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선거 평가를 위한 기초 데이터들이 너무 부족하고 나중에야 나온다. 지역구 선거 결과, 정당별 득표수만으로는 많은 것을 알기 어렵다. 계급, 젠더, 세대, 정치성향 등에 따른 투표 결과가 나와야 의미있는 평가와 분석이 가능하다. 그런 것을 찾을 수 없고 마냥 미룰 수도 없으니 대부분 근거가 부족한 주관적 판단과 감각을 따르게 된다.

그래도 이번 결과가 2016년 촛불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대한 투쟁은 한국사회와 정치지형을 뒤흔들었고, 그 결과가 이번 총선에도 나타났다. 기득권 세력과 족벌언론 뜻대로 좌지우지되던 시절은 지났다. 반갑게도 많은 낡은 우파 인물들이 무대를 떠났다.(다만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곽상도와 용산참사 주범 김석기는 돌아왔다.)

우파가 이번에 ‘영혼까지 끌어모았’지만 패배한 결과는 더 이상 친미, 냉전, 재벌, 영남, 강남에 기반한 기존의 기반, 정책, 이데올로기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줬다. 선거 과정에서 우파의 행보는 혼란스러웠고, 무기력했다. 전략도 없이 저 멀리 진중권 씨의 입만 쳐다보는 듯했다.

지난해 ‘검찰대란’이 우파에게는 독약이 됐다. 그때 거대하게 결집한 우파는 이대로 가도 뒤집을 수 있다는 착시와 자만을 하게 됐다. 우파 유튜버와 태극기부대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혁신’보다 ‘통합’에 치중했고, 서로 다른 전략과 방향들이 모아지지 않고 어지럽게 뒤섞였다. 나중에 우파 유튜버들은 공개적으로 ‘좆같아도 찍어주자’고 욕을 해댔고, 선거가 끝나니 서로를 탓하는 분위기다.

단지 ‘우파는 결집했지만 중도를 견인하지 못한’ 게 아니다. 우파가 분명한 방향으로 결집하지도 자신감을 갖고 나가지도 못했다. 우파와 지지자들은 형식적으로 합쳐졌지만 스스로가 확신과 자신감이 없었고, 그러니 소극적이었고 주변을 설득하지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샤이 보수’는 있었다.

특히 청년우파들에게 미래통합당은 찍어주기 부끄럽고 불만족스러웠다. 부끄러움을 넘어서 지지할만한 분명한 이익(트럼프의 ‘미국인의 일자리’같은)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권자 세대구성의 변화 속에서 20대 남성이 20대 여성보다 2배 가까이 더 통합당에 투표한 것을 눈여겨보게 된다.

▲ 지난 4월17일 오전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미래통합당 홈페이지
▲ 지난 4월17일 오전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미래통합당 홈페이지

선거 이후에도 우파의 새로운 방향은 불분명해 보인다. 우파의 이합집산과 재구성은 어지럽게 계속될 것이고 아마도 반중국 반이민 인종주의, 소수자 혐오는 신우파들에게 중요한 무기로 남을 것이다. 친재벌 강남당을 벗어나 우파 포퓰리즘으로 가자는 주장도 커질 수 있다.

노력해서 실력으로 차지할 내 몫을 무임승차자(여성, 외국인, 이주민)들이 빼앗고 있다면서 ‘공정’과 ‘역차별’의 논리로 청년과 하층민들의 박탈감을 파고드는 목소리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386기득권 엘리트’를 표적으로 세워 정당성을 얻으려 할 것이고, 이런 위험과 ‘공정의 역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도 2016년 촛불의 수혜자가 됐다. 물론 민주당은 기득권 기성정당으로서 우파의 꼼수에 또다른 꼼수로 맞서며, 양당체제를 강화하고 진보정당들을 물먹였다. 급진적 개혁과는 선을 그었고 우파와 기득권의 눈치를 보고 압력에 타협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민주당의 무능, 약점, 한계만 지적하면서 정신승리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분명 우파와는 또 다른 진보좌파가 넘어서야할 경쟁상대이다. 그런 상대를 별거 아닌 존재처럼 과소평가한다고 자동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다가올 리는 없다. 상대편의 장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전략의 기초다. 그 점에서 ‘민주당이 심판받을 차례였는데 코로나 덕분에 피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없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동안 우파가 발목잡아서 못한 게 많을테니 이제는 제대로 해보라’는 마음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다. ‘별 차이없는 양당의 정책 실종 선거’라는 분석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두 당이 경제정책, 대북정책, 검찰과 언론개혁 등에서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고 봤고 거기서 더 강한 우파적, 친시장적, 기득권 옹호적 입장에 반대한 것이다.

더구나 통합당이 막말 우익 유튜버들을 공천했다면,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통해 권인숙, 윤미향, 양이원영, 용혜인 등을 공천해 젠더, 생태, 기본소득같은 진보적 의제까지 흡수했다. 80만 명의 권리당원을 가진 탄탄한 선거정당으로 진화도 보여줬다.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있는 여러 스피커들과 만만찮은 차기 대선주자들도 거느리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이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상황은 2004년 탄핵 이후 구성된 17대 국회와 유사하다. 코로나발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악조건 속에서 여전한 검찰 등 관료기구, 족벌언론, 재벌들의 방해와 반동 시도를 뚫고 개혁의 성과를 거두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 당장 관피아들은 이번에 거듭 재난긴급지원금의 발목을 잡았다.

최저임금, 주52시간 때처럼 또다시 우파와 기득권에 굴복하면 개혁은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허락하는 남북화해’, ‘재벌의 눈치보는 경제개혁’, ‘윤석열에 맡겨놓고 뒤통수 맞는 적폐청산’이 지속되고 차별금지법은 또 물 건너가면 실망은 환멸로 변하게 될 것이다. 참여정부가 밟았던 실패의 길이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4월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4월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16년전과 비슷한 것은 진보정당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때보다 더 불리해졌다. 2004년에 진보정당(당시 민주노동당)은 지금보다 더 많은 지역구에 후보를 냈고 더 많은 정당 지지율을 얻었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더 분열했고 더 약화했다. 지역기반은 더 줄었고, 사회운동과 연계는 더 약해졌고 ‘영남노동벨트’는 희미해졌다.

이명박근혜 10년 동안의 종북몰이(와 그것에 대한 굴복), 야권연대가 낳은 결과일 것이다. 그 당시 야권연대는 불가피한 점도 있었지만, 정권교체 이후에도 ‘여권연대’로 계속돼 왔다. 그렇게 보면, 이번 총선이 진보정당(특히 정의당)에게 이제라도 홀로서기에 나설 순간이었던 것은 맞다. 민주당과의 오랜 선거연대를 정리한 정의당의 선택은 타당했다.

그러나 왜 ‘진보 선거연합’을 통해 우파 위성정당 꼼수에 맞서며 나머지 진보정당들과 힘을 모아서 함께 국회로 들어갈 수는 없었는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여지와 명분은 차단될 가능성이 높았고, 녹색당과 민중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의 절박한 처지를 민주당이 파고들 틈도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아쉬운 결과는 ‘민주당 2중대 이미지’ 때문이거나, 차별성있는 정책과 공약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진보정당들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필요한 비판을 포기하거나 침묵한 적이 없다. 진보정당들의 공약은 민주당과 구분되는 급진적인 것이었고 특히 청년, 젠더, 생태, 노동 공약들은 돋보였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그런 차별성과 장점은 지금의 구조 속에서 현실적 선택지로 다가가기 어려웠다. 필요한 것은 사회운동과의 네트워크를 통한 대중운동 속에서 연대하며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상가임대차 보호법이나 무상급식 국민투표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 민주당 지지자들을 진보정당 쪽으로 견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연계가 약화하고, 내부적으로도 분열과 불신, 감정적 골이 깊어진 진보정당들은 그런 운동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인재와 지지자들을 오히려 민주당 쪽으로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다. 진보정당들은 검찰과 기성언론에 분노해 거리로 나선 촛불민심과도 스스로 선을 그으면서 열린민주당이 등장해 그 공백을 낚아챘다.

촛불 이후에 적폐청산 속에서 구체제는 몰락하고 이제는 진보좌파가 민주당을 대체해 나가길 기대했었다. 진보좌파의 주도 속에 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생태주의적, 페미니즘적 가치가 시대정신이 되기를 기대했다. (검찰개혁보다 불평등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그런 가치들을 서로 대립시키거나 경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차하는 모순을 결합시키는 횡단의 정치를 기대했다.

민주당은 이런 시대정신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고 한계가 많으니까. 민주당의 그런 한계와 문제점에 실망해 이탈하는 사람들을 흡수하면서 진보좌파의 지지기반이 크게 확장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토록 많이 갈라지고 아픔을 겪고, 상처를 주고받았으면 이제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상 4번째의 유기적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한계를 드러내며 실패하는데 반자본주의적 희망과 대안도 건설되지 못한다면, 신우파가 그 공백을 파고들며 절망한 사람들을 또 다른 야만으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에게 투표용지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진보정당들은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다시 훌훌 털고 힘을 모아서 싸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로간의 차이점보다는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과 같이 밀고나갈 꿈을 더 생각하면서 더 넓은 대중에게 다가가길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많은 영감을 주는 생태사회주의자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의 말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

“사람은 변한다. 여기에 세상의 희망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사생활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람들은 술을 끊고, 약물을 끊고, 더 친절해지려고 노력하며, 실수로부터 배운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스스로 이렇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너무 많은 고통이 마음을 돌처럼 굳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개인에게 진실인 것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SNS에서 마치 그 누구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처럼 누군가를 경멸하는 사람들의 말을 끝없이 듣는다. 상대편의 지지자들을 우리 편으로 획득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놈들’ 증오에 동의하지 않으면 친구 삭제하는 것을 본다.

“이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것은 분노와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찬 급진적인 운동이 다른 절망의 길을 걸어온 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할 때 역사의 큰 변화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중에서 기후, 경제, 인종, 이민, 섹슈얼리티에 대해 급진적인 사람이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스로 믿고 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급진적이면서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개방적으로 대하고, 그들과 진심어린 대화를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가로지르면 끔찍한 잔혹함과 끔찍한 고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사람들이 배우고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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