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취재원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는 MBC 보도가 정치권과 언론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1일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채널A 법조팀 이아무개 기자는 지난달 22일 현재 불법 투자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전 신라젠 대주주)의 지인 A씨를 채널A 본사에서 만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을 언급하며 녹취록을 보여줬다.

MBC에 따르면, 해당 녹취록은 이 기자와 검사장 B씨가 나눈 통화로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가족에 대한 수사를 막을 수 있다거나 검찰 수사팀에 이 전 대표 입장을 전달해주겠다는 대화 내용이라고 한다.

이를 테면 채널A 기자가 “돈이야 어차피 추적하면 드러나니까 가족이나 와이프 처벌하는 부분 정도는 긍정적으로 될 수 있다”고 하면 검사장 B씨가 “수사팀에 그런 입장을 전달해줄 수는 있다”고 말하는 등 검사와 기자의 유착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 담겼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A씨는 MBC에 “유시민이나 아니면 현재 문재인 정부에 있는 청와대 사람들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한 번 세우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현직 검사장 B씨는 MBC 취재진에 “신라젠 사건 수사를 담당하지 않고 있다.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수사 상황을 전달하거나 녹취록과 같은 대화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보도 이후 채널A 기자의 취재 윤리와 검언 유착 문제가 불거졌다. 채널A 기자의 취재 윤리 위반은 명확해 보인다. 이철 전 대표가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는 점을 악용해 가족이 체포될 수 있다고 협박하거나 검사와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회유하는 행위는 용납되기 어려운 취재 윤리 위반이다.

다만 검언 유착 실체와 관련 이목이 집중되는 건 ‘녹취록’이다. 윤 총장의 최측근 검사장 B씨가 실제 채널A 기자와 통화했고 그 통화 내용이 녹취록으로 실존한다면, 검찰에 유리한 수사를 위한 ‘검언 유착’의 명확한 증거이거니와 검사장 B씨는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채널A 기자가 대화한 검사가 윤 총장 최측근 검사장 B씨가 아니래도 수사와 관련한 검사가 실제 기자와 통화했고 그 녹취 내용을 A씨에게 공개한 것이라면 검언 유착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검찰을 상대로 한 정부·여당의 공세는 계속될 수 있다.

녹취록이 존재하지 않거나 가짜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채널A 기자가 취재원을 상대로 회유·협박을 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자가 취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체 존재와 존립 이유를 되묻게 하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 채널A가 자체적으로 문제가 된 기자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MBC도 지난 31일 보도에서 “만약 현직 검사장(B씨)이 녹취록과 같은 통화를 했다면 검찰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으로 볼 수 있다”며 “검사장 해명처럼 이런 통화가 전혀 없었다면 기자가 허위 녹취록을 제시한 셈이 돼 심각한 취재윤리 위반 해당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 법조 출입 기자는 1일 “MBC와 채널A의 진실 공방은 결국 검찰과 대화를 나눴다고 이철 전 대표 대리인(A씨) 측에 보여줬다는 ‘녹취록’에서 결판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녹취록이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누구와 대화 내용인지에 따라 검언 유착 의혹과 저널리즘 도덕성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MBC 뉴스데스크 3월31일자 보도.
▲ MBC 뉴스데스크 3월31일자 보도.

다만 일각에서는 MBC 보도로 인해 3만3000여명을 상대로 7000억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투자 사기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의 범죄와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7000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은 바 있고, 지난 2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된 사건 1심에서도 징역 2년6월을 선고 받은 범죄자다.

수년 동안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의 범죄 행각을 추적한 전혁수 서울경제TV 기자는 1일 미디어오늘에 “MBC 보도에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읽히는 맥락이 숨어있다고 본다”며 MBC가 유착 의혹이 제기된 검사장 이름을 익명 처리하면서도 채널A 기자가 이철 전 대표에게 비위 사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유시민 이사장 이름은 공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에서 촉발한 여권과 검찰 간 갈등 상황에서 여권 지지자들을 결집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정파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기도 하다. 실제 친여 성향의 열린민주당이 MBC 보도 후 “정치 검찰과 종편 방송사의 충격적인 정치 공작 음모”라며 검찰에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전 기자는 “유 이사장은 2014년 8월 밸류 명사 특강뿐 아니라 2015년 1월 이 전 대표 소개로 밸류가 최대주주였던 바이오업체 신라젠 연구센터 개소식에 축사로 나선 후 밸류 홍보 영상 인터뷰까지 진행했다”며 “이철 대표가 구속되기 직전인 2015년 8월 밸류 대강당에서 지지자 모임도 열었다”고 밝혔다.

전 기자는 “전·현직 밸류 관계자들과 밸류 피투자사 관계자들은 유 이사장과 이 전 대표가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며 “정치인이 서민들의 지갑 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투자회사에 경각심 없이 친분을 이유로 연사로 수차례 나선 것은 언론으로부터 의혹을 살 만한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정치인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일반 제보자, 그것도 특정 정파와 깊은 관계가 있는 범죄 관련 인물의 정치적 의견을 뉴스에 그대로 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 기자는 MBC 보도가 밸류 후속 사기 의혹 취재와 피해자 구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기자는 “밸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표 구속 후 다수의 밸류 파생 사기 의혹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 취재하고 있다”며 “자칫 정파적 이해관계로 밸류 사건 피해자들이나 파생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추가 피해를 입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채널A 기자의 취재원 협박 사실을 보도한 장인수 MBC 기자는 전 기자 등이 제기하고 있는 여권 인사 연루 의혹에 관해 자사 라디오 방송에서 “최근 보수 언론은 신라젠이 주가 조작 등 범죄에 연루됐는데 유 작가 강연이 부적절하다고 보도해왔다. 보수 언론은 신라젠과 친노 쪽 여권 인사와 관계가 있으니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보도를 계속 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MBC 보도국장 입장도 듣고자 했지만 1일 밤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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