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상파 방송 비평 프로그램이 주최한 행사에서 한 청중은 “일반적인 기업은 구조조정이 일어나는데 왜 계속해서 언론사는 늘어나기만 하고…”라고 말했다. 청중이 말하고자 한 것은 경쟁력이 없는 이들은 퇴보할 수밖에 없는 사회인데 기자 사회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  코로나19 확산 속 지역언론의 상황이 여의치 않고 존폐기로에 서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부분 반응은 이러했다. “관에 기생해서 광고 따내서 빨아먹는 지역언론들 정리할 좋은 기회 아닌가요?”

#3  지난해 10월 중국 시진핑 지도부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어플을 사용해 기자나 편집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보게 했다. 시험 문제엔 시진핑 국가주석 지도 사상을 묻는 질문이 포함됐고, 일정 점수를 넘어야 갱신된 기자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한 국내 반응은 ‘우리도 국가에서 기자시험을 치르도록 하자’였다. 

세 가지 장면에 대해 상당수 기자들은 억울해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느 직업보다 내부에서 경쟁이 치열한 곳이 언론사다. 자신이 쓴 기사는 내부에서 엄한 평가를 받는다. 일을 못하는 기자는 선배로 인정받지 못한다. 광고에 얽매여 있지만 편집과 경영의 분리 원칙을 지키면서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지역 언론도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언론사가 문을 닫는다면 지역민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가가 주는 기자 자격증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언론이 그 자격을 국가에 위임하는 순간 언론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언론 전체를 혐오의 대상에 올리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생산적인 비판도 될 수 없다. 하지만 대중보다 오히려 저널리즘 가치를 무시하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한국 사회 언론인 위상의 추락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과 신문을 제작하면서 권력자와 광고주를 향한 건 아니었는지 대중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러 들진 않았는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지지 않았는지 말이다. 

더구나 최근 일련의 사건은 한국 사회 저널리즘의 추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취재원을 겁박한 채널A 사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질타했던 언론의 모습을 무색케한 기자 단톡방 사건, 그리고 MBC 기자가 텔레그램 성착취 방에 들어가려고 한 정황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쯤되면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린다.

▲ MBC 뉴스데스크가 4월24일 오후 자사 기자가 성 착취물 유포 텔레그램 ‘박사방’에 연루된 데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사진=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 MBC 뉴스데스크가 4월24일 오후 자사 기자가 성 착취물 유포 텔레그램 ‘박사방’에 연루된 데 대해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사진=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기자 교육이라는 게 실제 존재하는지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자 채용 제도를 바꾸는 것도 고민할 필요도 있다. 상식 등 필기 시험과 취재 현장을 보내는 실무 시험, 그리고 면접으로 이뤄진 채용 절차를 통과하면 선배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받고 기자로 인정받는다. 반면 영미권에선 언론사 입사 후 일정 기간의 연수 과정을 두고 최종 ‘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정식 기자로 인정받는다. 입사 후 곧바로 경쟁에 뛰어들어 특종에 매몰되기보다는 현직 기자로서 저널리즘의 기초를 배우는 숙고의 시간을 갖는 방안이다.

언론 자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과 국민 알권리와 취재 사이 경계는 무엇인지 언론인이라며 평생 안고 가야 할 고민을 ‘초보’ 기자에게 숙제로 주는 것이다. 저널리즘 기초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면 케케묵은 관행을 깨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11월 뉴욕타임스는 “한국 신문들은 노태우를 규탄하고 있지만 한국 기자들이 그들이 집필하는 사람과 회사로부터 현금을 받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라고 썼는데 오랜 폐해였던 촌지 문화를 거부한 것은 젊은 기자였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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