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신임 JTBC 보도총괄이 “우리가 추구할 지향점은 합리적 진보”라고 공언했다. 방송사 보도 책임자가 ‘진보’를 보도 지향점으로 명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중앙일보 사회부장, JTBC 보도국장,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다시 JTBC로 돌아온 권석천 보도총괄은 7일 취임사에서 “1년 반 전, 중앙일보로 갈 때까지만 해도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뗀 뒤 “제가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우리 뉴스룸이 이렇게 주저앉아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신뢰도 조사에서 JTBC는 18%로 MBC(19%)·KBS(17%)와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이는 2년 전 같은 조사에서 40%를 넘겼던 신뢰도에 비춰볼 때 낯선 수치다. 닐슨코리아 기준 메인뉴스 시청자수의 경우 지난해만 해도 KBS·SBS에 이어 3위였으나 올해는 MBC와 TV조선에 밀려 5위다.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시청률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의 신뢰도 1위로 시민들의 성원과 격려 속에 이 시대 저널리즘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던 우리가 이대로 힘없이 물러설 순 없다”며 보도국 구성원을 향해 “손석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JTBC 사옥. ⓒJTBC
▲JTBC 사옥. ⓒJTBC

권석천 보도총괄은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할 지향점이다. 나는 그 지향점이 ‘합리적 진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못 박은 뒤 “세월호, 국정농단, 미투… 뉴스룸이 해왔던 것도 합리적 진보였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도 합리적 진보”라고 밝혔다. 그는 “무슨 정파적 입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한국 사회를 과거로 퇴행시키는 문제들을 드러내고, 고발하고, 비판해야 하는 이상, 언론은 진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메인뉴스 앵커석에서 물러난 이후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잡고 다시 한번 JTBC는 중앙일보와 명확히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선언으로 해석되며, 사회 진보를 위해서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는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극단의 목소리를 경계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린 우리의 어젠다를 밝히고 고수하면서, 오직 시민들만 바라보고, 시민들과 함께해야 한다. 정치 권력뿐 아니라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권력들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 자신도 오만한 권력이 되려고 하지 않는지 늘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소통을 가로막는 전체주의적 성향의 집단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한편, 시민들이 갖는 언론 불신의 원인을 언론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권석천 보도총괄은 이날 취임사에서 “취재의 기본 원칙, 보도의 기본 원칙을 지키자”고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스스로의 발로,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우리의 실력으로 취재한 것만이 진실이다. 정치인이 말한 것이든, 검찰이 말한 것이든, 제보로 들어온 것이든 한 걸음 더 들어가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것은 우리 직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hand to mouth’ 저널리즘은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선언은 각 출입처에서 보도자료와 브리핑으로 구성하는 의제설정구조에서 벗어나 기자 스스로 아이템을 찾고 문제를 찾아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앞서 권석천 보도총괄은 지난해 12월 조국 사태 이후 한국언론학회·한국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조국 보도를 되돌아보다’ 세미나에서 “언론 보도가 전반적으로 검찰수사의 기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검찰 취재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전지적 검찰 시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그는 “검찰발 보도가 일반화되면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선 아무도 검찰 권력에 맞설 수 없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세미나에서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기사화해야 한다는 인식, 물먹으면 큰일 난다는 인식에 의해 계속 앞서나가는 보도를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검찰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고 진단하며 “전지적 검찰 시점을 벗어나려면 관련자를 만나고 사건을 파헤쳐서 ‘검찰이 알리고 싶은 사실’을 뛰어넘어야 한다. 출입처에서 이슈 중심으로 옮겨가야 하고, 전문기자가 주축이 된 편집국·보도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취임사는 앞서 제시했던 취재 과정의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JTBC '뉴스룸' 5월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JTBC '뉴스룸' 5월6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권석천 보도총괄은 “뉴스룸의 진화가 여기에서 멈추는 것은 여러분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며 재도약을 선언했다. JTBC는 지난 6일 ‘뉴스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자회견을 여섯 꼭지 연속으로 보도하며 “법원의 권고에서 출발한 오늘 사과는 결국 등 떠밀려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전했다. JTBC는 7일 대규모 조직·인사개편에 나섰다. 오는 13일은 손석희 대표이사가 JTBC로 옮긴 지 7년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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