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폐하 만세! 토착왜구당 만세! 유신 종신 대통령 만세!” 경상도 지역만 붉게 칠해진 지도 위에 이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SNS를 통해 유포되는 이미지다. 영남 표심을 향한 경멸을 드러낸다. 21대 총선에서 여권이 압승한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지역이 경상도다. 대구경북(TK)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없고,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몇 석 보이지 않는다. 경상도 지역은 외딴 섬처럼 보인다.

▲ SNS를 중심으로 유포되는 이미지.
▲ SNS를 중심으로 유포되는 이미지.

지역주의 회귀 vs 희석 

총선 직후인 16일 언론은 일제히 ‘지역주의’를 꺼내 들었다. “이번 총선에선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 지역주의가 되살아났습니다.”(KBS 뉴스9) “지역주의 선거구도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MBC 뉴스투데이)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균열을 보이던 지역주의는 다시 공고해졌다. 지역주의 타파의 흐름을 이어가기는커녕 퇴행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표 분석이 이뤄지자 상반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역주의가 다시 공고해졌다고 지적했던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재현된 영호남 의석 쏠림, ‘낡은 지역주의’와는 달랐다”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날 한겨레는 “지역주의 회귀? 영남 민주당 득표율은 올랐다” 기사를, 부산지역 국제신문 역시 “부산 지역주의 회귀? 뜯어보면 과거보다 한결 희석” 기사를 통해 지역주의 회귀 프레임을 반박했다.

▲ 4월16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4월16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 4월18일 한겨레 기사 갈무리.
▲ 4월18일 한겨레 기사 갈무리.

이들 기사는 영남에서 민주당 표심이 선전했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부산의 민주당 의석은 6석에서 3석으로 줄었지만 표가 그만큼 줄어든 건 아니다. 한겨레는 21대 총선 민주당 후보의 PK 득표율이 43.5%로 20대 총선(37.8%)에 비해 올랐고, TK 역시 이전 총선에 비해 득표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겨레가 제시한 그래프는 민주당의 영남 득표가 역대 최고치라는 점을 드러냈다. 

패배한 후보들의 실제 득표를 보면 ‘졌지만 잘 싸운’ 경우도 적지 않다. 부산 지역에서 총선 취재를 한 시사블로거 아이엠피터 임병도씨에 따르면 부산 18개 지역구 중 2곳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40%를 넘었다. 대구수성갑 김부겸 후보의 득표율은 39.29%에 그쳤지만 6만462표를 받아 2012년 총선 당시 4만6413표보다 크게 늘었다. 20대 총선 때 받은 8만여 표에 못 미치지만 득표율과 달리 ‘반토막’ 상황은 아니다. 

역대급 선전? 지방선거 표심과 비교하면

“지역주의만 원인으로 언급한 보도는 게으르고, 이를 반박한 한겨레 보도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대구경북지역 대안언론 뉴스민의 천용길 편집장은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언론은 21대 총선을 20대, 19대 총선과 비교하는데 지방선거와 겹쳐서 보면 TK 민주당 득표는 늘었다 줄었다가 반복되는 흐름”이라며 “언론은 민주당 대구 득표가 20대 총선 24.4%에서 21대 총선 28.5%로 늘었다고 하는데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은 35%를 득표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PK에서는 지역 정권교체까지 일어났다.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도지사가 나란히 집권했다. 민주당은 부산 기초자치단체장 16곳 구·군 가운데 13곳에서 승리했고, 부산시의회는 47명 가운데 4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대구 지역에서도 기초의회에 40% 가까이 민주당 의석이 생겼고, 광역선거에서도 민주당 당선자가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구미시에서 민주당 시장이 탄생한 일도 상징적이었다. 

따라서 영남에서 민주당이 받은 성적표는 지역주의로 돌아갔다고 보기에는 선전했고, 역대급이라고 보기엔 지방선거 득표에는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부겸 페이스북
▲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부겸 페이스북

자영업자 많은 부산 경기에 민감

전보다 민주당의 상승세가 꺾인 데는 몇 가지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임병도씨의 경우 “부산은 대규모 기업이 거의 없고, 자영업자가 많아서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원래부터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코로나19로 경기가 더 안 좋아져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던 지방선거 이후 지역 내 심판론이 대두된 시기이기도 했다. 우선 교체된 부산시장과 울산시장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 김경수 지사는 ‘드루킹 사건’, 송철호 울산시장은 선거개입 논란이라는 정치스캔들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민주당은 여당 프리미엄을 내세우며 ‘동남권 신공항’ 프로젝트에 힘을 실었다.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PK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단’까지 만들었지만 진전이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180석’ 발언도 나왔다. 미래통합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남 전반에서 ‘오만한 여당 심판론’을 내세웠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부산을 찾아 김비오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이 부산을 찾아 김비오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용길 뉴스민 편집장은 “구미 지역의 경우 시장을 교체하면서 큰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시장이 잘못한 일도 있다. 구미 선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구미시장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 보수표 결집에 대해 선거기간 내내 이야기했다. 대구 수성갑에서는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이긴다는데 우리라도 힘을 실어줘야하지 않냐는 정서가 강해졌고 70%대 투표율이 나왔다”고 했다. 임병도씨도 “대선,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찍어줬는데 경기가 나아졌나?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미래통합당측이 이용해 ‘오만한 민주당 프레임’을 내세웠고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역에선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은 점도 변수가 됐다. 창원성산, 울산동구에서는 단일화 무산이 미래통합당 당선으로 이어졌다. 

천용길 편집장은 “지역주의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지역주의만으로 규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이 2004년에는 대구에 장관급 등을 전략공천했는데 이번에는 중앙당에서 그만큼 집중하지 않았다. 16년 만에 민주당이 대구경북 전 지역구에 나왔고, 12년 만에 출마한 곳도 있다. 이런 곳에서 표가 안 나왔다고 몰상식하다고 몰아가서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빨간 나라’ 경상도 표심의 디테일은 ‘지역주의 회귀’나 ‘지역주의 극복’ 프레임 바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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