성들마저 핵무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매카시즘 광풍을 생각나게 합니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은 대부분 공직을 맡고 있거나 언론과의 접촉이 많은 학자들로 ‘비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심지어는 조선·중앙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코로나 정치 안 먹히자, ‘정부 운 좋다’ 태세전환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지적한 대로, “진실은 우리의 필요나 욕구, 정부, 이데올로기,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금지 안 해서 방역실패’ 프레임은 미국, 유럽 등 ‘중국발 입국금지’를 실행했던 선진국들까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해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습니다. 반면 한국은 전체 감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감염에 대한 실질적 방역대책에 있어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성과를 거둬 국내외의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나날이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긍정 평가가 늘자, ‘코로나 정치’에 앞장섰던 언론들은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금지'를 외치던 언론은 방역 시스템의 성공 요인을 짚기 위해 무려 박정희 시절 국민의료보험 도입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중앙일보 <이현상의 시시각각-문재인 정부는 운이 좋다>(3월27일), <전영기의 시시각각-2020년 총선 승자는 누구인가(3)>(3월30일), <이하경 칼럼-코로나 방역, 박정희의 유산을 발견하다>(4월6일)등 논설위원과 주필의 칼럼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방역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은 누적된 토대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등장한 것이 ‘모든 공은 질병관리본부와 국민에 있고 대통령은 자화자찬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프레임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 장면만 보면 간단히 드러납니다. 조선일보는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 “확진자 감소 이어지면 한국은 방역 모범사례”>(3월10일 안준용 기자)에서 신규 감염자가 점점 감소 추세였던 3월9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가 현재 추세를 계속 이어나가 안정 단계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방역 모범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자화자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발언 내용을 보면 조선일보가 발췌한 발언 바로 다음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성과는 전적으로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을 믿고 성원해 주신 국민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몇 주 후 미래통합당 측이 ‘국민과 의료진의 공을 정부가 가로채고 자화자찬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정부는 성과를 방역 당국과 국민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언론들은 ‘자화자찬’이라고 평가했던 대통령의 과거 발언 내용을 확인하는 대신 미래통합당의 비판을 ‘따옴표 보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방역 대책이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코로나 정치에 앞장섰던 신문들은 경제 문제를 꺼내며 우회로를 찾으며 정부의 방역 대책은 ‘코로나 복권’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 것이 조선일보의 <김창균 칼럼-문의 ‘코로나 복권’, 실력인 줄 착각하면 쪽박 된다>(4월9일)입니다. 이 칼럼에서 김창균 논설위원은 “나랏일이 잘 풀리면 정권 덕, 꼬이면 정권 탓이 되는 게 세상 이치”라며, “코로나 카드 정도가 아니라 ‘코로나 복권’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위에서도 언급된 장세정 논설위원은 총선 직전 <투표일 다가오자 ‘마술’처럼 환자 급감…“공격적 검사해야”>(4월13일 장세정 논설위원)에서 한 의사가 SNS에 올린 글을 근거로 정부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코로나 검사를 줄이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이미 중앙일보 온라인 판 팩트체크 기사 <“정부가 총선전 코로나 검사 막는다” 의사가 부른 조작 논란 [팩트체크]>(4월1일)에서 2주 전 ‘일일 진단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기보다 불규칙성에 더 가깝다’고 판정했으나 이 기사는 그다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2. 여론조사는 정말 ‘못 믿을 것’이었을까?

이번 선거기간에서 두드러진 보도 행태 중 하나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입니다. 총선 전 여론조사가 대체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세를 점쳤는데, 일부 언론들은 2월 초부터 선거 기간 내내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적이라고 규정하며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샤이 보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샤이 보수’ 주장의 핵심, “여론조사 표본에 문 대통령 지지자가 많다”

2월 말, 언론들의 관심은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에게 쏠렸습니다. 여론조사는 전반적으로 이낙연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그러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리얼미터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중앙일보는 <리얼미터 표본 편중 논란…응답자 66%가 “문 대통령 찍었다”>(2월26일 한영익 기자)에서 “여론조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65.7%가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며,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대비 얻은 표 비율 31.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라고 보도했고, 조선일보의 기자 칼럼 <여론조사 표본은 입맛대로?>(2월27일 홍영림 기자)은 같은 이유를 들며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신뢰도를 비판했습니다. 홍영림 기자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하고 있는 총선기획조사 결과도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66%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응답자 중 현 정부나 대통령 지지자가 너무 많아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이러한 논리는 한 달 뒤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여론조사 회사도 못 믿을 선거 여론조사>(3월25일 송평인 논설위원)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오히려 비슷한 기간 발표된 여론조사 중 두 후보의 격차가 가장 작았던 조사였습니다. ‘여론조사 표본에 문 대통령 지지자가 많아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된다’는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기사 외에도 선거 기간 내내 다양한 형태로 반복·재생산 되었습니다.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원은 선거 이후 한국일보에 <샤이 보수도, 여론조사 착시도 없었다>(4월20일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원)이라는 기고문을 냈습니다. 정한울 연구원은 일련의 ‘진보 편향 여론조사’라는 주장에 “박근혜 정부 시절 선거 여론조사에선 ‘직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비율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과거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비율이 높게 나왔다. 미국 등 모든 나라 선거 여론조사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정치적 태도가 약한 응답층의 승자 편승 경향(밴드 웨건 효과), 현재와 과거 시점의 판단 변화에 따른 인지 부조화 해결 등 차원에서 승자를 지지했다는 응답이 실제보다 높게 나오기 마련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편차가 더 커진다는 데엔 학계에서 큰 이견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선거 전에는 기사 말미에서 ‘한 줄 반박’ 정도로만 겨우 언급되던 내용입니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언론들의 ‘여론조사 편향 프레임’에 우려를 표했던 셈이죠.

유튜버와 인터넷 댓글 이용자에게 ‘대안적 사실’ 믿게 하고, 자신들까지 휘둘린 대표적 사례

선거 기간 여론조사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독 효과'라는 정반대의 현상이 꼽힙니다. 대세에 편승하려고 하는 ‘밴드웨건 효과’, 패자에 대한 동정표를 주려고 하는 ‘언더독 효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중 어떤 효과가 강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것을 두고 ‘물이 반이나 차 있다vs물이 반 밖에 없다’고 논쟁하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입니다. 현실에서는 밴드웨건 효과로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나오는 정당에 표를 주는 사람만큼이나 어느 한 정당이 독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반대 정당에 표를 주는 사람도 섞여 있기 마련인데, 어떤 효과가 더 클지 미리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느 정당이 유리하게 나오는 여론조사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한 주장인 이유입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안심번호 도입과 무선전화 비율 상승 등의 요인으로 지난 선거에 비해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향상된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깝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사설-다시 정권 입맛 맞는 여론조사, 수사로 신뢰성 검증해야>(2019년 9월5일)에서 “검찰 수사로 (여론조사에) 흑막이 있는지 가릴 필요가 있다”고까지 주장했었는데, 당연하지만 여론조사에는 흑막 따윈 없었고 조선일보는 흑역사만 누적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이런 보도들이 쌓이면서, 보수 유튜브나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기존 여론조사와 신뢰도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길거리 여론조사’나 ‘네이버 댓글란 여론조사’를 맹신하며 ‘대안적 사실’에 빠졌습니다. 선거 기간 전후 나온 대표적 음모론인 ‘차이나게이트’나 ‘사전투표 조작설’은 이런 왜곡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최근 조선일보는 총선 후 사전투표 조작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극우 인터넷 여론으로부터 ‘좌파 프락치’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데,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언론이 할 일은 여론조사에 부당하게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정확했다고 알려진 정당들의 내부 여론조사 및 판세 분석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내 분석하는 기사를 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3. 온라인 허위정보 넙죽 받아먹은 ‘차이나게이트’ 음모론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차이나게이트’라는 음모론이 확산됐습니다.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으로 구성된 중국인 여론 조작단이 친정부 댓글을 달며 국내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여론조작은 김대중 당선 때부터 시작했으며, 태블릿PC를 조작해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황당한 수준까지 나아갔습니다.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시작된 이 음모론은 3월1일 극우 네티즌들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띄우기 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차이나게이트’가 네이버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문재인 지지는 민심이 아니다 →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옹호 청원이나 문재인 정권에 옹호적인 네이버 댓글은 조작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시작된 음모론이 증거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동아는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초기부터 기사화에 돌입했습니다. 조선일보 <조선족이 국내 여론 조작? 온라인서 ‘차이나게이트’ 시끌>(3월2일 오로라·표태준 기자)는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음모론의 내용을 기사 전체에서 충실히 인용하더니, “중국이 다른 나라의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다는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라며 다른 나라의 의혹을 나열했습니다. 음모론에 신빙성을 부여하려는 태도입니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는 <김순덕 칼럼-청와대가 펄쩍 뛴 ‘차이나게이트’>(3월5일)에서 “지금까지 청와대가 이렇게 신속하게 나선 적이 있었나 싶다”면서 청와대가 청원 사이트의 트래픽을 빠르게 공개해 ‘차이나게이트’의 허구성을 밝힌 것이 “중국의 여론 조작 여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청원 사흘 만에 딱 잘라 부인한 건 이례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작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시밀러웹 트래픽 통계를 기반으로 한 ‘베트남 청원 조작설’이 퍼졌을 때도 국가별 트래픽을 공개하며 대응한 적 있습니다. 애초에 근거 없는 음모론이 횡행하는 상태가 더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 지난 3월5일 청와대가 허위정보에 빠르게 반응한 건 ‘이례적’이라며 ‘국운을 건 실태 파악’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
▲ 지난 3월5일 청와대가 허위정보에 빠르게 반응한 건 ‘이례적’이라며 ‘국운을 건 실태 파악’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 대기자는 이어서 조선일보와 똑같은 논리로 ‘중국이 다른 나라의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다는 의혹’을 들더니 “중국공산당의 통전공작이 어디까지 파고들었는지, 국운을 건 실태 파악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설령 다른 나라에서 인터넷 여론조작을 시도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중국의 한국 여론조작 여부와 여론조작의 방향, 내용까지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별지섹션에 실려 선거보도로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중앙일보도 <코로나 여론 조작 논란…‘데이터 방역’ 필요하다>(3월3일 심서현 기자)에서 “음모론이 대개 그렇듯, 내용은 충격적이고 검증은 어렵다”라고 일축하면서도 ‘기사 댓글들의 접속 국가 비율, 우회 접속 비율 공개’, ‘청와대 국가별 트래픽 상시공개와 소셜 로그인 삭제’등의 방법을 제시하며 “음모론에 적용할 ‘데이터 공개’ 방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이미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의중대로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의 주장대로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이런 대책은 음모론 방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사건의 본질이 전혀 다른 두 현상을 잇는 보도가 나오는 것은, 기사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근거는 그 다음에 찾기 때문입니다.

결국 ‘차이나게이트’ 음모론은 정치권까지 옮겨가, 미래통합당의 ‘포털사이트 접속 국가 표시 의무화’라는 정책으로까지 나왔습니다. ‘여론조작 수괴’로 찍힌 트위터 이용자 한명과 ‘신원불상자’들은 검찰에 고발됐습니다. TV조선은 총선 직전에도 <탐사보도 세븐>(4월10일)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차이나게이트 음모론을 무려 탐사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언련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보고서 <극우발 ‘차이나 게이트’ 확대재생산한 TV조선, 선방심의위는 행정지도>(4월24일)에서 짚었듯이 이미 모두 반박된 내용에 더 엉성한 내용을 붙여 어떻게든 음모론을 사실로 포장하려는 보도로서 3월 초에 조선일보가 낸 보도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거방송심의위는 유튜버 황희두 씨의 영상을 왜곡 인용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권고’를 주었을 뿐입니다. 

4. 20년 ‘위안부 해결’에 기여한 시민운동가에 ‘반미’ 낙인찍은 조선일보

선거 기간 후보자 검증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 중 가장 기초적인 역할입니다. 물론 그 역할을 제대로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우리 언론은 그간 '후보자 검증'을 빌미로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악용하곤 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일본차 ‘렉서스’가 재산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내로남불'이라 공격받은 후보, 미국에서 교수로 근무하던 시절 익명 강의평가 사이트에 올라온 강의평가 2건으로 후보자를 흠집낸 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오픈카톡방에서 신원불상의 인물이 한 노인폄하 발언을 ‘후보자 캠프 망언 이슈’로 키운 보도 등, '후보자 검증'의 탈을 쓴 스쳐가는 인터넷 악플 수준의 황당한 보도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의적인 보도는 20년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다가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반미 인사’로 낙인찍고, 후보자의 자녀가 미국 유학을 간 것을 문제 삼은 기사였습니다. 조선일보는 3월31일자 기사 <반미 앞장서온 시민당 윤미향, 정작 딸은 미국 유학중>(3월31일 김은중 기자)에서 “시민당 비례대표 7번이 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자녀가 미국 대학에서 유학 중이다. 윤씨는 대표적 반미 인사다.(중략) 윤씨는 그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의 무기 장사 시장 바닥’이라고 하는 등 여러 차례 반미 주장을 해왔다. 야권은 ‘반미를 외치면서 자식은 미국 유학 보낸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윤 후보를 “대표적 반미 인사”로 규정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SNS에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의 무기 장사 시장 바닥”이라고 썼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윤 후보가 SNS에 남긴 글 대부분은 자신이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활동해 왔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지원 관련 내용입니다. 윤 후보는 20여 년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활동한 것 외에 다른 시민운동 경력도 없습니다. 윤미향 후보는 2013년 미국 LA 글렌데일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반미주의자라는 시민운동가가 뭐 하러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운동을 했다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윤미향 후보의 이런 경력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활동’이라고만 써 놓고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가 윤미향 후보의 자녀가 미국 유학 중이라며 “내로남불”이라는 야권 비판을 덧붙인 대목은 후보 검증이라기보다는 단순 비방에 가까웠습니다. 미국 유학파가 아니라 아예 미국 국적자, 혹은 미국인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특정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음악가를 지망하는 자녀가 미국 음대에 유학하는 데도 부모의 정치성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가족관계를 굉장히 구시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논란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마녀사냥’에 불과합니다. 

조선일보의 3월30일 인터넷판 보도 <단독-반미 구호 외친 시민당 비례, 자녀는 미국 유학>(3월30일 김은중 기자)는 더 가관인데, 이 보도에서는 “윤 씨 남편은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로, 1993년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었다”며 윤 후보의 남편까지 거론했습니다. 이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20년이 지난 후 재심이 이루어져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고 덧붙였으나 무슨 혐의를 벗었다는 것인지는 말해주지도 않아 결국 ‘간첩’이라는 이미지만 남겼습니다. 김삼석 씨가 받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공안 권력이 조작한 대표적인 간첩 사건중 하나입니다. 김삼석 씨 남매는 1993년 안기부가 조작한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았으나, 2014년 재심이 이뤄져 핵심 혐의였던 반국가단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에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핵심 혐의에 무죄가 인정됐습니다. 조선일보가 ‘일부’라고만 한 것은 한통련 의장 등을 만나 금품을 받은 사실에만 집행유예가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선일보는 아무 이유도 없이 후보자 본인과 가족들까지 비방한 것입니다.

미디어오늘 보도 <“일본이 경계하는 윤미향 후보” 조선일보 기사 삭제>(4월11일)에 따르면, 이 보도 이후 조선일보는 4월8일 인터넷 판에 <일 요미우리, 정대협 전 대표 국회 입성 가능성에 경계심>(4월8일)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가 삭제한 바 있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위안부 지원자 당선권 내에… 비례 선거 대일 강경 요구?>(4월8일)라는 기사에서 “(윤미향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면 위안부 문제로 한국 정부에 대일 강경 자세를 더 강화하라고 촉구할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는 내용입니다. 윤미향 후보를 무리하게 흠집 낸 보도가 나온 원인이 ‘일본이 경계한다’는 이유가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 심사위원 총평 : 이번 총선에서 일부 보수 매체 특히 조중동은 정권 심판론을 총선 최대 목표로 했음을 위의 나쁜 보도들을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무조건 정부 결정이 잘못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기사와 사설 등으로 비판했습니다(1). 여론 조사마저 거대 야당인 통합당에 불리하게 나오자 여론 조사 불신론(2)을 들고 나왔다 다른 매체에게 팩트 체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유권자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코로나 정국에서도 막판 정책 비교에 집중했던 여타 매체들과 달리 논설위원들이 ‘여당 심판을 제대로 못하면 국가가 망한다’는 식의 선동을 일삼고, 극우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음모론 가짜 뉴스 살포(4)에, 후보자에 대한 구시대적 색깔론 검증(1)으로 초지일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수 매체’의 총선 보도는 자신들이 비판한 것처럼 정책은 없고 막말만 넘쳐난 보도였습니다. 언론들은 유권자의 입과 귀를 대신하는 대신 스스로 선수로 뛰는 반칙을 저질렀습니다.

4·15 총선 이것이 언론이다! ‘희망편’

1. 역대급 ‘정책 실종 선거’에서 가까스로 기본은 챙긴 신문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와 비례정당 이슈로 인해 ‘정책 실종 선거’ 양상을 보였습니다. 각 정당들은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공약집을 발표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언론은 아예 공약 검증 보도에 손을 놓고 정치권을 비판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을 비판하더라도, 각 정당의 공약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보를 일단 전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나아가 공익에 부합하며, 중요한 선거의제를 이슈로 만드는 ‘아젠다 세팅’까지 해야 언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향·한겨레의 기후위기 의제화 시도

언론은 이번 총선 기간 벌어진 온갖 논란을 따라다니며 혼탁해지는 정치권을 구경하거나 욕하기만 했을 뿐, 아젠다 세팅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시도라도 해 본 것은 기후위기 정책에 대한 주문이었습니다. 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기후 국회 의제화’를 시도했습니다. 경향·한겨레는 2월28일 각각 <유권자 77% 기후변화 공약 있는 후보에 투표 의향>(2월28일), <유권자 77% “기후위기 공약 내건 후보에 투표”>(2월28일)라는 보도를 내고, 그린피스의 기후 정책 의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도했습니다. 선거 기간 정당에 관한 여론조사가 아닌 단일 정책 의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도한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경향·한겨레의 다음 주 나온 후속보도 <민주·통합당 ‘넷제로·탈석탄’ 소극적>(3월11일), <그린피스 “민주당·미래통합당 ‘기후위기’ 대응 소극적”>(3/11)에서는 그린피스의 기후위기 관련 여론조성 활동을 조명했습니다. 여기에서는 한겨레보다는 지속적으로 후속 보도와 의견 기사를 내놓은 경향신문이 돋보였습니다. 경향신문은 13일 <기후위기 외면하는 정당에는 표 없어요>(3월13일), <녹색세상-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3월13일)에서 기후위기 대책을 주문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보도하거나 시민단체 관련 인사의 기고문을 실었고, <사설-기후위기 외면하는 정당들, 무슨 염치로 표 달라고 할 건가>(3월11일)에서는 기후대책 관련 공약을 내지 않는 정당들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기후위기는 이미 발등의 불이다”라며, “기후위기를 절감하는 대다수 유권자는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표만 바라보는 후보들을 분명히 가려낼 것이다.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선거 막판 나왔던 정책 비교 보도, 언론 체면 살렸다

기후위기 관련 보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정책 보도는 선거 2주 전까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4월 초부터 비로소 정책 검증과 비교평가를 제공하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한겨레의 <콕! 이 공약> 기획보도는 4월3일부터 13일까지 7회에 걸쳐 순서대로 ‘디지털 성범죄 대처’, ‘부동산 정책’, ‘일자리·노동 정책’, ‘기후 정책’, ‘감염병 대응 등 보건 정책’, ‘교육 정책’, ‘기타 진보정당의 공약’ 등을 짚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과 코로나로 인한 고용충격, 기후위기, 정시비율에 관한 논란 등 정책 현안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 지난 4월3일 한겨레 ‘콕! 이공약’ 기획 보도
▲ 지난 4월3일 한겨레 ‘콕! 이공약’ 기획 보도

경향신문과 경제정의실천연합이 공동으로 진행한 총선 정책 검증 보도 <경실련·경향신문 공동 총선 정책 검증>는 보다 더 세세하고 전문적인 관점의 정책 비교 분석을 제공했습니다.

2. ‘선거교육 편향’ 논란 속에 방치된 학생 유권자, 일부 보도가 땜질이라도 해줘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면서 선거일인 2020년 4월15일 기준 만 나이로 18세가 된 새로운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새롭게 유권자로 편입된 만 18~19세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되는 나이이기 때문에 이들은 ‘학생 유권자’로 불렸습니다. 이렇게 학생 유권자들이 등장하자, 공교육 과정에서 선거 교육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그간 일부 언론들은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느니, ‘고등학생들이 선거법 위반자가 된다’느니 하는 우려만 내놓았지 새로운 유권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에는 소홀했습니다. 교육당국이 선거 교육을 급하게 준비하려고 했으나 소모적인 ‘편향 교육 논란’속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만 18세에게 투표권이 주어짐으로써 어느 정당이 유리할지 유·불리만 따지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8세 유권자를 독자로 상정하고 18세 유권자를 위한 정책 정보를 제공한 기사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겨레는 2019년 12월 말부터 <18살 선거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선거운동 기간 직전 나온 기사 <무시 못할 18살…수도권 11곳, 당락 표차보다 많다>(3월23일)에서는 18세 유권자들의 영향력을 정치인들과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18세 유권자들을 위한 공약 정보를 맞춤 제공해 눈에 띄었습니다. 한겨레는 “지난 20대 총선 때 1등과 2등을 가른 표차보다 18살 유권자의 수가 더 많은 지역구가 11개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새내기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볍게 여기다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서 한겨레는 “개별 후보자나 정당은 이들의 표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듯 하다. 이들을 겨냥한 공약도 기존 청년 공약을 되풀이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정당별 18세 유권자 대상 공약을 비교·분석했습니다. 한겨레는 선거연령 인하와 선거교육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란에 대해 <공보물 ‘자습’만 하다가 투표치르게 생긴 18살>(4월14일)에서 제목부터 통렬히 비판을 가했습니다. 사실, 선거연령이 만 18세든 만 20세든 공적인 선거교육을 받은 세대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시민교육의 미비는 선거 때만 다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언론들의 후속보도와 교육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사안입니다.

이외에도 만 18세 유권자 14명을 심층 인터뷰한 경향신문 <“어리다고 모르지 않아…내 삶에 희망을 가져올 ‘다른 정치’ 원해요”>(3월16일), 상징적인 의미에서 ‘비례대표 0번’으로 노동당의 선거운동을 한 만 17세 학생을 다룬 경향신문 <만 17세 노동당 비례 0번 “왜 선택받을 권리는 없나”>(4월9일), 한국일보와 한국청소년재단·공공의창이 서울 서대문청소년센터에서 청소년 8명과 인터뷰한 <“누가 좋은 후보인지 막막해요” 만 18세 유권자의 하소연>(4월10일)등도 18세 유권자 담론을 다룬 좋은 기사였지만, 청소년 중에서도 정치 고관여층의 이야기를 통해 18세 유권자 담론에 접근하다보니 종합적인 관점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한겨레의 연재기사를 좋은 보도로 선정했습니다.

3. 여론조사 보도, 이 정도 공은 들여야 비판도 가능

조선·중앙을 중심으로 나온 근거 없이 ‘여론조사 불신 조장 보도’들과 가장 대비된 보도가 한겨레의 기획기사 <여론조사 메타분석> 보도입니다. 한겨레는 4회에 걸쳐 서울대 국제정치데이터센터와 협력해 빅데이터 분석에 많이 쓰이는 베이지언 통계(Bayesian Statistics) 기법으로 개별 여론조사의 편향성을 제거하고 여론조사의 추이를 설명하려 노력했습니다. 한겨레는 “(여론조사 수치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과정 역시 분별력과 신중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지적하며, “베이즈 모형에 기초해 개별 조사의 편향성을 통제하고 인구 비율과 표본 크기를 고려해 추산한 값”이라고 분석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3월 16일 첫 번째 보도 <양당 지지율 6개월치 분석해보니 ‘10~12%p차 평행선’>(3월16일)에서는 민주당과 통합당 양당의 6개월 치 지지율을 분석해 여론조사의 추이를 독자들이 잘 파악할 수 있게 보도했습니다. 3월30일 두 번째 보도 <격전지 광진을 승리확률 ‘고민정 58%-오세훈 42%’>(3월30일)에서는 고민정 후보와 오세훈 후보가 경쟁했던 광진을, 이수진 후보와 나경원 후보가 경쟁했던 동작을, 이낙연 후보와 황교안 후보가 경쟁했던 종로 세 곳의 지역구에서 양자대결을 가정해 득표율과 승리확률을 계산한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총선 막판 뒤흔드는 무당층엔 ‘야당표’가 더 숨어 있다>(3월30일)에서는 무당층 집계 편차를 가로축으로, 지지율 편차를 세로축으로 하여 무당층의 투표성향은 민주당보다는 미래통합당 쪽에 더 많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4월6일 세 번째 보도 <‘꼼수 위성정당’ 만든 뒤 민주·통합당 지지층 일부 이탈>(4월6일)에서는 비례정당 지지율 추이를 메타분석했고, <고민정 승리확률 줄어 54%…오세훈과 혼전 양상>(4일6일)에서는 총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광진을·동작을 지역의 지지율 격차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보도했습니다. 마지막 4번째 보도 <부산진갑 예상득표 ‘민주 김영춘 52%-통합 서병수 48%’>(4월10일)에서는 종로·광진을·동작을에 더해 김부겸 후보와 주호영 후보가 경쟁한 대구 수성갑, 김영춘 후보와 서병수 후보가 경쟁한 부산진갑의 여론조사 메타분석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 지난 3월16일 한겨레의 ‘여론조사 메타분석’ 기획 보도
▲ 지난 3월16일 한겨레의 ‘여론조사 메타분석’ 기획 보도

다만, 한겨레의 여론조사에 대한 분석 내용은 결론적으로 다른 언론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깜깜이 선거 속 들쑥날쑥 여론조사, 유권자는 혼란스럽다>(4월11일)를 보면, 유·무선 비율과 조사방법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에 대해 ‘정답은 없다’는 결론을 냈고 ‘샤이 보수’의 존재도 5~10%정도로 추정했습니다.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보인 차이는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공격& 여론몰이가 없다는 점과 ‘여론조사를 읽는 법’을 설명하는 데 더 중점을 뒀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가 결과적으로 맞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여론조사를 데이터로 접근하는 시도만으로도 한겨레의 보도는 단편적 여론조사 보도를 하지 말 것을 주문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을 이미 뛰어넘은 보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선거기간 내내 단순 여론조사 보도를 지양하고 여러 여론조사 기관들의 결과를 모아서 보여주거나, 여론조사 메타분석에 따른 판세분석을 내놨습니다. 여심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모니터 대상인 6개 종합일간지 중 총선 기간 여론조사기관에 따로 여론조사를 의뢰하지 않은 신문사는 한겨레와 조선일보(※TV조선은 여론조사 의뢰) 뿐입니다. 한겨레는 자체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 대신 여론조사 분석에 자원을 투입한 것인데, 역으로 더 좋은 보도를 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4. 빅데이터를 선거보도에 접목하는 시도 돋보인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작년 6·13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동네 이슈맵>(2/19~) 기획보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과 합작하여 20대 국회 기간 언론보도 37만개를 빅데이터 기법으로 분석해 지역구 이슈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중선관위는 이번 총선을 맞아 지역구 민원이나 뉴스통신사 3사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자료를 공개했고 다른 언론에서도 많이 인용 보도된 바 있습니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직접 선관위·대학 연구팀과 합작해 보다 광범위한 언론보도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선관위가 진행한 분석이나 타 언론사의 기사와 차별화됩니다. 동아일보는 선거 기간 서울 종로, 동작을, 광진을, 구로을, 성남중원, 대구 수성갑, 부산 부산진갑, 충남 공주-부여-청양, 강원 강릉 총 9개 지역구에 대한 분석을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이번 기획보도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해 지역 이슈를 살펴보고, 후보자의 정책 공약을 설정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은 좋은 시도입니다. 그러나 <종로 톱키워드는 ‘삼청동’…대표상권 경기에 큰 관심>(3월17일) 기사에서와 같이 키워드를 단순히 긍정적-부정적 키워드로 양분하고 아파트·분양·도시재생사업 등은 긍정 키워드로, 집회·사생활피해·쪽방촌은 부정 키워드로 분류하고 어떤 설명도 붙이지 않은 것은 너무 거친 분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면, 한옥마을의 사생활 침해는 도시재생과 연관되는 키워드입니다. 북촌 한옥마을이 도시재생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한옥 보존이 잘 된 곳으로 입소문을 탔고, 그로 인해 관광객이 몰려들어 사생활 침해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목들을 현지 취재를 통해 잘 연결시키면 보다 완성된 기사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 심사위원 총평 : 2020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이번 총선 감시 활동에 앞서 '후보자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보도제작준칙을 마련했습니다. 보도제작준칙과 총감연 슬로건을 기준으로 볼 때, 유권자 중심의 꼼꼼한 정책 검증(1)과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18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획 보도(2)가 돋보였습니다. 한겨레의 여론조사 분석보도(3)는 6개월간의 다양한 여론조사 자료와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한 접근으로 기존 선거 여론조사 보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동아일보의 빅데이터 기법을 사용한 지역구 이슈 발굴 보도(4)는 지역 유권자의 민심을 후보나 각 정당에 전달하는 매개로 바람직하였다고 평가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2월17일~4월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지면보도에 한함)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