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범순(세명대 명예교수)이 캔버스 위에 언론을 풍자했다. 그의 작품 속 언론은 혼자 바쁜 ‘김밥 꽁다리’나 전문가 행색의 ‘문어’, 누군가에 기생해 정보만 빠는 ‘빨대’ 등으로 표현됐다.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전(‘서술적 존재들’)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장 교수는 1996~2018년 세명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를 역임했다.

14일 오전 전시 초입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의 공통점은 ‘빨대’였다. 장 교수는 “우리 미디어를 보면,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약자들 정보를 빨아먹고 버리는 행태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풍자한 그림이 ‘빨기 연습’, ‘빨리기’, ‘방심’이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의 정보를 빨아먹고 있는 작품 속 주인공이 그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빨대에 꽂혀 정보를 빨리는 듯한 모습이 익살스럽다.

▲ 장범순 세명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전(‘서술적 존재들’)에서 자신의 작품 ‘팩트의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장범순 세명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전(‘서술적 존재들’)에서 자신의 작품 ‘팩트의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전문가들’.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전문가들’. 사진=김도연 기자.

머리가 김밥 꽁다리인 3인방이 마이크를 쥐고 헐레벌떡 뛰고 있는 작품 제목은 ‘정신없이 바쁜 인간들’이다. 그 다음 작품(‘팩트의 사실’)은 바빴던 3인방이 허수아비 앞에서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인데 허수아비 미소는 한없이 인자하다. 장 교수는 “진실을 밝혀야 할 책무는 뒷전으로 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공작까지 기획하는 엉터리 언론을 상징화한 것”이라며 “바쁜 언론이 정작 마주한 것은 그럴 듯한 모습의 허수아비였다는 걸 꼬집고 싶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라는 작품에는 삼색의 문어가 등장한다. 마치 시사 프로그램 전문가들을 보는 듯하다. ‘온갖 문제 전문가들’로 포장돼 방송이라면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 시사 프로그램 패널들을 풍자한 게 아닐까 싶다. 장 교수는 “문어가 빨판을 갖고 있듯 자칭 전문가들도 정보를 빨아오는 능력은 있을 것이다. 자칭 ‘전문가들’은 그걸 여과 없이 방송에서 떠들고 있지 않나. 그 모습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 작가 장범순의 작품 ‘빨리기’.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빨리기’. 사진=김도연 기자.
▲ 장범순 세명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전(‘서술적 존재들’)에서 자신의 작품 ‘팩트의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장범순 세명대 명예교수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전(‘서술적 존재들’)에서 자신의 작품 ‘팩트의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낫 두 개가 만든 ‘프레임’이라는 작품은 언론이 창조한 프레임 위에서 바라보게 되는 현실을 풍자하고 ‘지나가리라’는 작품은 언론의 여론몰이가 무고한 사람까지 다치게 하는 상황을 고발하는 듯했다. 장 교수는 “언론 프레임에 걸리거나 권력자가 횡포를 부리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그림 주인공은 자신의 등을 칼든 이의 생선 써는 ‘도마’로 내어주고, 이 시간이 지나가리라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품은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와 최근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을 떠오르게 하지만 장 교수는 “주인공은 민주주의일 뿐”이라며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 허위 정보, 앞뒤 맥락을 거세한 본말전도 보도 등 우리 언론 문제를 응축해 표현한 것이다. 그릴 때까지는 작가 몫이지만 전시 이후는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세가 있는 일부 관람객은 장 교수 작품에 “언론의 최순실 프레임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분개한다고 하니, 작품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팩트의 사실’.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팩트의 사실’.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프레임’.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프레임’.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행진’.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행진’.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지나가리라’. 사진=김도연 기자.
▲ 작가 장범순의 작품 ‘지나가리라’. 사진=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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