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에 걸릴까봐 겁나는 게 아니다. 그러면 뭘 걱정하느냐고? (...) 내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

이탈리아 소설가 파올로 조르다노(Paolo Giordano)가 봉쇄된 로마에서 자가 격리하며 써내려간 글 일부다. 그가 2월 말부터 자가 격리 상태로 코로나19에 써내려간 글이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책으로 출간됐다. 그는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 대표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그가 격리 상태에서 쓴 글들은 이탈리아의 현 상황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가 직접 본 이탈리아의 아시안 혐오, 친구 생일파티에 가려다가 든 감염병이 퍼지는 상상, ‘젊은 사람은 걸려도 금방 회복되니까 돌아다녀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기적 주장에 대한 반론, 전염병 감염경로 이야기를 하다가 쉽게 내뱉는 중국인 혐오, 환경 파괴와 가짜뉴스까지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다양한 글은 일종의 르포가 돼 ‘전염병 시대’를 기록한다. 실제 그의 글에서 봉쇄 이후 이탈리아 상황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봉쇄된 로마에서는 밖으로 나가려면 내무부가 정한 확인증을 소지한 사람만, 교대로 식료품 쇼핑을 가거나 쓰레기를 버린다. 어디로 가는지, 검사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 말해야만 확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조깅을 나갔을 때 그는 텅 빈, 세계적 관광 명소 콜로세움을 보고 경직돼 버렸다고 고백한다. 

그가 사는 곳이 매일 ‘뉴스 특보’가 됐고 모든 신문사 홈페이지는 코로나19로 도배됐다. 감금 이후 처음 며칠은 오후 6시쯤 사람들이 창문 앞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 비디오들이 전 세계에 퍼졌다. 그러나 이런 퍼포먼스도 오래가지 못했다. 3월 말에는 시민보호부(한국의 질병관리본부 격)의 회보에 전념하는 시간이 됐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책 표지. 

그의 글에서 이탈리아 언론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정치가들과 함께 언론이 ‘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다”라며 “전쟁 같은 극적인 상황이지만 본질이 다르다. ‘전쟁’이라는 말이 일종의 언어적 기법이지만 이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염의 시대에는 보다 신중하게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말은 권위주의, 권리 정지, 공격성을 불러오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고 했다. 

이탈리아 신문사들이 홈페이지에 확진자 수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행동도 비판했다. 그는 신문사들이 이런 결정을 했을 때 배신감마저 들었다며 “처음부터 숫자는 불안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정부는 은폐하거나 더 적어 보이게 하는 다른 계산법을 쓰는 게 낫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더 심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고 보기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니 진실을 감추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밀려왔다”며 “이틀 후 신문사가 다시 숫자를 게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염의 시대에 투명한 정보는 권리가 아니라 필수적 예방 의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기적 선택은 ‘상상력 부족’에서 온다며 연대를 강조한다. 그는 바이러스 치사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젊고 건강한 사람들까지 몸을 사리면서 평범한 일상을 포기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떠올린다. 각자 운명에 맡기는 것도 모든 자유 시민의 기본 권리가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며 코로나19 치료에 필요한 입원 비율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많은 감염자가 발생하면 의료진과 시설, 장비 부족으로 의료 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자동으로 높아지는 취약자들의 감염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전염의 시대에 우리 행위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며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 결여에서 온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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