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은 완벽하지 않다. 팩트를 틀리는 것은 다반사이고, 현상에 대한 해석은 춤을 춘다. 저널리즘을 두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팩트 중 일부를 취사 선택하기 때문에 팩트를 은폐하는 것이 곧 저널리즘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자들에게 윤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완벽한 저널리즘은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저널리즘은 윤리를 수반하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널A 기자 사건은 두말할 것 없이 기자의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채널A 기자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씨 대리인을 만나 건넸던 말들은 보통의 기자라면 할 수 없는 언행이다. 어느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 가족의 안위를 언급하며 정보를 달라고 ‘협박’하고, 어느 기자가 편의를 봐줄 수 있다며 ‘회유’를 하나. 저널리즘 행위는 철저히 공익의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채널A 기자가 ‘검사장’과 통화했다는 주장은 검언유착 의혹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게 사실로 밝혀지면 채널A 기자의 개인 일탈 문제로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 지난 4월1일 MBC 뉴스데스크 채널A 기자 관련 보도.
▲ 지난 4월1일 MBC 뉴스데스크 채널A 기자 관련 보도.

미디어오늘이 주목하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채널A의 대응이다. 채널A가 내부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번 사건은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외부 비난에 굴복한 모양새가 아니라 채널A가 뼈를 깎는 듯한 해결 의지를 보여주고 기록으로 남겨 저널리즘의 윤리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푼다면 앞으로 하나의 준거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1980년 워싱턴포스트가 자사 기자인 재닛 쿡(Janet Cooke)의 기사가 날조된 사실을 밝힌 사례에서 빛이 났던 것도 대응 방식이었다. 쿡 기자는 여덟 살 소년 지미가 3대째 헤로인 중독자 가족이라며 그의 삶을 조명하는 기사를 썼지만 지미는 허위의 인물로 밝혀진다. 워싱턴포스트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조사에 착수했다. 객관적 조사를 위해서다. 그리고 신문 4페이지에 걸쳐 조사 결과를 상세히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대응은 자사 기자의 기사를 단순한 ‘거짓말’로 축소하지 않고 매체 전반 시스템을 점검함으로써 언론의 명성을 지켜내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채널A는 내부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처럼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당사자인 기자의 징계 얘기만 흘러나오는 수준이다. 더구나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 행위에 대해 사과의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 것은 내부 자정 능력을 의심케한다.

▲ 1980년 9월28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지미의 세계’(Jimmy's World) 기사.
▲ 1980년 9월28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지미의 세계’(Jimmy's World) 기사.

채널A 사건과 더불어 기자 단톡방 사건에서도 언론의 대응 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단체 채팅방에서 성착취물과 음란물을 올리고 공유했던 언론 종사자 12명은 검찰 수사에서 불기소(1명 약식기소)돼 처벌을 피했지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오늘이 불기소 이유서를 바탕으로 피의자 일부의 소속 매체를 공개한 이유는 해당 매체의 자정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느 매체도 자사 기자의 윤리 문제에 사과를 내놓거나 조사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이대로 쉬쉬하고 있다면 왜 언론은 의례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엔 그렇게 관대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가혹하게 기자들의 윤리 문제를 바로 잡아야 매체의 명성도 회복할 수 있다. 보도윤리강령 같은 지침은 책상 서랍 속 유물이 아니라 현실에서 언제든지 적용 가능한 형태의 것이어야 한다. 실패한 저널리즘은 있을 수 있지만 부도덕한 저널리즘은 있을 수 없다. 조직이 아니라 저널리즘을 지켜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