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거시 플러스.’

동아미디어그룹이 지난 1일 100주년을 맞아 구성원들에게 배포한 보고서 제목이다. 유산을 뜻하는 레거시(legacy)와 더한다는 뜻의 플러스(plus)를 합친 말이다.

최근 신문과 방송을 ‘레거시 미디어’로 지칭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매체로 평가하지만 지난 100년을 생존한 동아일보가 그대로 지켜야 할 것과 더해야 할 것을 정리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2019년 초부터 기획됐다. 

보고서는 동아미디어그룹의 뉴센테니얼본부, 경영전략실, 편집국이 협업해 만들었다. 뉴센테니얼본부는 2018년 발족해 보고서를 위해 외부 CEO와 석학 60여명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2019년 동아일보 100주년 TF를 중심으로 보고서 논의가 이뤄졌다.

▲동아미디어그룹의 '레거시 플러스' 보고서의 일부.
▲동아미디어그룹의 '레거시 플러스' 보고서의 일부.

미디어오늘은 총 156페이지인 동아미디어그룹의 ‘레거시 플러스’ 보고서를 살펴봤다. 보고서는 크게 △레거시 플러스의 의미 △히어로 콘텐츠 △히어로 크리에이터 △디지털 브랜딩 등의 목차로 나뉜다. 

보고서는 서문에서 “기쁜 마음으로만 100주년을 축하하기엔 직면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신문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의 설 자리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 이름인 레거시 플러스에 대해서는 “물려받은 유산이 진화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언론사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밝혔다.

보고서가 지켜야 할 ‘레거시’로 뽑은 것은 불편부당, 시시비비 정신과 콘텐츠 역량이다. 전통적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자며 동아일보는 일제 치하에서 4차례 정간되고 폐간되면서도 보도를 이어갔다고 자부했다.

동아미디어그룹에 더해져야 할 점으로는 △공급자 중심의 제작 관행 △콘텐츠 포장과 유통의 미흡함 △겸양을 미덕으로 여기는 조직문화 등을 꼽았다.

모든 뉴스 다 챙길 필욘 없어… 선택과 집중 필요

보고서 핵심인 ‘히어로 콘텐츠’ 부분을 살펴보면, 뉴스룸 취재 인력의 20~30%를 상시적으로 ‘히어로 콘텐츠’ 생산에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히어로 콘텐츠란 광범위하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대형 콘텐츠다. 특히 유튜브 채널의 경우 미디어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파워풀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모든 뉴스를 빠짐없이 챙기고 다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은 히어로 콘텐츠 예시로 2019년 8월20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특혜 의혹 기사(“고교 때 2주 인턴 조국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를 꼽았다. 조 전 장관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2주 인턴을 하고 병리학 논문 1저자가 됐다는 내용으로 이 보도는 이달의 기자상(2019년 8월), 관훈언론상,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보고서는 “조 후보자 검증 특종은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레거시 미디어의 가치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JTBC, TV조선, 한겨레의 연이은 특종이나 서울신문의 ‘간병 살인’ 연속 보도 등을 사례로 들며 자사 언론의 부진을 아쉬워했다. 

보고서는 한겨레의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기사를 예로 들면서 히어로 콘텐츠에는 시간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겨레는 이 기사에 대해 사전 취재부터 보도까지 무려 8개월이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동아일보에서 일을 더 잘하는 12가지 방법’ 같은 매뉴얼도 눈에 띈다. △“이 기사 왜빠뜨렸어?”는 우리의 질문이 아니다 △구체적 지시는 좋은 기사의 출발점 △주저앉아 받아친다고 다 기사가 되진 않는다 등의 내용이다. 

▲레거시 플러스 보고서의 일부.
▲레거시 플러스 보고서의 일부.

‘점잖은 동아 그룹 구성원’, “더 뻔뻔해져야”

또 다른 핵심 목차는 ‘히어로 크리에이터’다. 보고서는 “동아 뉴스룸 구성원은 그동안 점잖고 인간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제는 더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브랜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자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고서에 인용된 한 경영간부는 “동아미디어그룹 기자들은 자신을 더 과감하게 드러내고 뻔뻔스러워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서는 회사 역할은 도전을 장려하면서 판을 깔아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저 사람이 있어서 동아일보 혹은 채널A를 본다”는 스타가 몇 명만이라도 탄생한다면 이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동아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재상 재정립 캠페인을 강조했다. “지금 동아에 필요한 인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를 만들 조직 순응적 기자가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 미래형 저널리스트”라며 “한 세기 전 ‘스타트업’ 동아일보를 만들었던 인촌 선생과 선배들의 청년 정신과 도전 정신을 2020년 버전으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히어로 크리에이터에 관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로 전문기자 육성을 꼽았다. 데스크가 되기 전인 10~15년차 기자들을 대상으로 예비 전문기자 코스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전문기자 육성 과정에서 걸림돌로 “누구는 힘든 일을 하고 누구는 좋아하는 것만 하느냐”는 내부 목소리가 꼽혔다. 보고서는 전문기자가 육성되려면 전문기자가 ‘편한 자리’가 아니라 ‘필요한 자리’로 인식돼야 한다고 했다.

▲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보고서는 디지털 브랜딩 개선을 위해 ‘D-light 앨리’라는 조직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동아’와 ‘즐거운’(Delight), 실리콘밸리보다 작은 ‘앨리’(골목)를 합친 말이다. 이 조직은 신문과 방송 공통의 디지털 뉴스 실험실로서 다양하고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기존 뉴스와 차별화한 형식(UX)과 내용(콘텐츠)으로 새 뉴스 소비자층과 동아의 팬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보고서는 “데일리 업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뉴스룸 내부 디지털 조직과 달리 중장기적 호흡으로 동아미디어그룹이 지향할 디지털 콘텐츠 미래를 탐색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보고서는 조직 문화 변화를 위해 ‘밀레니얼 스쿼드’를 개설할 것을 제안했다. 2019년 11월 기준 동아일보 편집국에 1990년 이후 출생자는 15.8%였다. 보도본부의 경우 무려 29.9%에 달했다.

보고서는 “현재 시스템에 덜 익숙한 1990년생 이후 출생자들이 뉴스룸의 ‘민낯’을 가감 없이 전달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밀레니얼 스쿼드가 한 달에 최소 반나절 동안은 업무에서 제외되고 자체 모임을 갖도록 제안했다. 밀레니얼 스쿼드는 밀레니얼 세대 직원으로만 구성된 KT엠하우스의 비전 TF에서 착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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