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같이 살기로 해보자. 일단, 같이 살 집을 알아봐야 한다. 방 2~3개짜리 방을 구할 텐데 방 크기가 같은 집은 한국에서 찾기 어렵다. 혼인으로 만든 3~4인가구가 살만한 집만 즐비하다. 신혼부부가 아닌 이상 친구와 함께 공공주택에 입주하거나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방법은 없다. 누군가 혼자 대출을 받아야 한다. 집주인 역시 부부가 아닌 이상 한 명과 계약하려고 할 것이다. ‘더치페이’를 할 수 없다.

어찌어찌 집을 마련해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이 사는 사람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도 없고, 자동차 보험도 부부로 낼 때보다 비싸며 생명보험 수령인으로 설정하기도 어렵다. 출산·육아휴가나 돌봄휴가를 받을 수 없고, 각종 행정·금융업무시 둘 관계를 입증할 최소한의 근거도 없다. 동거인과 헤어질 때 재산분배 절차나 기준도 없다. 

친구와 같이 사는 건 불법이 아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국가가 허락하는 않는 셈이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혼외 자녀를 철저하게 차별한다. OECD 국가 혼외출산율은 평균 40% 정도지만 한국은 혼외출산율이 2%대다. 임신중단(낙태) 찬반 논의보다 자녀를 쉽게 키울 환경을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 

비혼자들의 빈곤 역시 걱정하는 척만 할뿐 서로 돕고 살 토대는 만들지 않는다. 사망했는데도 발견되지 못한 채 방치되는 노인들이 애초에 서로 같이 살도록 장려할 유인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부의 행정력이 모든 국민에 가닿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법률상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살 권리나 자유가 사실상 없다. 조금만 정부가 생각을 고쳐먹으면 실제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데도 혼인없이 동거하는 이들을 차별한다. 

결혼제도가 반드시 국민에게 유리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때 지원시간이나 본인부담금이 늘어날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제도로서 결혼을 유도하지만 그게 꼭 정부에 유리하지도 않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상 생계비용을 지원한다. 2020년 기준으로 1인가구는 약 52만원, 2인가구는 약 90만원이다. 1인가구 2곳을 지원하면 약 104만원의 재정이 들지만 이 둘이 같이 사는 걸 보장하면 약 14만원을 아낄 수 있다. 순전히 혼인제도만 가족으로 보려는 ‘아집’ 때문에 국가재정을 더 낭비하고 있다. 

▲ 외롭지 않을 권리-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시사IN북 펴냄
▲ 외롭지 않을 권리-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시사IN북 펴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같이 살 사람을 생활 동반자로 인정하는 법이면 된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근무하던 황두영 작가는 최근 펴낸 책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진 의원실에서 준비했던 ‘생활동반자법’의 논의 배경과 효용을 설명했다. 섹스하는 사이만 같이 살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각종 행정·금융·의료제도를 이용할 때 비혼을 고려하는 청년층이나 결혼하지 못하는 동성커플 정도에게 해당하는 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노인층에게 더 호응이 있고, 사실 누구에게나 필요할 제도다.

고독은 여러 사회적 비용을 만든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8년 ‘외로움위원회’를 만들어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보다 더 해롭다며 ‘사회적 전염병’으로 규정해 대응 중이다.
 
정부가 결혼제도를 통한 동거만 고집한다고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할 수 있지도 않다. 

‘동성동본 혼인금지’는 199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고 2005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사라졌다. 이는 일관성있게 유지한 법도 아니다. 정부는 1978년, 1986년, 1996년 세 차례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어 가까운 친척이 아닌 동성동본 혼인을 허가했다. 정부도 굳이 금지할 이유가 없는데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황 작가는 지적했다. 게다가 2020년 2월 현재 8촌 이내 혼인을 금지한 현행 민법도 혼인할 권리를 제약한다는 위헌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그 외에도 이혼한 여성은 6개월간 재혼할 수 없었던 규정, 미국의 타 인종간 혼인금지 규정, 전 세계에서 논쟁 중인 동성혼, 이 책이 제안한 생활동반자법 등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하고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싶지 않고자 한다. 선진국일수록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한다. 이런 상식적인 법을 그저 ‘설명하기 위해’ 황 작가는 지난해 여름 국회에서 나와 책을 썼다. 

▲ 자칫 생활동반자법이 비혼 청년, 동성애 커플에게만 해당하는 법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저자는 그외 계층, 노인층에게서 호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사진=pixabay
▲ 자칫 생활동반자법이 비혼 청년, 동성애 커플에게만 해당하는 법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저자는 그외 계층, 노인층에게서 호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사진=pixabay

 

책에는 그의 국회 경험과 인터뷰를 녹여 흥미로운 부분들도 많다.

“많은 남성이 정서적 안정감을 원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불 꺼진 방이 너무 쓸쓸’해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사물인터넷 기술이 발전해 귀가 전에 전등, 에어컨, 그리고 보일러까지 미리 켜놓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결혼보다 스마트 전구가 싸다. 각자의 공간과 거리를 두고 서로를 챙길 수 있던 연애 시절에 비해 자신은 물론 자신의 부모까지 모든 순간 감정적으로 챙겨주길 바라는 남편의 바람 앞에서 여성은 당혹스러워 한다.”(40쪽) 

“우리 사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어 모욕적이다. 그저 살고 있을 뿐인데도 뒤통수를 때린다. 일할 사람을 구하면서 구원자처럼 생색내는 면접관, 공짜로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대단한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구는 사장, 어려운 청년을 위해 내놓는 정책을 쏙쏙 뽑아먹는 금수저, 취업이나 결혼 사정을 물으며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비웃는 사람, 세월호 유족이 수십 일 단식해도 꿈쩍하지 않더니 며칠 단식하고 나라 구한 척 우쭐대는 야당 당대표, 늙은 노동자의 투쟁 기사에 나라 경제 말아먹는 사람이라고 댓글 다는 사람을 보면 ‘인간종’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284쪽)

한국 사회는 적당히 사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정상’을 정해놓고 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채찍질한다. 생활동반자법이 보장하려는 건 현재 시민들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다.

생활동반자법 발의조차 못한 이유는? 

‘외롭지 않을 권리’는 발의조차 못한 법에 대한 얘기다. 왜 이 법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제도가 필요하다는 당위뿐 아니라 곧바로 적용 가능하다는 현실성까지 설득한다. 그럼에도 왜 진 의원은 이 법을 발의하지 못했을까. 

황두영 작가는 3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9대 국회 때 법안 관련 토론회를 했는데 여론형성은 안 된 채 비판이 너무 거셌다”며 “20대 국회에서 발의해보려 타이밍을 봤는데 (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진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면서 점점 정부의 공식입장처럼 비쳐 폐쇄적인 정치논리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 진 의원의 정치적 공간이 커질수록 법을 발의하기 더 어려워졌다. 

어떤 법안은 쉽게 발의하고 잊히지만 이런 법안은 발의 자체가 논란이다.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의원 10명을 모았지만 동성애 혐오세력 등 비난여론이 거셌다. 2014년 당시 동성애 혐오단체는 진 의원실에 항의전화를 넣자는 운동까지 벌였다. 

황 작가는 “제대로 법안설명도 못했는데 비난만 받고 무산되면 다시 발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에 보류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했다. 10년이 넘었고,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정부가 출범했는데 ‘국보법 폐지’ 운 떼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진 의원은 본인이 약 20년간 남자친구와 동거했다. 생활동반자법을 주장했던 그 조차 20대 총선을 앞두고 혼인신고를 해야 했다. ‘남자친구(남편)의 재산공개를 안 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혼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의 벽이다. 진 의원은 여가부 장관이 돼서 비혼모, 동거가족 등을 만나며 다양한 가족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황 작가는 의원실에서 나와 이 법을 충분히 설명하려 책을 썼다. 그는 “권리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현실적 대안이자 당장 논의해볼만한 얘기”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처음 듣는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책을 읽은 이들이나 동네책방 등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울 은평구 ‘한평책빵’은 이 책을 사면 커피를 주는 이벤트를 하고, 서울 송파구 ‘라운징북스’에선 이 책을 사면 관련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 작가나 출판사와 무관한 자체 행사다.  

황 작가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데 장벽이 조금 더 낮으면 좋겠다”며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국정과제가 되고 국회 법안이 되고 법전 속 조항이 돼야 한다”고 책을 마무리했다. 21대 국회에선 생활동반자법이 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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