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이 길어질 것만 같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린이날인 5월5일 종료되고, 이튿날부터 학교와 어린이집 등이 순차적으로 개학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 체제로 전환됐다. 이즈음에서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코로나 19 명칭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고집이다. 방역 초기엔 명칭에 혼란이 있을 순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언론사는 ‘우한 폐렴’이란 명칭을 고수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이 명칭을 쓰는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방역에 실패했단 프레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다수였다. 

그런데 이들 언론사조차 이제는 ‘우한 폐렴’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방역 실패란 프레임이 설득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정파적 목적으로 질병명을 특정 지명과 결부시키는 행위가 저열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서인지는 그들이 스스로 밝히지 않아서 불분명하다. 처음엔 왜 우한 폐렴이란 명칭을 썼고 왜 최근엔 쓰지 않는지를 이제라도 밝혔으면 한다. 사회 각 분야의 온갖 사안에 대해 왜 그랬는지를 묻고 따지는 언론사가 스스로 뒤집은 행위를 은근슬쩍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에서 사람들이 검역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에서 사람들이 검역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사가 사용하는 명칭 논의를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천의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건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대부분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이천 물류창고 화재’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공사 작업 중에 사망하거나 다친 이 사건은 엄연한 ‘산업재해’다. 회식이나 출퇴근 중의 사고가 산업재해인지 법원에서 갑론을박한 적이 있었으나 이번 사건은 그런 논란의 여지 없는 업무상 재해다. 게다가 여러 원인과 상황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아니라 사업주가 안전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산업재해다. 또 경기도 이천이라는 지역보다 어느 사업장인지가 산업재해와의 관련성이 더 크다. 따라서 이 사건 명칭을 물류창고 공사의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산업재해’ 혹은 시공사인 ‘건우 산업재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사건 명칭을 제대로 부르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산업재해인 것을 분명히 인식할수록 해결책이 제대로 모색되고 행동에도 힘을 얻을 수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안전 의무를 가진 사업주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정부 감독 책임을 지적하는 기사들도 상당수였지만, 보다 직접적인 책임은 사업주에게 있다. 비인간적이지만 기업들은 이득과 손실에 즉각 반응한다. 안전이 비용이 아니라, 재해가 비용이 되도록 처벌과 벌금을 강화하면 목숨을 잃는 이들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용균씨 사건이 발생하고서 처음 보도하기까지 1주일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도 이들 언론조차 이번 산업재해가 발생하고선 이튿날부터 사업주 책임 강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진보·보수 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보수 정당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으나 정치권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은 과제였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 4월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 4월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궁극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안전, 권리가 보장되려면 노사 간에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급여를 받는 노동자 개인이 어떻게 기업을 견제할 수 있을까.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고, 노동 3권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노조조직률, 단체협약 적용률 등이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2018년 기준 10.7%고, 널리 알려졌다시피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과 노조조직률이 비슷한 프랑스의 경우 노조 가입자가 아니어도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다. 단협 적용률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단협적용률은 2017년 기준 12%로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안전을 요구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노동 3권 보장 수준만 따진다면 한국은 영락없는 후진국이고, 이런 상황이 유지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뿌리 깊은 ‘노조 혐오’라고 필자는 본다. 보수 언론이 수십 년간 줄기차게 노조의 부정적인 면모만을 조명한 ‘상징 조작’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의 영향력이 이전과 달리 축소됐는데도 이들이 남긴 유산인 노조 혐오는 여전히 강력하다. 이런 노조 혐오가 집약된 단어가 하나 있다. 다시 명칭 논의로 돌아간다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스스로 약칭을 ‘민주노총’이라고 정하고, ‘민노총’을 노조를 존중하지 않고 깎아내리기 위한 줄임말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민노총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여러 언론사들이 부지불식간에 민노총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사자가 멸칭이라고 생각하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언론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비판이 아닌 혐오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언론사가 아닐까. 그 혐오가 결코 산업재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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