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오늘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3월29일자 “정치 심의 바꾸겠다던 민주당 어디로 갔나” 로 지난 20대 총선 이후 민주당의 언론과 미디어 관련 공약 이행을 점검한 기사다. 22개의 공약 이행을 살펴본 결과, 해직 언론인 복직, 종편 특혜 철회 등 일부 이행된 공약은 있었지만 완전히 이행된 공약은 하나도 없었다. 

[ 관련기사 : 정치 심의 바꾸겠다던 민주당 어디로 갔나 ]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정책 선거보다는 정권을 평가하는 정권 선거가 아닌 적은 없었다. 그러나 정권을 심판한다 해서 약속한 정책과 법안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는지 물어야 한다. 각 당의 정책 공약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어다. 공영방송 정상화, 미디어혁신기구 설치, 방송통신 비정규직 노동인권 보장 등의 공약은 각 정당이 수행해야할 대상, 즉 명사를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독립을 위한, 미디어 콘텐츠 진흥을 위한 등 화려한 형용사가 붙는다. 

▲ 4·15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4월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의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후보자 공보물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4·15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4월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의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후보자 공보물을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금 떨어져 보면 이러한 공약들은 불완전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민주당은 미디어 콘텐츠 진흥을 위한 전담부처 설치를…”으로 끝난다. 요컨대 각 공약을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것인지의 동사가 빠진 문장이다. 이 때의 동사란 각 정당과 의원들이 해당 공약을 수행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이자 실행계획을 말한다.

공약을 어떻게 수행할지가 누락된 선언은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 정당이 각종 직능단체, 협회, 노동조합 등과 맺는 정책 협약이 대표적이다. 정당과 단체는 서로가 원하는 대상, 즉 목적어만을 공유한다. 양측은 이 목적어를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계획과 행동을 서로 다르게 꿈꾼다. 그럼에도 협약은 정당에게는 단체가 가진 조직력에 대한 기대를, 단체에게는 정당과 일말의 이행 명분이라도 만들었다는 실적을 남긴다. 설령 십수년 동안 반복되어 온 정책 공약이어도 무방하다. 정당과 단체가 필요한 것은 자신의 구성원들에게 전해줄 협약서의 서명과 사진, 즉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당이 공약을 제시하며 그 구체적인 이행과 활동 계획이라는 동사를 쓰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 동사는 국회 안팎에서 정당의 행동을 가능케 할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의 제약을 말한다. “민주당은 미디어 콘텐츠 진흥을 위한 전담부서를 관련 상임위 내 협의체 구성을 통해 설치한다”라는 완성된 문장은 교섭단체의 요건, 법안 처리 절차 등 정당과 위원들의 구체적인 행위 규칙이 동사로 포함되어야 한다. 

▲ 21대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들의 선거공보물. 사진=이우림 기자
▲ 21대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들의 선거공보물. 사진=이우림 기자

결국 이러한 동사의 확정은 철저히 정치적인 문제다. 다시 각 정당의 총선 공약집을 보자. 이들의 공약 중 자신들의 행동을 좌우할 동사에 대한 약속, 즉 선거법 등에 대한 약속은 부실하기 그지 없다. 통합당은 다시 선거법을 원상복귀시키려 ‘준연동형 선거제도 폐기’를 적었고. 민주당은 아예 선거법 관련 공약이 없다. 단지 정의당만이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절박한 요구안을 담았을 뿐이다. 

매번 선거에서 공약이 공약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당이 유권자를 향해 던지는 무수한 공약 중 자신들의 행동을 바꿀 약속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며칠 남지 않은 총선 기간 동안, 그리고 총선이 지나도 시민들이 요구해야 할 오직 하나의 공약은 이것이다. 선거법을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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