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재임 시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푸념한 적 있다. “우리는 산하기관이 거의 없다. 인사 적체를 해소할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인사 적체’. 공무원들은 넘쳐 나는데 승진 자리는 제한돼 있다 보니 벌어지는 문제다. 

2019년 4월 방통위는 조경식 EBS 신임 감사가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행정고시 34기 출신인 그는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방통위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조경식 감사는 임기를 마치기 전 청와대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빈자리가 채워졌다. 4월1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김재영 EBS 신임 감사를 선임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마찬가지로 행정고시 34기 출신인 그는 1991년 정보통신부 행정사무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장, 이용자정책국장,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고 감사 임명 직전 퇴임했다.

EBS 감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KBS 감사를 KBS 이사회가 제청하는 것과 달리 방통위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다. 따라서 EBS 감사 자리는 공무원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  ‘퇴직 공무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김재영 EBS 감사 선임 자료.
▲ 김재영 EBS 감사 선임 자료.

이명박 정부 황부군 전 방통위 국장을 EBS 감사로 임명한 이래로 방통위, 정보통신부 출신 관료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언론노조 EBS지부가 “2000년 공사화 이후 EBS에 임명된 퇴직 관료만도 손가락 꼽기 어려울 정도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물론 이전 정부와 차이는 있다. 이전 정부 때는 ‘감사’ 뿐 아니라 경영진도 방송통신 공무원들의 자리였고, 심지어 방송 업무 경험이 전무한 경우도 있었다. 정보통신부 공무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신용섭씨는 EBS 사장을 지냈다. EBS 부사장의 경우 이명박 정부 때는 이명구 방통위 기획조정실장을, 박근혜 정부 때는 미래창조과학부 조규조 통신정책국장을 선임했다. 조규조 국장은 지상파방송사와 통신사가 대립할 때 통신사에 유리한 입장을 피력한 통신 관료이기도 했다.

물론 방통위가 신중한 검토를 거쳐 ‘최적의 인사’를 뽑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감사로 임명돼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방통위가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출신 학교와 공무원으로서 직책이 나열돼 있을 뿐 그가 공영방송 감사로서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는지는 단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 EBS 사옥 ⓒEBS
▲ EBS 사옥 ⓒEBS

과거 언론노조 EBS지부는 공모를 통해 감사를 뽑는 방식, KBS처럼 이사회에 권한을 넘기는 방식 등을 요구했다.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문재인 정부 방통위 업무 현황 자료를 보면 관련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공영방송 정상화와 개혁을 화두로 제시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개혁의 전담 부처다. 공영방송 개혁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자유롭게 하고 실력 있는 인사를 투명하게 뽑는 데서 시작된다. 이 원칙은 EBS 감사 선임에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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