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병 박수택 정의당 후보가 사퇴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보 등록 기탁금까지 낸 시점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심을 간직하고 나서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공직을 받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며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토양은 돌바닥과 같고 정치 상황은 가시덤불투성이”라고 남겼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선거사무실에서 박 전 후보를 만났다. 왜 정치를 그만뒀는지 물었다. 그는 “소수정당의 원외 지역위원장으로서 한계를 느꼈다”는 말로 요약했다. 자신의 이상과 진심만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돌아보기도 했다. 

2년 전, 정의당 고양시장 후보로 발 들여 

2018년 4월,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 고양시장 후보자로 나섰다. 두 달 전 33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SBS에서 정년퇴직한 상황이었다. 환경전문기자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기사를 멈추지 않다가 논설위원실로 쫓겨났던 그가 현장에 다시 와보니 시민들은 미세먼지로 힘들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과 환경부·교육청 등에 정책을 제안하고 있었다. 

▲ 2년전인 2018년 4월,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수택 후보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그는 미세먼지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정치인에게 애원하는 학부모들 눈물 때문에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2년전인 2018년 4월,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수택 후보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그는 미세먼지 대책을 만들어달라고 정치인에게 애원하는 학부모들 눈물 때문에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고양시청에 교육청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하기로 했고 이를 촬영하려 하자 한 여당 도의원이 이를 막았다. 정치인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학부모들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정치인에게 빌어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같이 분노했고, 이를 본 정의당에서 지방선거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박 전 후보는 ‘당시 그 엄마들의 눈물’이 출마 이유라고 했다. 

누구나 공익과 시대의 사명을 위해 정치에 뛰어든다고 선언한다. 정치인을 불신하는 이유는 권력을 잡는 과정부터 원대했던 목표보단 당선되는 수단을 우선하고,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해서다. 지방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다. 집권 만 1년도 안 된 2년차 시점에서 선거는 여당에 유리했다. 그래도 정당과 후보가 난립했던 가운데 양당에 이어 3위(8.36%)를 차지했다.  

진심만으로 뚫지 못한 현실의 벽

지방선거가 박 전 후보 개인에겐 “거액의 돈이 날아간” 사건이다. 선거 끝나고 그는 정의당 중앙당 생태에너지본부 부본부장, 고양병 지역위원장 등을 맡았다. 

지역위원장을 맡았으니 그는 ‘지역구 관리’를 해야 했다. 박 전 후보는 “지역구 관리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매우 부지런해야 한다”며 “지역의 단체·모임을 다 꿰고 있어야 하고 그분들이 어디 놀러 가면 새벽같이 나가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도 해야 한다. 민원을 듣고 해결해준다는 제스쳐라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상정 의원이 ‘새만 보러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 (그의 관심사는 야생조류 보호와 관찰이다) 내게 던진 농반진반의 채근”이라며 “일상에서의 그런 득표 활동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고, 유권자들이 현명해 그런 표피적인 모습에 좌우되지 않고 진정 국가와 사회·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거라 믿었다”고 했다. 또한 “기자 출신 정치인 중 개차반인 사람들 많지 않냐”며 “나라고 못 할 거 뭐 있나 그런 자만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회고처럼 “순진한 생각”이었다.

옳은 말을 한다고 들어주지 않았다. 박 전 후보는 “지역에서 환경문제(악취·하천 훼손 등)로 상담하는 분들이 있는데 고민을 듣고 해법을 찾아 법제가 잘못됐다면 공무원들에게 문제제기 했는데 앞에선 웃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기자 일, 정치인의 일 모두 모순을 개혁하자는 건데 소수정당의 원외 지역위원장으로서 드러나지 않는 싸한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했다.  

박수택이 원했던 비례대표 선출방식 

박 전 후보는 환경분야 몫 정의당 비례대표에 출마하려다가 뒤늦게 지역구 후보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정의당의 이번 비례대표 공천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고양병 정의당 총선 후보로 나섰던 박수택 후보 사무실 앞 공보물. 교통과 일자리 공약은 지역구 선거 특성에 맞춰 넣은 공약이고 자신이 원했던 건 '아이들의 미래' 관련 공약으로 환경영향평가 제도 공영화, 기후위기 대응 법제 정비, 학교 환경교육 의무화 등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 고양병 정의당 총선 후보로 나섰던 박수택 후보 사무실 앞 공보물. 교통과 일자리 공약은 지역구 선거 특성에 맞춰 넣은 공약이고 자신이 원했던 건 '아이들의 미래' 관련 공약으로 환경영향평가 제도 공영화, 기후위기 대응 법제 정비, 학교 환경교육 의무화 등이다. 사진=장슬기 기자

 

그는 “흥행을 위해 시민선거인단 비중을 30%로 하니까 영입인사들까지 포함해 선거인단을 외부에서 모아와야 했다”며 “당내에서 일해온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한데 이를 조화롭게 했으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이어 “급하게 모으느라 검증이 제대로 안 돼 물의를 빚는 후보도 나오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비례대표는 직능대표인데 (정의당 비례대표가) 세대 간 대결처럼 변했다. 청년만 유권자는 아니다. 청년·여성·장애인 등 기성정당이 무시한 가치들에 농어촌, 생태환경, 국방안보 등 의제를 10개쯤 잡아서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우선순위를 만든다. 1번이 국방이어도 좋고, 청년이어도 좋다. 만약 6번이 환경이라고 하면 6번에 뛸 사람을 모집해 당원과 시민 투표로 후보를 정하는 거다.” 비례대표나 지역구나 자기조직이 없는 사람은 정치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 박수택 전 정의당 후보 선거사무실에 있는 선거포스터. 개소식없음, 후원금 사절 등을 내걸었지만 지역구 선거에서 더군다나 소수정당 후보는 이런 식의 선거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사진=장슬기 기자
▲ 박수택 전 정의당 후보 선거사무실에 있는 선거포스터. 개소식없음, 후원금 사절 등을 내걸었지만 지역구 선거에서 더군다나 소수정당 후보는 이런 식의 선거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사진=장슬기 기자

 

지역구 후보로 나서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개소식 없음’, ‘후원금 사절’ 등을 선언해놓은 상태였다. 박 전 후보는 “선거는 움직이면 다 돈이었다. 최대한 돈 안 쓰고 효율성 있게 해보려 했지만 예기치 못한 데서 또 구멍이 난다”며 “그러면 ‘초라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고 남들 눈에는 자신감이 없는 후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조언해 줄 전문가는 많았지만 없는 살림에 선거를 같이 뛰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탈당했다. 2년간 비정한 정치 현실을 겪었지만 몸담았던 정의당에는 애정을 드러냈다. 박 전 후보는 “열악한 가운데 당에 똑똑한 인재들이 많다”며 “정의당이 20석을 넘어 보조지원금을 받으면 얼마든지 정책개발을 기가 막히게 할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만약 국회에 갔다면 뭘 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환경영향평가 공영제’를 1호 공약으로 꼽았다. 국토환경은 경제개발의 토대가 된다. 그 개발로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가를 하지만 그 주체가 개발하는 업체다. 박 전 후보는 “기자 시절부터 이 모순을 바로 잡으려고 국회나 환경부에 얘기했는데 들을 때만 공감했다”며 “학생에게 문제 내고 스스로 채점하라고 하는 게 지금의 환경영향평가”라고 지적했다. 필요한 일이지만 지역구 선거에선 표 떨어질 공약이다. 고양시에선 거대 양당이 모두 인천지하철을 일산까지 끌어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자원봉사 하러 간다”고 답했다. 

2009년 3월 박 전 후보는 전남 순천에 강연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순천시 공무원에게 ‘시에서 순천만에 있는 전봇대를 순차적으로 뽑는다’는 말을 들었다. 뉴스거리라고 생각했다. 순천만에 멸종위기 흑두루미가 찾아오는데 전깃줄 등에 걸려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아 시민사회에선 전봇대를 철거하라는 여론이 있었다. ‘4월에 포럼이 있어 전문가들도 다 모이니 그때 뽑는 행사를 열면 다른 기자와 함께 오겠다’고 제안했다. 

박 전 후보는 타사 기자들을 설득해 순천만을 찾았고 다수 언론이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이 결정을 내린 게 노관규 순천시장인데 그는 순차적으로 뽑기로 한 전봇대를 그 해에 모두 뽑았다. 민심을 수렴할 줄 아는 행정이라고 판단했다. 노관규는 한보그룹 정태수 비자금 사건, YS 아들 김현철 비리사건 등을 수사했던 검사 출신이다. 

당시 SBS 보도를 보면 그해 겨울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370마리였다. 전봇대를 철거한 지 11년이 흐른 이번 겨울, 순천만에는 흑두루미 약 5000마리가 순천만을 찾았다. 생태환경과 미래세대를 위한 노 시장의 결단을 높이 사 이번 총선에 출마한 노 시장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순천에 내려갈 예정이다.
 
그는 정치를 “국가·사회·공동체의 진로 방향을 결정하고 내 삶의 질을 좌우하는 모든 절차·과정·행위·행동”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정의에 따르면 시민으로서도 할 일이 많다. 그는 “정당에 속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진심이 아닌 정략·정파적인 의도로 오해하는데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됐으니 진정한 시민정치활동을 하고싶다”며 “쓰레기 함부로 소각하는 것 고발하고, 미세먼지 대책 고민하는 일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 그게 곧 정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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