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에 시민사회는 들끓었지만 언론은 침묵했다. 청주 내 정당·종교·노동조합·비영리기구들이 신속히 한 데 모여 지역 대책위를 결성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지역 언론은 조용했다. 시민사회가 심각성을 알리려 이리저리 움직여도 한계가 컸다. 사건 현장과 시민을 연결하는 언론이 역할을 하지 않아서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보도를 감시하며 쓴소리를 내온 곳 중 하나다. ‘CJB청주방송 이재학PD 사망사건 충북대책위’에도 참여한다. 지난 4일 청주에서 만난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은 지역 언론 침묵에 “남의 일이 아닌 자신들의 일인데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처럼 사태를 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4일 충북 청주시 충북민언련 입주 건물에서 만난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5월4일 충북 청주시 충북민언련 입주 건물에서 만난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 사진=손가영 기자

지역 유력 일간지 3곳 보도량 0건, 사망 소식도 비보도

청주방송에서 14여년 간 비정규직으로 일한 이 PD는 자신이 ‘무늬만 프리랜서’라며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월 생을 마감했다. 충청권역 종합일간지 13곳 가운데 이 PD 관련 보도를 1건이라도 낸 곳은 4곳뿐. 이 가운데 2개사는 ‘청주 모 방송사에서 일한 모 프리랜서 PD 사망’이라는 익명 보도를 1개 내는 데 그쳤다. 청주가 소재지인 중부매일·충청매일·충청타임즈 보도량은 0건이다. 사망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

방송사 보도 실태도 비슷하다. 10개 지상파·보도전문 및 종합편성채널이 지난 2월~4월 보도한 리포트와 인터뷰는 4건이 전부다. KBS와 YTN이 1건씩 냈고 KBS청주방송총국이 2건을 보도했다. KBS청주방송총국은 이 PD 사망 2주 후인 지난 2월19일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 촉구”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고 바로 이어 김언경 당시 민언련 사무처장 인터뷰를 8분 가량 내보냈다. MBC와 MBC충북은 온라인 단신 기사를 각각 1건과 3건 냈고 리포트는 없었다. 종합편성채널 4개 중엔 MBN만 1건 온라인 단신보도를 냈다.

▲2월 충청권 13개 종합일간지 '이재학 PD 사망' 사건 보도량.
▲2월 충청권 13개 종합일간지 '이재학 PD 사망' 사건 보도량.
▲2~4월 주요 방송사 '이재학 PD 사망'  리포트 및 인터뷰 보도 수
▲2~4월 주요 방송사 '이재학 PD 사망' 리포트 및 인터뷰 보도 수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은 이 보도도 익명 보도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미 청주방송과 이재학 PD 실명이 사회적으로 알려졌는데도 익명으로 보도했고 방송 화면에 나오는 실명은 모두 모자이크로 처리했다.

이 국장은 “언론사들이 동종업계 비판을 삼가는 관행 때문 아니겠느냐”며 “보도량이 적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언론사도 이 문제, 즉 언론사 내부의 열악한 처우와 만연한 비정규직 고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방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주방송은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사”라며 “비교적 청주방송과 관계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일부 보도하고 있지만 아닌 언론사는 그냥 넘겨버리고만 있는 거 같다”고도 덧붙였다.

▲청주방송, 이재학 PD 등 실명이 모자이크된 KBS청주방송총국 리포트 화면 갈무리.
▲청주방송, 이재학 PD 등 실명이 모자이크된 KBS청주방송총국 리포트 화면 갈무리.

생전 증언 “이두영 회장 힘 안 미치는 곳 없다”

실제 취재 상황을 지켜봤던 김언경 민언련 대표도 “KBS청주총국 인터뷰를 하면서 현장 기자들이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봤다. 기자들이 노력하는 만큼 언론 보도가 잘되지 않는 걸 보면서 ‘청주방송’ 이름 공개조차 부담인 지역 사회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국장은 똑같은 말을 이재학 PD에게서 직접 들었다. 지난해 7월18일 이 PD를 만난 자리에서 부당해고 소송을 공론화하자는 제안에 이 PD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 PD는 “청주에선 이두영 회장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시민사회단체도 믿을 수 없고 죄송하지만 (이수희) 국장님도 믿기 힘들다”고 했다.

이 PD는 지역 법조인들도 믿지 못해 서울의 변호사를 찾았다. 이 PD 두려움은 동료들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 국장은 “대부분 내가 먼저 살자고 할 텐데 이 PD는 바보처럼 남아있는 동료들 걱정만 했다. 그는 ‘내가 시끄럽게 하면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국장 말을 빌리면, 청주방송을 상대로 한 이 PD의 소송은 “외로운 싸움”이었다. 이 PD는 지역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골리앗과 싸우지만 누구의 도움도 얻기 어려웠다. 자신을 위해 진술해 줄 사람 한 명을 찾는 일조차 희생이 필요했다. 이 국장은 “부고를 접한 후 본인이 원치 않았다 해도 행동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의 부당한 상황부터 지역 방송사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여론화했어야 했다”며 심정을 밝혔다.

▲이재학 PD가 맡았던 한 청주방송 프로그램 엔딩 크레딧에 실린 이 PD 모습.
▲이재학 PD가 맡았던 한 청주방송 프로그램 엔딩 크레딧에 실린 이 PD 모습.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이 청주방송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충북민언련 제공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이 청주방송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충북민언련 제공

“지역 언론 변화 계기로 삼아야”

충북 대책위 단체들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공감하고 있다. 대책위는 현재 점심시간 때마다 청주방송 정문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청주방송 출연 및 인터뷰를 사태 해결 전까지 보이콧했다.

현재 대책위 관심사는 진상조사 보고서다. 지난 3월부터 진행한 이 PD 사망 진상조사는 현재 마무리 단계다. 5월 중하순께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이 국장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행’이다. 청주방송은 진상조사보고서가 정한 개선 과제를 이행한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이를 어떻게 감시할지가 대책위의 고민”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지역 언론에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지역 방송사의 내밀한 비정규직 고용 실태가 다 드러나게 되면 전국으로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며 “이 문제는 남 일이 아니다. 언론인 자신들의 일이다. 부족한 인력으로 언론사를 운영해 나타나는 열악한 처우와 부당한 관행을 바꾸는 데 정규직·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정부 기관이 실효적 조치를 취해야 언론사가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청주방송에서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2명이나 사망한 데다 이번 진상조사를 통해 유사한 문제가 추가로 드러나면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의 형식적 관리 감독이 바뀌어야 한다”며 “대주주가 지역 언론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방통위는 형식적인 법 위반 여부만 감독하는데 법을 어떻게 꼼수로 우회하는지 실질적으로 감독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 언론이 어떻게 지역 공공성을 증진시키는지 주민들이 감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형식적인 시청자위원회 구성으로는 부족하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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