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 기수의 장례가 치러진 지 한 달째인 8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가 새로 출범했다. 마사회와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가 부산경남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안에 합의했지만, 정부가 노조설립과 감사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등 안팎 개혁 시도는 지지부진하다. 조교사가 최근 목숨을 끊는 등 죽음도 이어진다. 이들은 “노동자와 시민이 나서 마사회를 내부통제와 외부감시가 가능한 조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범을 알렸다. 김혜진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문중원 기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며 마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조직인지 알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화상경마장으로 불법 해외도박단을 유치하고 청소년 접근을 막지 못하는 온라인경마 합법화를 시도하는 등 매출을 위해 해선 안 될 일을 하는 마사회, 자정 장치 없이 권한만 막대한 구조를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문중원 기수의 어머니. 김 이사장이 8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문중원 기수의 어머니. 김 이사장이 8일 한국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와 대책위는 지난달 7일 △부산·경남 경마 시스템과 업무실태에 관한 연구용역 △경쟁성 완화와 기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실질적인 개선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마사회 비리는 진행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기수들이 지난 1월 노조 설립을 신고한 지 3달째 필증을 교부하지 않고 있다. 문 기수의 죽음을 계기로 기수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과 마사회 내부통제를 위해 경마기수노조를 띄우고 설립을 신고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노동부는 비공식으로 ‘특정사업장 전속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마사회 측은 노조총회가 열리는 날 기수협회 건물에 출입하는 공공운수노조 간부를 막아서고 참석 기수를 촬영해 신원을 파악했다.

조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는 방송연기자노조와 대리기사노조를 노조로 인정하며 사업장 전속성과 지속성이 노동자를 판단하는 주요 표지가 아니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이들 판례를 무시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건 위헌이자 위법”이라고 했다.

▲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는 8일 감사원장 면담요청서와 마사회 고발장을 우편을 통해 접수시켰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는 8일 감사원장 면담요청서와 마사회 고발장을 우편을 통해 접수시켰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의 기수 촬영에 대해선 “사용자가 노조 설립과 조직, 운영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다. 노조 총회참석이나 가입을 방해하는 행위가 대표격”라며 “노조가 스스로 밝히지 않은 명단을 파악하려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행위이자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도 해당한다”고 했다.

마사회 불법‧부패행위 공익감사도 청구한 지 2달 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책위는 지난 2월 △사행산업통합감동위원회에 화상경마비율 관련 감사자료 허위 제출 △외국인 AI 도박단 특혜제공과 화상경마장 비리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작 △부적절한 감사옴부즈만과 홍보 자문료 사용 등과 관련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속하게 공익감사가 진행되도록 감사원장에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출범 기자회견문에서 “문중원 기수가 죽음으로 고발한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다. 말관리사를 중층 고용구조 아래에 두고, 기수는 특수고용으로 만들어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경마관계자들의 생사여탈권인 면허와 등록, 마사대부 등 권한을 불투명 운영하는 구조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조교사의 또다른 죽음에 대해서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발뺌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싸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활동 목표로 △마사회법 개정을 통한 구조 개혁 △온라인경마 방지 △비리 책임자 처벌 △관리감독 제도 설립 △경마기수와 말관리사 노조의 내부 개혁 등을 제시했다.

▲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는 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책위 출범 및 경마기수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마사회 적폐청산 대책위는 8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책위 출범 및 경마기수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스스로 삶을 등지는 죽음을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치부해 외면한다면 앞으로 죽음의 행렬은 멈출 수 없음을 마사회 관계자들은 알아야 한다”며 “마사회 적폐와 제대로 싸우기로 결심하는 적폐청산 대책위와 함께 우리 유가족도 힘찬 응원과 적극적인 참여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우편으로 최재형 감사원장 면담 요청서와 마사회에 대한 노조법·개보법 위반 등 검찰 고발장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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