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감염 예방을 위해 집에 머무르라 요청하지만 정작 몸 누일 집이 없는 사람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철거민들의 집회 신고는 받지 않지만 강제철거는 허가합니다. 가장 취약한 수급자는 재난소득 지원에서 배제됩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 재난소득 정책을 발표하는 등 코로나19 피해 지원에 나섰지만 노숙인과 철거민, 시설생활자 등 제도 밖 취약계층은 빗겨가고 있다. 그 사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등 정부의 각종 코로나19 대책은 외려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곤사회연대는 코로나19 방역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긴급 주거권 보장과 제도밖 취약계층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만나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들이 이어진다”며 “철거민과 홈리스에 대한 퇴거 조치는 오히려 코로나19 국면을 이용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작구청은 지난 2월21일 새벽 3시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에 반대해 인근에서 노점과 농성을 이어온 구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행정대집행에 들어갔다. 서울시가 밝힌 동절기‧일춘 전 철거금지 방침과 사전고지 의무를 어긴 조치였다. 대구 동인동 재개발구역에선 지난달 30일 철거민들의 집회 신고가 반려된 채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마스크를 쓴 용역직원들이 지난 2월21일 새벽3시 노량진 구시장 상인들의 노점상·농성장을 강제철거하는 현장. 산=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마스크를 쓴 용역직원들이 지난 2월21일 새벽3시 노량진 구시장 상인들의 노점상·농성장을 강제철거하는 현장. 산=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2일 서울 용산구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2일 서울 용산구 빈곤사회연대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경민 노량진 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팀장은 “용역 600명과 직원 200명이 밀집해 강제철거에 들어가 폭행 피해가 벌어졌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댔지만 오히려 감염 우려를 유발하는 행위였다”고 돌이켰다. 김윤영 국장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강제철거를 방임하는 것은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무너뜨리는 일이자, 개인이 자신을 방어할 공간을 앗아가는 행위”라고 우려했다. 

관계기관들은 방역을 이유로 ‘빈곤 혐오’ 정책을 내놓는 실정이다. 경기 수원의 한 노숙인 자활시설은 지난 2월 말 시설 이용 홈리스들에게 외출 금지를 통보하고, 출근하는 홈리스들은 다시 출입할 수 없도록 해 논란이 됐다. 시설 직원들은 출입 제약을 받지 않았다. 서울역은 공지문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밝히며 역사 안 노숙인들이 앉을 의자를 치우고 공터를 테이프로 막았다. 김 사무국장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시설과 요양병원은 다수가 시설생활자의 외출이나 면회를 금지하는 방침을 세웠다.

김 국장은 “상황이 이런데 정부가 발표한 긴급재난지원금이 기존 복지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 소액 지원에 그쳐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재난수당 정책 마련에 나섰지만, 서울시와 경기도를 비롯한 대다수가 기초생활·실업급여·기초연금 수급자는 지원 대상에서 뺐다. ‘기존 법령 규정상 수급자’라는 이유에서다. 충청남·북도는 소상공인 긴급생활 안정자금 지원 대상에서 노점상을 제외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지원예산이 너무 적다는 점이지만, 지급에서 오히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들을 우선 배제하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공항철도 측은 지난달부터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이유로 서울역 지하 2~3층 의자 사용을 금지했다. 사진=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제공
▲공항철도 측은 지난달부터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이유로 서울역 지하 2~3층 의자 사용을 금지했다. 사진=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제공

언론 보도도 재난 위기 국면에 심화하는 빈곤 혐오를 재생산한다. 지난 2월21일 을지로입구역에서 60대 홈리스가 숨진 채 발견되자 한 온라인 게시판에서 감염 의혹이 제기됐다. 다수 언론이 이를 보도했고,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고인의 감염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데일리는 최근 “‘신종코로나? 감염돼도 그만’ 나눠준 마스크도 안 쓰는 노숙인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홈리스들이 무상 지급받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무신경한 모습을 보인다는 기사를 냈다.

홍수경 홈리스행동 회원은 “언론은 이들 보도에서 홈리스는 무신경하고 더러운 존재, ‘돌아다니는 바이러스’로 취급한다. 홈리스가 거리에 머무는 사실 자체가 불편한 언론은 왜 홈리스가 이 시국에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단체 소식지 기고를 통해 지적했다. 김 국장도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소득 지원책이 발표된 뒤 하루종일 ‘어느 시도에 살면 얼마를 받나’를 다룬 기사들이 쏟아졌다”며 “금융시장에 대해선 100조 규모를 지원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각지대가 넓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2일자 이데일리(위), 16일 세계일보 기사 갈무리
▲지난 2월2일자 이데일리(위), 16일 세계일보 기사 갈무리

빈곤사회연대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 코로나19 대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가 강제철거 전면 금지를 선언하고, 홈리스·시설생활자 등에게 지역사회 주거권을 긴급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소득을 상실한 모든 이들에게 소득보장대책 마련하고 공공임대주택부터 반값 임대료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