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또다시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심사 제도는 물론 방송 제도의 파격적인 변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현실적으로 방통위는 종합편성채널의 문을 닫게 할 수 없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점하는 방통위 주도로 영향력이 강한 종편의 재승인을 불허하면 사회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종편이 가진 문제와 별개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유력 언론사에 대한 ‘탄압’이라는 프레임은 정권 차원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방통위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반복하며 공을 다음 방통위에 넘겼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 방통위 관계자는 2017년 재승인 심사 과정 당시 “방송사 문을 닫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현실적으로 재승인 심사가 갖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종편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방통위는 경영위기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 OBS, 경영의지가 없는 경기방송에도 재허가를 내줬다. 지난 지상파 재허가 당시 3사가 모두 탈락 점수를 받았으나 KBS와 MBC는 공영방송이라는 특성상 소유주가 바뀔 수 없어 심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종이호랑이’ 신세로 어떤 ‘조건’을 부여하느냐만이 변수가 됐다.

▲ TV조선과 채널A 사옥.
▲ TV조선과 채널A 사옥.

이제는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번의 종편 심사가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이유로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은 돌파구로 ‘실효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종편 재승인 심사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라”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종편 또 ‘조건부 재승인’,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기도 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실효성 강화’는 ‘양날의 검’과 같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보수정당이 집권한다면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박근혜 정부 방통위가 선거를 앞두고 공정성·객관성 심의 벌점 강화를 밀어붙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천 고삼석·김재홍 위원은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당시 언론시민단체 중심으로 꾸려진 공동대책위원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치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성·객관성 심의 벌점 강화는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며, 표적 심의를 강화하고 비판세력을 제거하는 데 이용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당시 공대위가 지적한 제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 2014년 방송평가 1위를 받은 TV조선의 홍보 배너.
▲ 2014년 방송평가 1위를 받은 TV조선의 홍보 배너.

박근혜 정부 때 심의 결과가 반영된 2017년 방송평가 종편 부문에서 TV조선이 1위, JTBC가 4위를 차지한 사실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방송평가는 매년 방통위가 방송사 내용, 편성, 운영 부문을 점검하는 평가로 재승인 심사 때 40%나 반영된다. 2017년 종편 재승인 당시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공개한 심사표에 따르면 한 심사위원은 TV조선에 777점을, 다른 심사위원은 437점을 줬다. 같은 방송사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200점 이상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한 종편 관계자는 “정성평가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관점은 다르지만 시민사회의 요구도 다르지 않았다”며 “심사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콘텐츠 투자는 정성평가라 해도 투자 금액 미달 여부로 평가하면 되는데 공적책임, 공정성은 주관적이다. 심사는 심사위원을 어떻게 뽑느냐가 핵심인데, 결국 방통위의 판단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계속 심사한다면 정량평가를 늘리고 미디어 기구 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정치적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앞서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중립지대’를 두는 안을 제안했는데 방통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 재승인·재허가 심사위원 등에도 ‘중립지대’를 두는 심사 안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재승인 심사만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도 아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대기업 진출 제한을 전제로 ‘보도기능 전면 허용’을 제안했다.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명박 정부 때 종편 4개사를 승인하고 특혜를 부여했다. ⓒ 연합뉴스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명박 정부 때 종편 4개사를 승인하고 특혜를 부여했다. ⓒ 연합뉴스

강 교수는 “근본적으로 지상파도 아닌 케이블 채널을 국가가 사실상 허가하는 제도가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권위주의 정부 때부터 아무나 보도를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통제해왔고, 이로 인한 허가 제도가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됐다. 종편에만 허용하면서 하나의 권한으로 만들어 특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 채널 가운데 종편과 보도채널에만 보도기능을 허용하는 현행 제도를 파격적으로 바꾸게 된다면 새로운 대안 뉴스 채널이 등장할 수 있다.

보도기능을 특정 방송에만 허용하는 규제는 현실적이지도 않다. 보도기능이 없는 방송사도 사실상 ‘보도와 비슷한 것’을 편성해온 지 오래다. 경제 채널의 프로그램은 사실상 뉴스와 다르지 않다. 2013년 방통위는 ‘유사보도’를 규제하겠다며 실태조사까지 벌인 적이 있으나 실패했다. 이미 TV 밖 유튜브에서는 온갖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이 경우 종편의 악의적 보도를 방지할 장치가 없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 대목에선 예민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열린민주당이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해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보복’ 프레임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과 별개로 언론인권센터의 경우 이전부터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자 구제 차원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한 언론 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해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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