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암 SK스토아 대표이사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선방심의위·위원장 강대인)에 출석해 자사의 ‘분홍점퍼 깨끗한 나라 휴지 판매’ 방송분을 두고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 선방심의위는 2일 오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SKT 자회사인 T커머스 쇼핑업체 SK스토아가 선거방송심의 규정 ‘공정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선방심의위 안건으로 홈쇼핑 판매 방송을 심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8일 방송된 SK스토아 깨끗한 나라 휴지 판매 방송.
▲지난달 18일 방송된 SK스토아 깨끗한 나라 휴지 판매 방송.

SK스토아는 지난달 18일 생활용품 화장지 ‘깨끗한나라 언제나 네 곁에 총 90롤’ 판매 방송을 했다. 이날 방송은 지난해 12월18일 방송 이후 5번째 방송이었다. 지난해 12월18일, 올해 1월3일, 1월26일, 2월10일, 3월18일에 같은 내용으로 방송됐다.

쇼호스트와 출연자들은 선거운동 차량과 유사하게 제작된 스튜디오에서 분홍색 점퍼와 ‘1등’이라고 적힌 어깨띠 등 선거운동원 복장을 착용했다.

방송 내용을 보면 남성 쇼호스트가 “제가 떴다 하면 난리가 나죠. 깨끗한 나라 만들겠습니다. 깨끗한 나라 원하십니까”라고 외치면 청중이 박수치거나 양손 엄지를 들며 환호한다.

이날 판매한 화장지 가격은 2만5910원이었는데 여성 쇼호스트는 숫자 ‘2’가 강조된 가격 패널을 보여줬다.

이후 방송은 미래통합당 선거운동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에 부닥쳤다. 쇼호스트와 출연자들이 입은 분홍색 점퍼가 미래통합당 상징색과 비슷하고 숫자 2를 크게 강조해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윤 대표의 과거 이력도 입길에 오르내렸다. 윤 대표는 SK스토아 대표를 맡기 전 TV조선 편성실장, 편성제작본부장, 편성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tvN의 첫 대표라는 상징성이 있는 그는 대표적 ‘CJ맨’이지만 TV조선 간부 이력으로 논란이 된 방송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방송된 SK스토아 깨끗한 나라 휴지 판매 방송.
▲지난달 18일 방송된 SK스토아 깨끗한 나라 휴지 판매 방송.

심의에 앞서 강대인 위원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송 안건을 심의하게 됐다. 초유의 일이다. 시청자는 프로그램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송출되는지 모른다. 이런 콘셉트의 방송이 이뤄지게 된 과정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날 의견 진술자로 윤석암 SK스토아 대표가 집적 출석했다. 윤석암 대표는 “사전에 봤다면 당연히 방송을 못 하게 막았을 것이다. 사후 모니터링하면서 해당 방송을 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윤 대표는 “일주일에 프로그램을 50개 제작한다. 사전에 프로그램을 다 보지 못한다. 그동안 SK스토아는 제품의 허위 및 과장 등을 주로 심의했다. 사회적 이슈를 잘 몰랐다”며 “미디어 전문가로서 SK스토아 대표를 하고 있었지만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꼈다. 상품판매 방송을 하다 보니 미디어 본질을 망각하게 됐다.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방송의 담당자인 이현철 SK스토아 PD는 “지난해 12월9일에 촬영을 시작했고 3일 전 협력사 MD와 PD, 쇼호스트 등 사전 미팅을 진행했다. 저단가 생필품이고 재밌게 만들어보자고 합의한 결과물이다. 경쟁 홈쇼핑(CJ오쇼핑)에서 유세 콘셉트로 방송한 게 떠올라 벤치마킹해서 만든 방송”이라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김인기 위원은 “선거 기간인 지난달 18일 재방송을 한 이유가 뭔가”라고 묻자 박관수 SK스토아 심의팀장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생필품 요구가 커졌다. 그래서 방송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박세각 위원은 “처음 콘셉트와 색깔을 정할 때 방송사와 업체가 같이 상의하는 건가? 어느 쪽 아이디어였나?”라고 묻자, 이현철 PD는 “‘언제나 니(네)곁에’를 줄여 ‘언니’라고 짧게 쓰자고 생각했고, 저는 ‘언니’라고 하면 핑크 계열 색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인숙 위원은 “책임자 문책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고, 윤 대표는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대표이사가 편성 책임자를 맡기로 했다. 지난달 19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PD, 팀장, MD, 편성팀장 등을 징계했다. 저희가 판단하는 책임 경중에 따라 징계했다”고 말한 뒤 “사과방송도 많이 고민했는데, 다음 편 깨끗한 나라 휴지 방송을 제작하면서 사과방송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상호 위원은 “편성은 편성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 5번이나 방송이 이뤄졌는데 걸러지지 않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전 심의 시스템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박관수 심의팀장은 “총선 앞두고 거르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심의위원 7인(강대인 위원장, 박세각 부위원장, 권순범·정인숙·김용관·김인기·김영미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를, 박상호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를 주장했다.

심의위원들은 사태 심각성을 인지한 점을 제재 수위 결정 사유로 밝혔다. 정인숙 위원은 “결과만 놓고 보면 심각한 규정 위반이나 SK스토아 측에서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미 위원도 “색깔이 가장 큰 문제다. ‘언니’라는 콘셉트가 당연히 분홍색이라고 생각한 게 문제다. 가격에서 앞 숫자 하나 강조한 것까지 더해져 심각해졌다. 그래도 방송사 측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김용관 위원은 “고의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강대인 위원장은 “상품 판매 첫 심의 사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행정지도 수준으로 결정하자”고 말했다.

박상호 위원은 홀로 ‘법정제재’를 주장했다. 박 위원은 “T커머스지만 엄연히 승인 방송사업자다. 사전 심의 시스템을 갖춰놓지도 않은 것 같다. 엄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