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기간 비례대표 정당 열린민주당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최대 8석까지 내다봤던 예상 의석과 달리 비례대표 3번까지만 배지를 달게 됐다. 열린민주당 소속이지만 처음부터 당선권이 아니었던 후보들도 있다. 출판계 인사로 비례대표 13번을 받은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출판의 위상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정윤희 대표가 물었다. 그는 “미국, 영국, 중국에는 있는데 한국은 4년제 대학에 출판학과가 없다는 점이 우리 출판계 위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2년제 대학에서 실습을 가르치긴 하지만 해외에선 4년제 대학에서 출판의 정신, 철학, 마케팅 등 전반을 다룬다”고 했다.

정윤희 대표가 운영하는 책문화네트워크는 출판전문지 ‘출판저널’을 발행한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그는 2006년부터 출판저널 기자로 활동했다. 출판저널은 1987년 출판 자율화가 이뤄지면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행한 전문지다. 이명박 정부 때 협회 집행부가 바뀌자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실상 폐간되면서 그와 동료들은 해직됐다. 이후 그는 출판저널을 독립적으로 복간시켰고 대표가 됐다. 그는 출판 관련 팟캐스트를 진행했고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사진=책문화네트워크 제공.
▲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 사진=책문화네트워크 제공.

정윤희 대표는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13번을 받은 것도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한다.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도 열린 공천 덕에 후보가 됐다. 여성 출판인이 비례대표 후보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정윤희 대표는 국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었을까. 그는 “ICT 분야는 국회의원들이 진출하면서 현장과 정치를 연결했다. 출판은 그러지 못했다. 도서관진흥, 독서진흥, 출판진흥과 더불어 출판과 독서 활동들을 문화산업을 비롯한 다른 제도에까지 연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400 대 4000.” 그가 출판 현실의 ‘열악’함을 설명하기 위해 꺼낸 숫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기구가 있다. 이 곳의 출판산업 예산이 연 400억원 조금 넘는다. 반면 콘텐츠진흥원 연간 예산은 4000억원이 넘는다. 출판도 콘텐츠인데 콘텐츠로 인정 못 받는 현실이다. 출판이 문화산업을 이끌어가는 동력임에도 소외를 받아왔다.” 

산업 진흥 외에도 그는 출판과 관련한 여러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했다. 출판은 출판진흥법, 잡지진흥법, 독서문화진흥법, 도서관법 등으로 나뉜다. 정윤희 대표는 “오디오북까지 나온 매체 변화를 기존 법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출판의 범위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도서관법은 2006년에 만들어졌는데 도서관의 기능 자체가 달라졌지 않나. 도서관 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 나왔지만 폐기를 앞둔 상황”이라고 했다. 

‘뜨거운 감자’였던 도서정가제와 관련 “인위적으로 할인을 막는 도서정가제 도입 후에 출판산업 규모가 얼마나 성장할지 경제적인 분석이 필요했는데 그 논의가 빠졌다. 도서정가제를 하는 국가들은 출판 후 1~2년 지난 책은 규제를 풀어준다. 한국은 신간과 18개월이 지난 구간의 할인을 다 막아 출구전략이 없다. 이런 부분들은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교보문고 종로점. ⓒ연합뉴스
▲ 교보문고 종로점.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 내 ‘협력’도 필요하다. 그는 “독서진흥법은 미디어정책국 산하 출판인쇄독서진흥과에서 맡는다. 그런데 도서관 정책은 지역문화정책국에서 맡는다. 정책협력이 필요한데 잘 안 된다. 보완돼야 한다”고 했다.

출판은 노동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은 분야다. 정윤희 대표는 “편집자,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은 사각지대에서 일한다. 책이 빵 터져서 돈을 많이 벌면 출판사 대표는 좋다. 건물 짓고 자녀에게 물려주고 한다. 그러나 노동환경은 변화하지 않는다. 출판 관련 지원 정책들은 출판사에게 가고 노동자에 돌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10인 미만 사업장이라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않는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윤희 대표는 “도서관 사서들도 비정규직이 많고 처우도 굉장히 열악하다”며 “업계 노동자들이 행복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더 좋은 책이 나오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국민이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서점이 계속 사라지고 있고, 독자도 줄어들고 있다. 낙선했지만 책문화 활동가로서 계속 활동하겠다. 정치권이 출판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의 기반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캠페인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