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독자에 전문적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언론이 지닌 숙명이다. 문제는 기사를 쓰는 기자도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기자는 꼭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평범한 상식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아마추어리즘’이 기자에게는 더 필요할 때가 많다. 즉, 전문적 내용을 쉬운 글로 전달하는 ‘프로’가 기자다.

19년 중앙정부 결산 결과가 발표됐다. 재정 관련 전문용어가 넘쳐난다. 불행히도 많은 기사는 전문적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자극적 표현, 지나친 단순화, 쉬운 비유는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먼저 자극적 표현으로 실패한 사례를 보자. 지난해 적자 폭이나 국가 부채 규모를 설명하며 대부분 언론이 ‘사상 최초’, ‘역대 최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경제 수치나 재정 수치를 전달하면서 사상 최초나 역대 최대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경제 규모와 재정 규모는 매년 커진다. “국가 부채 눈덩이…사상 첫 1700조원 돌파”가 한 언론의 1면 톱기사 제목이다. 그러나 국가 부채는 물론 국가 자산도 매년 사상 최대가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작년 GDP는 처음 190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GDP 1900조원 돌파, 사상 최초’라거나 ‘GDP 1900조원, 역대 최대 규모’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매년 GDP가 커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올해는 사상 최초로 2020년이 되었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년도와 비교하고자 한다면, 절대 액수가 아니라 GDP 대비 규모나 증가율 같은 수치를 사용해야 한다. 

▲ 지난 8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와 사진기사
▲ 지난 8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와 사진기사

 

지나친 단순화로 잘못된 사례를 보자. 많은 언론에서 1인당 부채 규모가 1400만원이라며 1인당 1400만원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1인당 부채 규모가 무엇일까? 재무제표상 부채 1700조원을 5200만 국민 수로 나눈 숫자인가 보다. 1700조원이 어느 정도 큰 규모인지 느낌이 안 오니 국민 수로 나누어 본 것이겠다. 그런데 1인당 부채는 존재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일단 국가 부채라는 개념부터 여러 가지다. 보통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 그리고 공공부문 부채(D3)로 나눠서 관리한다. 그런데 1인당 부채라는 기묘한 개념을 만드는 데 활용한 부채는 재무제표상 부채다. D1, D2, D3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재무제표에만 존재하는 부채다. 재무제표상 부채 1700조원 중 연금충당부채만 약 1000조원에 육박한다. 그런데 연금충당부채는 연금 수입은 기록하지 않고 연금 지출 부분만 부채로 기록하는 항목이다. 즉, 발생주의 개념으로 부채 총액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한 개념이지만, 부채 규모를 관리하는 데는 중요하지 않다. 왜 하필이면 D1, D2, D3가 아닌 재무제표상 부채 수치를 인구로 나눌까? 재무제표상 부채 수치가 제일 크기 때문 아닐까. 

1인당 부채가 의미 없는 개념인 이유를 알아보자. 대한민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정부가 채무자가 된다. 그럼 채권자는 누구일까? 대한민국 정부 국채를 보유한 대한민국 국민이 대부분이다. 외국인 국고채 보유금액은 약 15%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외국인이 보유한 15%도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 순채권 국가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채권 양이 채무 양보다 많다는 뜻이다. 마치 내가 와이프에게 돈 100만원을 빌렸는데 우리가족 1인당 채무가 50만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만큼 이상한 표현이다. 나는 비록 100만원의 채무는 있으나 우리 가족 재정은 건전하다. 특히, 우리 와이프의 채권 추심 능력은 탁월하니 돈을 떼일 염려도 없다.

쉬운 비유도 오히려 현실을 왜곡한다. 많은 언론에서 나라 ‘곳간’이 비었다 또는 ‘거덜’났다고 표현한다. 정부 재정을 곳간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마치 정부가 돈을 많이 벌어서 곳간을 채워 놓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세금을 걷을까? 국민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가뭄이나 흉년에 대비하고자 정부 곳간을 채워 놓고자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다. 재정학의 아버지 머스그레이브는 정부의 역할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 소득의 공정한 분배, 그리고 경제의 안정적 운영이라고 설명했다. 즉, 시장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고자 돈을 돌리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얼마나 공급해야 할까? 경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과열에는 긴축재정을, 불황에는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 곳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펌프가 더 어울린다.  

기자에게 아마추어리즘은 필요한 덕목이다. 적절한 단순화와 쉬운 비유도 필요하다. 그러나 비유가 올바른지는 전문가에 물어보고 확인하자. 전문가는 멘트를 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무장된 ‘프로 질문러’야 하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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