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20대가 오지 않을 줄 알았어요. 지옥이 안 끝날 줄 알았어요.” CBS의 뉴미디어 브랜드 ‘씨리얼’의 콘텐츠 ‘왕따였던 어른들’ 시리즈의 한 대목이다. 왕따였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고통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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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은 인터뷰의 생명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대상에게 온갖 질문을 하며 어떻게든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좋은 인터뷰다. 반면 CBS 씨리얼은 때때로 침묵을 지킨다. ‘씨리얼’의 김지수 팀장과 신혜림 PD를 지난달 30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났다. 

▲ '왕따였던 어른들' 콘텐츠 갈무리.
▲ '왕따였던 어른들' 콘텐츠 갈무리.

신혜림 PD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한다. 덜 주목받는 사람들을 보여주려 한다. 전달에 있어 듣는 콘텐츠와 설명하는 콘텐츠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자살 유가족’ ‘자해하는 청소년’ ‘왕따였던 어른들’이 대표적인 듣는 콘텐츠다. 그는 “우리는 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은 가만히 듣기만 해도 얘기를 토해내신다. 함께 모여 얘기하면서 치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씨리얼’의 듣는 모습에 호감을 느껴 인터뷰를 자원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혜림 PD는 “‘자살 유가족편’은 생각보다 섭외가 쉬웠다. 이 분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거다. 누구나 유튜브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 부분을 파고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판이 깔려야 용기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듣기만 해서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해설’을 한다. 지난 정부 때 최순실 게이트를 쉽게 해설해 주목을 받았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상으로 2019년 방통위 상을 받기도 했다.  

▲ '씨리얼' 김지수 팀장과 신혜림 PD. 사진=금준경 기자.
▲ '씨리얼' 김지수 팀장과 신혜림 PD. 사진=금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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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씨리얼.

찰흙으로 제주도를 표현한 4·3 사건 해설 영상은 이슈를 ‘정리’만 하지도, 학살 비극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다. 클라이막스 시점에 나온 내레이션의 마무리 멘트는 “70년 전 제주에서 헬조선을 청산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맘이 왜 낯설지 않은걸까요”였다. 이때 자막으로 당시 제주자치를 이끈 청년들의 강령을 띄운다.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 등이다.

“해설 콘텐츠여도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념관에서 처음 그 강령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지금 우리 시대의 요구와 매우 비슷했다.” 신혜림 PD의 말이다. 그는 “‘기후변화’ 콘텐츠는 제작자가 화가 나 있다고 느낄 거다. 정보만 전달하기보다는 우리의 가치관과 지향점이 공유되는 콘텐츠들이 주목을 받은 거 같다. 최순실 게이트 때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정말 분노하면서 제작했다”고 했다.

‘씨리얼’은 유튜브 콘텐츠를 유튜브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해 ‘씨리얼’이 진행한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어 주목을 받았다. 학창시절 왕따 경험이 있는 어른들의 경험을 모았다. 402명이 참여했고,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책을 출판하고 토크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 제주 4.3 요약정리 영상 갈무리.
▲ 제주 4.3 요약정리 영상 갈무리.

김지수 팀장은 “독자 관여로 만든 콘텐츠”라고 평가했다. “디지털로 콘텐츠를 송고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저변이 확대됐다. 콘텐츠 외적인 걸 도모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상 깊은 독자의 반응을 묻자 ‘변화’를 이끌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혜림 PD는 ‘기후 변화’ 영상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거나 채식을 하게 됐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리 브랜드가 인지도가 크게 높지는 않지만 콘텐츠 하나하나가 주는 영향에 대해 들으며 보람을 느낀다.”

‘씨리얼’은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정체성’을 우선한다. 브랜디드 콘텐츠는 광고 효과를 내는 콘텐츠를 말한다. 김지수 팀장은 “‘브랜디드’ 표현이 우리에게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채널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함께 해주는 협업 또는 제작지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먹고사니즘’이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치중해선 ‘씨리얼’만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 스타일대로 한다. ‘니즈’에 따라 기획하고 주체성을 갖고 제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분들과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든다. 이런 경우가 아니면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후변화’ 콘텐츠는 그린피스의 브랜디드 콘텐츠였다. 신혜림 PD는 “언젠가 우리가 제작하고자 하는 콘텐츠였다. 브랜디드 콘텐츠 제안으로 조금 더 빨리 제작하게 된 셈”이라고 했다.

언론사 유튜브 채널이 ‘침체기’라는 평가가 있다. 김지수 팀장은 “영상만 갖고는 생존할 수 없는 때가 올 거다. 그때 남는 것은 브랜드 정체성이다. 유튜브가 사라져도 이 채널이 무엇을 전달하는 채널인지, 어떤 정서를 전달하는 채널인지는 남는다. 그게 알맹이라고 생각한다. 알맹이를 남기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혜림 PD는 “중앙일보 ‘듣똑라’가 계속 버티다가 팟캐스트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았고 컬러가 명확해지니 유튜브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콘텐츠를 계속 제작하면서 내실을 다져가고 ‘핏’을 맞춰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그래야 유튜브 다음 시대가 오면 거기에 맞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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