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웹툰을 즐겨보았던 사람이라면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어른스러운 철구’라는 작품을 기억할 것이다. ‘어른스러운 철구’는 독특한 블랙 코미디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린 소년 주인공이 이따금씩 드러내는 어른스러운 면모로 일종의 반전 코미디와 같은 흥미를 주었던 만화는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의 성장과 발맞추어 점차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작품에 녹여내며 오래가는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인기를 얻는 웹툰 상당수가 그렇듯, ‘어른스러운 철구’ 역시 연재하는 동안 몇 건의 기업 광고 웹툰을 그리는 등의 부수익을 거두기도 하였다. 1부가 끝난 2010년 12월부터 2부가 시작된 2013년 7월까지 꽤나 긴 휴식이 있어서 잠시 독자들의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설마하니 작가가 생계 문제에 시달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른스러운 철구’를 2014년 완결낸 이후로 계속 단독 신작은 없었지만 2018년에 스토리로 참여한 신작 ‘남의 부인’을 KT의 웹툰 플랫폼 ‘케이툰’에 연재하는 등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해다란 작가가의 사정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은 2020년 3월부터 네이버 도전만화에 연재를 시작한 ‘꾸질이 이야기’가 점차 사람들에게 많은 파장을 낳았기 때문이다. ‘꾸질이 이야기’는 본래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서 부정기적으로 공개되던 개인 만화 연작이었다. 작가 자신을 형상화한, 개와 비슷한 모습의 캐릭터가 마냥 밝지도 마냥 어둡지도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었다. 물론 작가는 블로그에 작품을 공개할 때는 물론, 도전만화를 통해 작품을 연재할 때도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면서 선을 계속 그었다.

그러나 네이버 도전만화를 통해서 연재를 시작한 ‘꾸질이 이야기’는 조금씩 쉽게 넘기기 어려운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애시당초 네이버 도전만화를 통해서 작품을 연재하다 빠르게 인기를 얻어 정규 연재를 시작하게 된 작가가 오랜 공백기를 거쳐 다시 네이버 도전만화에 작품을 연재하게 되는 모습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회자가 된 것은 지난 4월 9일 공개된 7화 ‘회자’편의 내용이었다. 이전까지 ‘꾸질이 이야기’는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삼아 데뷔작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 도저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그러나 7화에 이르러서는 작가가 신작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작가의 사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네이버와의 계약 과정에서 불공정한 요소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꾸질이 이야기’ 7화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작가 본인이 네이버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네이버 웹툰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는 작품을 올릴 수 없는 계약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2018년에 스토리 작가로 참여한 ‘남의 부인’의 경우에는 네이버가 ‘너그럽게도’ 해당 작품은 단순 창작이 아니라 분업 또는 협업 형태로 작업한 작품이니 계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연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20년 현재에도 여전히 전속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에 신작을 내지 못했던 이유는 ‘어른스러운 철구’의 연재를 마친 이후로 단 한 번도 연재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했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계약을 중단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위약금을 내야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사정도 함께 드러냈다.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내용이기에 ‘꾸질이 이야기’ 7화는 곧 무수하게 퍼져나갔다. 과거 1960-1970년대 한국 만화계를 강력하게 독점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헤 악명을 떨쳤던 ‘합동출판사’ 시절의 독점-전속 체제가 2020년대에도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만화 잡지가 융성하던 시기에도 ‘전속’이라는 개념은 다시 도입되었으나, 구속력이 이전처럼 강하지는 않았었다. 신작을 연재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네이버 밖을 벗어날 수 없다는 계약을 한국 웹툰에서 오랜 시간 공고하게 1위를 지키고 있는 네이버가 주도했다는 해다란 작가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분노할 수 밖엔 없었다.

‘꾸질이 이야기’의 내용이 계속 논란이 되자 네이버 웹툰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기 시작했다. 해다란 작가 본인에게 연락을 하여 내용에 대한 정정과 수정을 요청하는 한편, ‘웹툰인사이트’나 ‘주간경향’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계속 자사의 해명을 이어나갔다. 네이버 웹툰의 해명을 요약하면 해다란 작가와 ‘전속 계약’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연재를 하는 것을 막지는 않지만, 대신 계약 기간 동안 연재 매체에 상관없이 발표하는 만화의 2차 저작물과 관련된 사업은 모두 네이버가 대행하는 식이었다고 네이버 웹툰은 밝혔다. 계약 기간 역시 무제한이 아니라 2013년 재계약을 맺으며 5년간 150화를 연재하는 조건을 합의했으며, 이후 시간은 5년을 훌쩍 넘었지만 연재회수를 채우지 못해 계약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이와 함께 네이버 웹툰은 현재는 작가 단위의 계약은 맺고 있지 않으며, 해다란 작가가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에는 위약금을 받지 않겠다는 해명을 함께 남겼다.

이런 해명 작업이 이어지면서 해다란 작가는 자신이 네이버 웹툰과 맺은 계약을 ‘오해’했다는 입장을 남겼다. 많은 팬들은 위약금 없이 네이버와 맺은 계약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에 위로하기도 했지만, 일부 작가나 팬은 왜 제대로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에 잘 하지 않았냐며 작가를 질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책임을 해다란 작가의 오해이자, 귀책사유로만 볼 수 있는 것인가.

▲4월13일 '꾸질이 이야기'에서 해다란 작가가 올린 해명.
▲4월13일 '꾸질이 이야기'에서 해다란 작가가 올린 글. 

네이버 웹툰의 해명을 전부 맞는 것이라 단정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체 어떤 플랫폼이나 출판사에서 작품 본편 자체의 연재는 가능하지만, 작품을 활용하는 2차 저작권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회사(네이버 웹툰)이 독점적으로 행사한다는 계약에 동의를 할 수 있을까. 동시에 2018년 ‘남의 부인’의 연재가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 해다란 작가와 네이버와 이야기를 하면서 ‘계약에 위배되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고 네이버 웹툰이 답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네이버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작가에게 제대로 된 계약 내용을 알려주는 대신, 해다란 작가 본인이 만화로서 문제를 호소하기 전까지는 자사에게 유리한 내용이나 순전히 질문한 내용에 대해서만 기계적으로 응답했다는 의심을 보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는 무제한 계약이 아니라 ‘기간별-회차별 계약’을 맺었다고 네이버 웹툰이 주장하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해다란 작가는 ‘어른스러운 철구’ 2부가 연재를 시작한 2013년 네이버 웹툰과 다시 계약을 체결하면서 5년 동안 150회의 작품을 그리며,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계약 기간을 자동적으로 연장한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하지만 ‘어른스러운 철구’ 2부는 약 1년 4개월간 연재되었던 1부와 달리 1년여간 연재를 하고 마무리 되면서 더욱 빠르게 작품이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 작가는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인해 네이버의 연재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했지만, 정작 네이버가 작가의 작품 기획안이나 포트폴리오를 평가하는 이상으로 ‘매니저먼트 업체’로서 어떻게 작가와 함께 했는지는 네이버 웹툰의 여러 차례 해명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 네이버 웹툰과 해다란 작가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는 오랜 시간 고질적으로 발생했던 문제이자, 2020년 현재에도 계속 문제의 씨앗이 되기 일수인 ‘연예 매니지먼트 계약’의 만화판을 보는 느낌이다. 갈등을 불러일으킨 연예 매니지먼트의 공통적인 요소는 대개 ‘계약 기간’과 ‘매니지먼트사의 책임’이다. 연예 기획사는 고정적으로 연예인(가수, 배우 등)를 활용하여 안정적인 수익을 획득하기 위하여 10년 이상의 계약 기간을 설정하거나, 음반 개수나 드라마 출연작 개수 등의 기준을 내세우며 해당 기준을 채우지 못할 경우 매니지먼트 계약이 자동적으로 연장된다는 조항을 삽입하기도 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해당 계약의 상당수는 계약을 맺는 연예인에게는 온갖 책임 조건을 부여하지만 정작 계약의 상대방인 매니지먼트사(기획사)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형식적인 수준의 책임을 부여한다는 불공평한 요소가 산재했다. 음반을 기획하거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결코 제조업처럼 단순하거나 일률적이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물론 개인과 기업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기계 역시 과열되면 식힐 시간이 필요하듯이, 연예인 개인 역시 무한정 활동을 지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이전까지 보편적이었던 연예 매니지먼트 계약은 이러한 요소를 쉽게 간과하거나 책임을 전부 연예인 개인에게 전가하는 일이 상당수였다. 이러한 일이 지속적으로 여러 차례 문제가 되자 부랴부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제정-정비하고, 여러 법적 판결로 과도한 장기 계약이나 과소하게 매니지먼트사의 책임을 책정하는 계약의 문제를 지적하며 조금씩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해다란 작가가 네이버 웹툰과 맺은 계약 역시 이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연예 매니지먼트의 상황과 유사하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더욱 심각한 부분도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용이했던 연예계와 달리 만화계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으며, 만화계 차원의 문제 제기도 2018년 12월 전국여성노동조합 산하로 디지털콘텐츠창작자지회(디콘지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미약했던 것이 현실이다. 네이버 웹툰이 한시적으로 시행했었다고 말하는 매니지먼트 계약 역시 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제대로 주목받거나 분석되지 못했었다. 이외에도 다른 대형 플랫폼, 또 다른 중소형 플랫폼에서 어떤 구습이나 문제가 ‘관행’으로 정당화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제대로 된 조사나 분석이 여전히 미비한 상황에서, 만화가들이 플랫폼이나 출판사, 또는 ‘에이전시’과 어떤 식으로 계약을 맺는지에 대한 파악도 쉽지 않다.

어떤 의미로 해다란 작가와 네이버 사이의 계약 논란은 한국 만화가가 놓인 상황이 시장 확대와 상관없이 점차 악화됨을 보이는 지표와도 같다. 만화 잡지나 단행본이 중심이 되던 1990년대보다 2000년대 본격적으로 웹툰이 중심에 자리 잡으며 시장 자체는 형성하였지만, 오히려 작가 개인이 처한 노동과 권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전에는 잡지에 따라서 일간-주간-격주간-월간 연재를 제한적으로나마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극소수의 매체를 제외하면 주 1회 연재가 기본이 되어 있다. 이전에는 ‘쪽수’로 작업량을 일률화할 수 있었지만, 스크롤이 기본이 된 상황에서는 ‘컷수’가 이전에 ‘쪽수’를 대체하고 있지만 ‘더욱 한 번에 작품을 많이 보기를 원하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핑계로 최소 컷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네이버만화 홈페이지.
▲네이버만화 홈페이지.

컬러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채색의 필요성이나 중요도는 무척 상승했지만 일본처럼 어시스턴트 고용이 가능한 수준의 고료 지급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 도리어 레진코믹스 등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은) 웹툰 플랫폼을 중심으로 ‘고료’ 대신 ‘미니멈 개런티’(minimum guarantee, 최소 보장금액)으로 일방적으로 개편하며 극히 일부의 고소득 작가를 제외하면 만화가 상당수는 자신이 만화를 그려서 받는 금액이 ‘고료’나 ‘임금’이 아니라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 충당하고 갚아야 할 사실상의 ‘빚’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한, 능력 개발을 위한 투자는 등한시된다. 그저 작가 개개인이 혼자서 노력하거나 에이전시와 다시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발생할 뿐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등에서 지속적인 작가 재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으나, 이러한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작가들은 제한되어 있다.

처음부터 플랫폼이나 출판사에서 떨어져 자신이 스스로 작품을 출간하지 않는 이상,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의 상당수는 정해진 간격에 맞춰 작품을 제작-발표하고, 다시 작품을 그린 대가에 대한 돈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만화가는 문화예술 영역의 ‘창작자’이지만, 작품을 기획하여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를 시작하는 와중에서도 지속적인 플랫폼의 관리-통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만화가는 ‘창작 노동자’로서의 요소도 동시에 있다.

그러나 지금 다수의 한국 만화가들은 2000년대 이전보다 월등하게 커진 시장의 크기를 실감하지 못한채, 작가 본인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계약을 일방적으로 요구받으며, 작가로서의 자유로움도 노동자로서 지녀야 할 권리도 없는 이상한 경계에 놓여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비롯한 유관 기관도, 한국만화가협회나 우리만화연대, 웹툰협회 같은 작가 단체도 모두 손을 놓은 상황에서 만화가들의 상황은 더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밀려간다. 그런 점에서 해다란 작가가 네이버와의 계약을 명확하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오해’나 ‘해프닝’이 아니다. 작가 자신이 제대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도, 권리도 행사하지 못한채 단순히 작품을 ‘납품’하는 기계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하는 2020년대 한국 만화의 씁쓸한 ‘초상’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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