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독일이 공영방송 수신료를 인상했다. 독일은 지난 3월 12일 열린 주총리 회의(Ministerpräsidentenkonferenz)에서 공영방송 TV수신료를 기존 17.5유로에서 18.36유로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연방정부 방송위원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말루 드레이어(Malu Dreyer) 라인란트-팔츠 주총리는 “지난 8년 동안 수신료가 인상되지 않았다”면서 “주정부가 공영방송에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있고, 디지털화 부문에서도 큰 도전에 직면해있다”고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결정된 수신료는 추가 승인 절차를 거쳐 2021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공영방송 수신료 담론이 중요한 기로에 섰다. 공영방송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와 뉴스에 대한 수요가 높다.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의 가치를 증명하고, 수신료를 정당화할 좋은 기회다. 

독일 공영방송은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중이다. 코로나 국면에서 뉴스와 코로나 특집 방송 시청률이 이를 증명한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저녁 8시 뉴스 타게스샤우(tagesschau)는 요즘 시청률 1위를 도맡고 있다. 4월 5일자 뉴스는 1100만 명 이상 시청, 시청률이 30.5%에 달했다. 3월 25일에 방송한 코로나 특집 방송 ‘ARD Extra:Die Corona Lage’ 시청률은 20.4%로 집계됐다. 제2공영방송 ZDF의 3월 12일자 특별 방송 ‘ZDF Spezial’ 시청률도 17.1%였다. 

▲4월9일자 타게스샤우의 보도화면 갈무리.
▲4월9일자 타게스샤우의 보도화면 갈무리.
▲북독일방송의 코로나 특집 팟캐스트.
▲북독일방송의 코로나 특집 팟캐스트.

지역 공영방송인 북독일방송(NDR)이 기획한 팟캐스트도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북독일방송은 2월 말부터 베를린샤리테병원의 바이러스 학자인 크리스티안 드로스텐과 매일 30분-40분 정도 질의응답을 나누는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다. 2월 26일 1회를 공개했는데, 독일 연방 보건장관인 옌스 슈판이 공식적으로 독일 내 전염병 확산을 선언한 날이다. 그만큼 발 빠른 기획이었다. 이 팟캐스트는 전국적으로 권위를 가진 전문가와의 질의응답을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영방송은 셧다운 된 문화기관과 교육기관의 대안으로도 주목받는다. 독일에서도 지금 학교 개학이 미뤄지고 있고, 개학 이후에도 온라인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중이다. 한국 교육방송 콘텐츠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그동안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목별 교육방송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교육방송 확대에 나섰다. 

공영방송은 문을 닫은 공공 문화예술기관을 대체하기도 한다. 중부독일방송은 지난 3월 말 행사가 취소된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 일정 일부분을 방송으로 소화했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방송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관한 방송을 좀 더 확대할 예정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공영방송의 뉴스, 정보, 교양 프로그램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위한 수신료 납부는 합당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오히려 수신료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보니 공영방송에게 필요한 건 뉴스·정보·교양 프로그램이며, 시민들의 수신료가 쓰여야 하는 영역은 이런 영역이지 예능이나 스포츠 부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간 예능·드라마·스포츠 등 부문에 분할되었던 수신료는 없애거나 다른 부문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각 지역 공영방송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수신료 17.5유로 중 영화 및 드라마 제작에 약 1.15유로, 스포츠 부문에 약 0.82유로, 예능 부문에 0.69유로 정도가 할당된다. 나머지는 뉴스, 정보 및 교양 프로그램, 교육방송, 그 외 행정 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두이스부르크-에센대학교 경제학자인 토르스텐 게르포트는 FAZ 기고문을 통해 “예능과 스포츠 프로그램은 민간 사업자와 경쟁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더 나은 서비스가 나올 수 있으며, 구독이나 광고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서 “넷플릭스의 성공은 소비자들이 훌륭한 서비스에 돈을 지불 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라도 오락 콘텐츠는 시장에 나와 경쟁하고, 수신료는 뉴스와 정보·교양·교육 프로그램에만 쓰라는 이야기다. 

코로나19를 다루는 독일 공영방송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도 물론 있다. 특히 그간 독일 연방정부의 안일했던 인식을 지적하지 않고, 코로나 관련 정부 캠페인과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도 “코로나가 독일로 넘어올 위험성은 적다“며 잘못된 판단을 했다. 코로나가 독일과 유럽에 확산하기까지 한 달 이상 걸렸지만 독일 정부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은 이를 전혀 지적하지 않고 정부 캠페인을 같이 해시태그 해가며 알리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독일에선 이처럼 코로나19 위기를 다루는 공영방송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오가고 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자연스럽게 수신료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독일 공영방송이 무사히 수신료를 인상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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