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국회가 디지털성범죄 처벌강화 및 재발방지 법안을 처리하는 계기가 됐다. 기존의 법적 공백을 채웠다는 성과 이면에 여러 한계도 지적된다. ‘n번방 방지법’ 논의가 20대 국회의 마지막을 넘어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시작돼야 할 이유들이 있다.

지난 4월29일 본회의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은 크게 세 갈래다. △처벌 가능한 디지털성폭력 범위를 확대하고 성폭력 전반의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성폭력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을 범죄수익으로 규정하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법) 개정안 △의제강간 연령을 올리고 (유사) 강간을 계획해도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 등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의 경우 6일 여가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불법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한 경우에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그간 불법촬영물(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대해서는 유포·촬영·반포·판매·전시·상영 등을 했을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했는데 단지 보거나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해졌다. 성착취물을 보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일각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페미니즘’이 4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입법, 사이버성범죄 방지·처벌법 즉각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페미니즘’이 4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관련 입법, 사이버성범죄 방지·처벌법 즉각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스로 자기 신체를 찍은 촬영물을 본인 동의 없이 타인이 유포하면 처벌하는 규정도 만들어졌다. 예컨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로 하여금 본인 신체를 촬영하게 만들고, 해당 성착취물을 유포한 행위가 처벌 대상으로 명시된 것이다. 이를 포함해 촬영 당시 대상자 의사에 반하지 않은 촬영·복제물 등을 유포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에서 3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처벌 기준을 높였다.

쟁점 중 하나는 특정 연령의 미성년자와 성행위하면 강간으로 간주하는 ‘의제강간’ 기준연령이다. 기존 만 13세 미만에서 만 16세 미만으로 상향됐다. 다만 피해 미성년자가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경우에는 성행위 상대가 만 19세 이상 성인일 때만 처벌하기로 했다. 일정 부분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적으로 ‘성행위해선 안 되는 연령’을 확대하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이 될지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일 한국일보 기고에서 “문제는 검찰이나 법원이 눈에 보이는 강압이 없는 경우나 피해자가(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단하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보호주의 치중보다 ‘사회구조적 문제’ 바꿔야

성범죄 근절대책을 ‘피해자 보호주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실제 범행이 발생하는 맥락을 오히려 지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애여성공감도 지난 4일 “성범죄 근절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의제강간 연령 상향’, ‘형량강화’, ‘신상공개확대’ 등은 가해자 엄벌주의, 피해자 보호주의 프레임을 담고 있어 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대책으로서 한계가 분명하다”며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청소년이라서, 피해자라서, 어려서 판단이 미숙해서 ‘보호’해야한다는 판단만으로는 청소년들의 권리는 보장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관련 조항을 심의한 지난달 28일 국회 법사위 1소위에서는 또 다른 맥락의 우려도 나왔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전반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추는 나이가 언제냐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걸 올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청소년이나 미성년자의 나이를 내린 것하고는 좀 안 맞는 면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법사위 전문위원은 당시 “연령 상향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될 경우 미성년자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가 처벌됨으로써 소년범죄자가 양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검토의견을 낸 바 있다.

▲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3월12일 국회 정론관에서 텔레그램 등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 24시간 대응체계 구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3월12일 국회 정론관에서 텔레그램 등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 24시간 대응체계 구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아청법 개정안은 우선 ‘아동·청소년 음란물’이라는 용어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바꾸기로 했다. ‘음란물’이라는 법적 용어는 ‘피해자의 음란한 행위’라는 왜곡된 인식을 부르고 성착취 범행의 심각성이나 본질을 가린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성착취물의 배포·제공·광고·소개·구입·소지·시청 등은 기존 벌금형 대신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을 실제 실행하지 못했더라도 예비·음모 등 계획한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성착취물 제작·배포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그간 개선이 요구된 조항들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아동청소년 피해 위주로 대책을 구성하면 온라인 성착취의 전반적인 문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청소년 이용 성착취물은 더 깊이, 더 희소하게 유통되는 문제가 지속될 수 있다”(공대위)는 경고도 고민할 지점이다. 최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미성년자 대상 범죄가 주목받고 정부 대책 역시 이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실제 디지털성범죄는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3월 발표한 ‘박사방’(텔레그램 성착취방 중 하나) 관련 피해자 최소 74명 중 미성년자는 16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약 80%는 20세 이상 성인 피해자라는 의미다.

공대위는 “피해자의 실재하는 다양한 연령대 분포에도 불구하고 아동 청소년 피해자를 과잉 대표화하여 엄벌 대책을 수립한다면 아동 청소년을 벗어난 직후의 17세 이상, 20세 이상 여성에 대한 성적 이미지 취득, 유포 협박, (이로 인한) 수익마련은 더 쉽게 가능한 일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전 연령대 여성들의 성적 이미지에 대한 착취과 같은 맥락에서 존재해 왔고, 그에 더해 특정 연령에 대한 범죄는 금지되어 있다는 점을 오히려 위험 비용으로 부착하는 방식이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소위 ‘강간문화’, 일상적인 성폭력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과제들도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동의 없는 성행위를 강간으로 보는 ‘비동의 간음죄’, ‘스토킹 처벌법’ 등은 정치권에서도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 사안들이다. 인공지능 기술로 실제 인물의 신체 등을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 fake) 활용 범죄 처벌법의 경우 제작·소지 등을 처벌할 수 없어 ‘반쪽’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국회 홈페이지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국회 홈페이지

인터넷사업자들, ‘성착취물 유통 책임’ 법안 반발

‘n번방 법안’의 또 다른 축은 인터넷사업자에게 성착취물 유통 책임을 부여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특히 의욕적이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조치 의무 부여 △성범죄물 유통 방치 시 과징금 부과 △해외사업자에 대해서도 불법정보 유통방지 의무를 적용하는 역외적용 규정 등이다.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관련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인터넷사업자들은 적극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은 “사건의 발단인 텔레그램은 부가통신사업을 신고한 사실도 없고 향후에도 신고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돼 ‘n번방 사태의 재발방지’라는 법 개정 이유에 부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부가통신사업자 전체가 온라인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이용자의 게시물, 대화내용 등에 불법촬영물 여부를 분석할 경우 이용자의 통신이 서비스 사업자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로 이어져 이용자 개인의 기본권(통신의 비밀)이 침해될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텔레그램공대위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게 삭제 등 의무 조치 범위를 넓히는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2011년 청소년보호법 개정을 통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아동음란물 삭제·전송중단 의무 도입, 2015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웹하드 사업자의 음란정보 유통방지 의무 도입 등 기존의 의무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에 주목했다.

공대위는 “최근 한 1심 법원에서는 웹하드 사업자에 대해 드넓은 온라인 바다에서 모든 것을 살피고 삭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사업자에 대한 유포 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그동안의 주의 조치를 빈번하게 위반하는 사업자에 대해 당국도 제대로 된 조치가 없었음을 성찰해야 한다”며 “법적 미비점과 사각지대 검토가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n번방 방지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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