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5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고 편들던 신문들이 사상 초유의 범민주계 정당의 압승 결과에 “집권여당에 언제든 민심의 저항을 부른다” “국정운영이 잘했다는 평가가 아니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심지어 조국 사태 관련자를 당선시킨 유권자들를 나무라는 신문도 있었다.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이 썩고 고이지 않도록 견제하자는 말은 맞지만 누가 그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과 설득력, 공감은 다르다. 한쪽을 편들어 주장했던 자신들의 주장이 옳았는지 되돌아보지도 않고 최소한의 반성도 없이 집권세력에 하는 경고가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중앙일보는 17일자 사설 ‘초유의 거여(巨與),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갈 때다’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충격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총선 결과”라며 “보수 야당의 자멸과 함께 코로나 사태가 선거 이슈를 삼켰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신문은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권 심판 기류가 강했지만 국난 극복 프레임이 먹히면서 야당 실책이 부각됐다는 것”이라며 “국가 위기 상황이 현 정부의 실책을 덮어버렸다는 주장엔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을 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을 두고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 경직되게 추진된 게 사실”이라며 청와대 독주가 계속되면서 코드 인사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국민이 느끼는 체감지수와 청와대 인식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며 “청와대는 비판이나 쓴소리를 ‘정권 흔들기용 발목 잡기’로 규정하고 귀를 닫았으며, 국정 곳곳에 경고등이 들어왔던 건 소통의 부재와 일방통행으로 치달은 결과”라고 했다.

이 신문은 “무소불위 독주가 가능해진 지금 문 정부와 여당은 진짜 국정 운영 능력의 시험대에 올랐다”며 “이번 승리를 과거식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고 다수의 힘을 내세워 과시하려 한다면 언제든지 민심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04년 과반의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이 이후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동작구 현충원에 방문해 호국영령들과 故김대중 대통령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동작구 현충원에 방문해 호국영령들과 故김대중 대통령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중앙일보 2020년 4월17일자 사설
▲중앙일보 2020년 4월17일자 사설

 

그러나 정작 중앙일보가 이날 1면 머리기사 ‘코로나 속 국가의 재발견, 그게 수퍼여당 만들었다’로 배치한 박원호 서울대 교수가 쓴 기고문을 보면 사설의 분석과 상이하다. 박 교수는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지 않았다면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을 것인가”라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야당은 이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흡인하더라도 과반이 될까 말까 한 선거에서 이들을 충분히 끌어올 비전도, 신뢰감도 제공하지 못했다”며 “이는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흐름의 연장선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나 선거전략 문제가 아닌 야당 자체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야당은 정권 심판을 시종일관 외쳤다. 이 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기고인 1면 머리기사와 사설은 서로 앞뒤가 안맞다.

석간 문화일보도 1면 머리기사 ‘“여압승 국정 긍정평가로 해석 안돼… 독주땐 민의 왜곡”’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거대 의석만 믿고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은 총선 민심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사태에서 여권에 힘을 실어주고, 반대만 해온 야당을 민심이 심판을 한 것이지,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을 잘했다는 평가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그 근거로 의석수는 180대 104이지만, 지역구 선거득표율이 49.9%와 41.5%로 8.4%포인트 차이에 그친다고 썼다. 수십년간 지역구별 1석 선출을 해온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의미와 특성은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득표수가 별차이 안난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날짜 1면 머리기사 ‘진보 190 vs 110 보수’에서 “이번 압승이 여권에 반드시 유리한 상황만은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정책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 책임을 정부 여당이 고스란히 떠맡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사설 ‘국가 모든 권력을 쥐게 된 정권, 스스로 견제하고 중심 잡아야’에서도 “무한 권력을 가진 정권은 이제 전례없던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다른 사설 ‘선거 공작, 조국 비리 피고인을 당선시킨 유권자의 선택’에서는 유권자를 비난했다. 황운하 당선자(전 울산경찰청장)가 ‘울산시장 선거공작의 핵심 피고인’이며, 한병도 당선자(전 청와대 정무수석)가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내 경선자 매수혐의자’, 최강욱 비례당선자도 ‘조국 전 장관 아들 비리 연루자’라는 점을 들었다. 이 신문은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유권자를 비난했다.

▲문화일보 2020년 4월17일자 1면
▲문화일보 2020년 4월17일자 1면
▲조선일보 2020년 4월17일자 사설
▲조선일보 2020년 4월17일자 사설

 

하지만 이들은 선거 전까지 이번 총선으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야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놓고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라는 거대의석을 얻으니 이젠 여당에 우려와 경고를 하는 것이 공정하거나 정확한 주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10일자 사설에서 “이번 4·15 총선은 4년마다 치러지는 그런 선거가 아니다. 무능한 것도 모자라 불법까지 저지르며 폭주하는 무도한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썼다.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고문까지 지낸 김대중 전 고문은 총선 하루전인 지난 14일 이번 총선이 현 정부에 엘로우 카드를 줘야 하는 선거라고 썼다. 심지어 김 전 고문은 당장 내일 선거에서 이기면 안하무인, 기고만장 문 정권 난폭운전을 견디기 힘들다며 "지난 3년이 하루하루 실망과 놀라움과 한탄의 연속이었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들에게 엄중한 옐로카드 한 장 주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짜(14일)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이번 총선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경제 체질을 바로잡아 경제 기조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현 정부) 3년여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험과 친노조·탈원전 노선이 부른 부작용이 경제에 깊은 주름을 드리웠다"고 썼다. 경제문제를 들어 유권자에게 정권을 심판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날 문화일보도 1면 머리기사에서 “진보 정권의 공정성 시비를 불러온 조국 사태에 대한 평가, 권력 개입 의혹을 받는 대형 사건들에 대한 주권자의 ‘회고적 평가’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의 요구와 달리 유권자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유권자를 탓하고 다수의석을 가진 여당을 향해 경고하거나 벼를 게 아니라 자신들의 보도하고 주장했던 내용을 점검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언론에 종사하면서 여론과 민심을 못읽고 낡은 잣대로 편파보도한 자신을 먼저 꾸짖고 반성하지 않으면서 누구를 견제하고 비판하겠다는 것일까.

▲조선일보 2020년 4월14일자 26면 김대중 칼럼
▲조선일보 2020년 4월14일자 26면 김대중 칼럼
▲중앙일보 2020년 4월14일자 사설
▲중앙일보 2020년 4월14일자 사설
▲문화일보 2020년 4월14일자 1면
▲문화일보 2020년 4월14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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