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의 화재로 서른여덟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매제일을 돕겠다며 나선 동생, 함께 일하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들, 혼인신고 한 달 만에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남편. 서른여덟 명의 노동자 모두 가족과 친구들에게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은 기억되겠지만 사고 책임을 져야 할 업체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 2008년 1월 이천시 호법면 냉동창고 화재로 마흔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지만, 소유회사가 어디였는지는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같은 해 12월 이천시 마장면 GS리테일 물류센터에 화재가 또 발생했지만 이제는 몇 명의 노동자가 죽었는지, 책임을 질 업체와 사주는 누구였는지 모른다. 2013년 5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안성 냉장창고의 소유주가 2008년 1월 화재가 났던 냉동창고의 소유주와 같은 업체였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대형 화재로 인한 참사는 늘 이렇게 잊힌다. 그러나 2008년 1월 창고 소유주였던 (주)코리아냉장과 그 모회사 코리아2000은 지금도 여전히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리아2000은 (주)코리아냉장을 비롯해 16개의 피투자회사와 사주와의 특수관계법인을 거느리고 2018년 25억 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냈다. 2008년 12월 이천시 마장면 물류센터의 실소유주 사모펀드 아센다스코리아는 당시 화재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된 후 지금도 여전히 부동산 M&A에 나서며 그때와 같이 공사관리와 감독을 하청업체에 위임하고 있다. 같은 창고의 임차업체로 기소된 로지스올인터내셔널은 몇 명의 책임자만 처벌을 받았고,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창고관리업체와 공사현장 책임자는 불구속 기소됐다.

▲ 지난 4월30일 오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4월30일 오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자본은 이렇게 건재하지만, 일당 몇 만 원을 더 벌기 위해 친구와의 술자리까지 미루며 목숨을 잃은 노동자에게는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이천 물류센터의 화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의 현장 감식과 조사가 실시 중이고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이 예정됐지만, 안전관리 규정이나 해당 사업의 위법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참사 ‘원인’은 화재지만, 왜 그런 화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는 안전관리나 관련 규정 위반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관리 규제를 강화하고 처벌의 수위를 높여도 계속되는 작업장 안전사고는 더 많은 이익을 짜내기 위해 싼값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관리, 공사, 감리 등을 떠맡기는 자본의 천박함 때문이다. 자본의 천박함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하루에 몇 만원의 일당을 더 받으려는 노동자의 절박함을 이용한다. 생산력이나 기술 경쟁력의 제고가 아니라 저비용 다단계 구조로 노동자의 위험과 희생을 통해 이익을 낸 기업이라면 그 책임은 사주에게 있다.

그러나 대형 참사의 법적 책임과 처벌은 일부 관리자와 하청업체에게만 돌아간다. 한 차례 조사, 처벌, 배상 절차가 끝나면 인격화한 자본인 사주는 또다시 투자와 상장, 정부 지원과 협약 등으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는다. 2008년 1월 화재가 발생한 창고의 소유주 일가는 지금도 여전히 특수관계자의 자리에 앉아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참사가 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히 있다. 절박함에 현장으로 뛰어드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대가로 더 싼 비용을 들이면서 사모펀드, 은행, 제2금융권까지 얽힌 복잡한 소유관계를 만들고 건설, 임차, 관리 등의 업무는 다단계 원하청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 수십 명의 미래는 사라졌지만 자본의 미래는 이렇게 보장된다.

▲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5월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5월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번 참사의 책임과 처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참사의 이유가 아니라 원인에만 눈길을 돌린다면 책임자 몇 명의 처벌로는 언제라도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안전규정을 무시한 현장의 작업 관행이 아니다. 노동자의 절박함으로 이익을 쌓는 자본이 문제라면, 이런 참사를 방치한 사주가 해당 업종에서 퇴출되도록 사업 면허를 박탈하는 조치가 더 강력한 처벌이다. 언제까지 이토록 천박한 자본의 행태를 합법이라는 이유로 방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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