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튜버 레초(Rezo)가 독일 집권당을 비판한 영상 ‘CDU의 파괴’로 독일 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133만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는 이 유튜버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저명한 기자상을 받으면서 또 한 번 질서를 파괴한다. 유튜브를 저널리즘으로 볼 수 있는가, 유튜버는 저널리스트인가. 아니, 대체 누가 저널리스트를 규정할 수 있는가. 그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지난 4월30일 독일 기자상인 난넨상(Nannen Preis)의 온라인 프로젝트 부문 수상자로 유튜버 레초가 선정됐다. 레초는 챌린지, 먹방, 리액션 등 오락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유튜버였다. 하지만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지난해 5월18일 ‘CDU(기민당)의 파괴’라는 55분짜리 영상으로 독일 전역을 휩쓸었다.

영상에서 그는 “집권 여당인 CDU 정치인들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이 얼마나 없으며, 어떻게 전문가들의 판단과 정반대로 일하고, 전쟁 범죄에 동참하며 청년들을 상대로 선전과 거짓말을 하는지, 그들의 정치가 부자들에게 얼마나 이익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의 것을 앗아가는지 보여주겠다”면서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근거를 바탕으로 CDU가 우리의 삶과 미래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레초는 현 메르켈 정부의 경제, 세금, 교육, 환경, 안보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지난 36년 중 CDU가 29년 동안 권력을 잡았다. 정치를 잘했다면 통계가 그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빈익빈 부익부만 심해졌다”면서 집권 여당이 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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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초의 영상 ‘CDU의 파괴’.

레초는 자극적인 편집 없이 책상에 앉은 채로 55분간 이야기만 한다. 다양한 통계와 영상 자료를 삽입했다. 말투는 빠르고 명확하다. 상스러운 단어가 자주 들리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출처가 제시되어 있다. 레초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출처 목록을 따로 공개했다. A4용지 13장짜리 문서에는 책과 논문, 언론 기사, 유튜브 영상 등 출처가 빼곡히 적혀있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조회 수 1000만 회를 넘겼다. 대부분의 기성 미디어에 소개되었고 정치권도 반응했다. 이어 진행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CDU는 28.1%를 득표, 유럽의회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30% 밑으로 떨어졌다.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지만, 선거 직전까지 미디어를 뒤덮었던 레초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락적인 콘텐츠를 다루던 레초는 이 영상 하나로 ‘청년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의 채널은 지금도 오락 콘텐츠가 대부분이지만, 유력 주간지인 <차이트(Zeit)>에 기고하는 등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그리고 결국 독일 기자상까지 수상했다.

독일 기자상인 난넨상은 ‘슈테언(Stern)’ 초기 발행인인 헨리 난넨의 이름을 딴 것으로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유력한 기자상으로 꼽힌다. 대상 격인 최고의 보도 부문 외에 다큐멘터리, 탐사보도, 탐사보도 지역, 온라인 프로젝트, 연출 사진, 보도 사진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독일 주요 언론사 및 미디어 기업 언론인과 전문가 43명이 심사한다. 이중 레초가 받은 상은 최고의 온라인 프로젝트 상이다. 이전까지는 기성 언론사들의 소위 인터렉티브 보도가 주로 선정됐다. 유튜버로서는 최초 수상자다.

난넨상 측은 “레초는 55분짜리 영상으로 일주일 만에 천만 명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가난과 환경까지 다양한 테마를 흥미롭게, 근거를 가지고 제시했다. 레초는 저널리즘과 행동주의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저널리즘의 초석도 결국은 행동주의”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독일 언론계는 레초의 수상이 적합한지를 두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 있다. 먼저 반대 의견. 독일 미디어 전문매체인 메디아(Meedia) 소속 벤 크리쉬케 기자는 “레초는 지금 100만 명 넘는 구독자에게 ‘극한 스무디 먹방 도전’ 같은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라면서 “기자상 선정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난넨상은 언론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독일 언론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준다. (레초의 수상은) 실제 기자로 일하며 취재와 팩트체크 등 전문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회의감을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성 언론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한 방’에 해낸 레초의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메디아 소속 토비아스 징어 기자는 기성 언론이 ‘기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으며, ‘CDU 파괴’ 영상은 명백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레초의 영상은 언론이 해야 하는 일, 바로 담론을 이끌고 현재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그 일을 정확히 했다는 것이다. 토비아스 기자는 “파괴는 기성 언론인 FAZ나 ZEIT 등이 아닌 유튜브에서 일어났다. 기성 언론은 그에 대해 보도만 했을 뿐”이라면서 “‘CDU의 파괴’ 영상은 바로 낡은 저널리즘의 파괴”라고 일침했다.

유튜버가 시민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 그 자체다. 기성 언론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언제까지 기자라는 타이틀에 특권을 부여하고, 고고하게 ‘저널리즘의 장벽’을 사수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도 그런 시절이 지났다는 것을 안다. 레초에게 기자상을 주며 주류 시스템에 균열을 낸 주체도 다름 아닌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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