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사건 72주기를 맞아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4·3특별법을 통해 희생자와 피해자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고 지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주를 방문해 제72회 제주 4·3 추념식에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이 제주를 직접 찾은 것은 취임 이후 2018년 70주기 때 이래 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4·3이 제주의 깊은 슬픔이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제주가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으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 4·3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날,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고, 또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렇게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시작할 때 제주의 아픔은 진정으로 치유되고, 지난 72년, 우리를 괴롭혀왔던 반목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평화를 위해 동백꽃처럼 쓰러져간 제주가 평화를 완성하는 제주로 부활하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폭력과 이념에 희생된 4·3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의 제주를 일궈내신 유가족들과 제주도민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고 위로했다.

이밖에 제주도민들 스스로의 극복의 과정도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4·3이 왜곡되고 외면당하면서도 끊임없이 화해와 치유의 길을 열었다며 지난 2013년 4·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화해를 선언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군과 경찰이 4·3 영령들 앞에 섰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민들과 유가족에 공식 사과하면서 4·3의 명예회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동참할 것을 약속했고, 유가족들과 제주도민들도 화해와 상생의 손을 맞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시에서 열린 제72회 4·3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SBS 생중계 영상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시에서 열린 제72회 4·3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SBS 생중계 영상 갈무리

 

문 대통령은 4·3의 해결이 결코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의 아픔과 공감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라며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치유해 나가는 ‘정의와 화해’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용서와 화해의 토대는 진실이라고도 했다. 그는 “진실은 이념의 적대가 낳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라며 올해 3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16년 만에 ‘추가진상보고서’ 제1권이 나온 점을 들었다. 이 추가보고서엔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과 예비검속, 희생자 유해발굴의 결과와 피해 상황도 마을별로 정리했다. 교육계와 학생들의 피해를 밝히고, 군인·경찰·우익단체의 피해도 정확히 조사했다.

올해 시행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에 대한 기술이 더욱 많아지고 상세해진 점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교과서에 4·3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임을 명시하고, 진압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되었음을 기술했다며 진상규명을 위한 제주도민들의 노력과 함께 화해와 상생의 정신까지 포함하고 있어 참으로 뜻깊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는 이제 외롭지 않다면서 4·3의 진실과 슬픔, 화해와 상생의 노력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져 잊히지 않을 것이며, 4·3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는 미래 세대에게 인권과 생명, 평화와 통합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4‧3 피해자와 유족의 삶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문 대통령은 지난 1년 사이, 피해자(수형자) 가운데 현창용, 김경인, 김순화, 송석진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했지만, 국가는 아직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에 도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조속한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정부가 4‧3희생자와 유족 추가신고사업을 통해 앞으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신고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추가신고의 기회를 드리고,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 지원도 계속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4월부터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 운영되는데, 특별법이 통과되면 국립으로 운영된다. 대통령은 “제주도민들이 마음속 응어리와 멍에를 떨쳐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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